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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rdoc Mar 17. 2017

인생이란 싸움은 멈춰줄 심판이 없다-MMA선수들의 삶

<The Hurt Business> 다큐리뷰

삶은 전투라고 했던가. 치열한 이 사회에서 패배하고 지쳐 소진되어버린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경쟁의 연속인 세상에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절대적인 강함에 대한 욕망은 매우 본질적이라 할 수 있다. 항상 꿈꾸곤 한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절대적인 강자, '인간 자체가 강한' 그런 불가침의 강함을 가리는 퍼포먼스는 종합격투기, MMA란 전장으로 체화됐다. 피라미드의 최상단을 향해 달리는 MMA 선수들의 실제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인 <The Hurt Business>를 소개하려고 한다. 


최근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 스포츠


종합격투기, MMA로 불리는 이 스포츠 시장은 최근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MMA 단체 중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UFC는 퍼티타 형제가 2001년 2백만 달러에 사들였다. 15년이 지난 2016년, 그들은 UFC를 40억 달러란 거액으로 WME·IMG 매각했다. 그간 UFC의 성장세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http://www.nocutnews.co.kr/news/4622237

 

Hurt Business

Hurt Business

이런 세계 최고의 강자를 가리는 무대에서 뛰는 MMA 선수들을 조명한 이 다큐는, 그들의 순수하고 패기 넘치는 열정에만 집중하진 않는다. 그보다 그들의 '상처'를 보여준다. 경기중 컷팅된 피부의 출혈을 바셀린만으로 수습하고 다음 링을 뛰는 모습은 투지가 느껴진다. 혈투를 벌인 후 두 동강난 턱뼈의 엑스레이 사진과 함께 경기 소감을 남기는 강함에 팬들은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경기와 이벤트가 끝나고 나면 그 상처와 부상이 아무는 데는 시간과 고통이 수반된다. 아니, 시간과 고통을 수반해도 완전해지지 못하는 부상의 후유증은 선수 생명을 단축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경기장 밖의 그들은 똑같이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직업인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도 한다. 많이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축구, 농구, NFL 등의 메인스트림의 스포츠에 비해 약소한 대전료와, 그마저도 계속 일이 있다고 보장할 수 없는 현실은 소수 MMA 선수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소수 스타 MMA 선수들을 제외한 다수의 문제이다.

몇몇은 MMA 체육관 운영을 병행하기도 하기도 하지만 경기가 계속 있지 않을 경우 안정적인 경영을 보장할 수 없다. 가족들은 하루빨리 격투기 선수 생활을 접고 안정적인 직업을 찾기를 기도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고 나서도 돈을 벌기 위해 얻어맞으며 경기를 해야 하는 선수 생활이 싫다고는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마음대로 되는 부분은 아니다. 많은 MMA 선수들에게 종합격투기는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선수들의 문제, 뇌 손상

Hurt BusinessHurt Business

반복적으로 두부 충격으로 인한 뇌 손상에 대한 경고는 이미 보고되고 있다. 대다수의 MMA 선수들이 노출되어 있는 위험이기도 하다. 체중이 실린 스트레이트나 훅이 턱에 한 번만 들어가도 맞은 선수는 넉아웃된다. 김동현 선수가 스피닝 엘보우 한 방으로 상대 선수를 실신시킨 장면도 우린 기억하고 있다. 실신 이후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키기 전까진 확실한 승리를 위해 쓰러진 선수 위로 올라가 연속 파운딩을 날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뇌 손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종합격투기의 잔인함으로 인해 미국 뉴욕주에서는 얼마 전까지 허용되지 않는 스포츠였다. 

다큐에서 한 사례로 보여주는 '게리 굿리지'는 예전 일본 'PRIDE'무대 등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파이터이다. '팔씨름 챔피언'이란 다소 재밌는 타이틀을 달기도 했던 그들은 우리에게 항상 경기에서 지는 약체의 이미지가 있지만 UFC 초기엔 꽤 강자인 시절도 있었던 오랜 커리어를 가진 격투기 선수이다. 

그가 격투기 선수 생활을 통해 얻은 뇌 손상으로 인한 부작용은 언어장애와 건망증, 공격적인 성격, 흐트러진 멘탈이다. 지나치게 긴 선수 생활로 생긴 이런 부작용들은 대개 비가역적이다. 뚜렷하지 않은 초점으로 인터뷰하는 게리 굿리지의 모습은 그의 생계를 위한 마지막 선수 생활이 지나치게 길었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이런 뇌 손상의 결과들을 인터뷰하는 게리 굿리지는 후회하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게 전데요, 제 이야기고 역사고 그게 저예요"


다른 스포츠보다 더 문제가 되는, '약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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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있어서 '약물'의 문제는 MMA 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 때 대약물 시대를 겪으며 무수한 약물 홈런타자를 배출했던 미국 메이저리그도 있다. 육상, 수영 등 운동 능력으로 판가름 나는 다수의 올림픽 종목에서는 지금도 불거지고 있는 문제이다. 단 그 스포츠들은 MMA처럼 스테로이드를 맞고 사람을 때리지는 않는다. 조금 다른 문제인 것이다. 

이 다큐의 주 캐릭터로 나오는 존 존스의 인터뷰들은 이런 점에서 재밌다. 다큐를 한창 촬영하던 당시 존 존스는 라이트 헤비급의 절대 강자였고, 무수한 체급의 상위 랭커를 모두 꺾었다. 맞설 상대가 없어 헤비급에서 내려오는 다니엘 코미에를 상대하는 시점이었다. 다큐에서 존 존스의 혹독한 트레이닝 현장을 보여준 후 그에게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스테로이드를 하는 다른 누군가가 타이틀을 뺐을까 겁나지 않아요?"란 질문이 주어지자 그는 "어느 스포츠든 쉬운 방법을 찾는 이들은 있어요. 특히 수백만 달러가 걸려있을 때는요."라고 답했다. 이 다큐 영화 제작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약물 양성 반응으로 챔피언 벨트를 뺏긴다. 팬들은 그의 낮은 남성 호르몬 수치를 조롱하기도 한다. 그의 인터뷰 답변을 다시 보면 쉬운 길을 찾는 이가 자신이 아니라고는 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솔직한 인터뷰였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UFC의 강화된 약물 검사 지침과 계체량 이후의 수액 금지 등 엄격해지는 추세가 각 체급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 변수가 되고 있지만, UFC가 제도권의 스포츠로 지속 가능하려면 필수적일 수 있다. 


짧은 영광


론다 로우지는 UFC의 슈퍼스타였다. 브록 레스너 이후 스타 기간에 시달리던  UFC의 데이나 화이트 사장 입장에서 미미했던 여자 체급 전체의 마켓을 키운 론다 로우지는 보석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 다큐에서도 론다 로우지는 보석처럼 다뤄진다. 그녀의 훈련 장면과 파이터로서의 삶에 대한 진지한 인터뷰는 제작 당시 챔피언으로서 론다의 위상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다큐 제작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홀리 홈에게 패하고, 홀리 홈은 미샤 테이트에게 챔피언 벨트를 내줬으며 지금은 아만다 누네즈라는 새로운 챔피언이 왕좌에 앉아있다. 론다는 재기전에서도 맥없이 패배하여 이제는 그녀의 극강의 시절이 언제였던지 아득해졌다. 다큐에서 당당한 론다의 기세와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만큼 UFC란 전장이 오랜 챔피언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존 존스, 론다 로우지 등이 그 새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 시점에서 인터뷰 하나 없이 단역처럼 스쳐 지나가는 현재의 슈퍼스타, 코너 맥그리거의 짧은 등장은 재밌다.


상처 입으면서도 이 직업으로 살아가는 이들


MMA 파이터로서 꼭 최정점에 서진 못했더라도, 이 일을 자신의 직업으로 살아오는 이들에게 이 다큐는 더 오랜 조명을 비춰준다.

남자를 사귀려고 레슬링 도장에 오냐고 비아냥을 듣기도 한 세라는 18살 때 21살인 오빠가 살해되는 비극을 겪었다. 그로 인해 레슬링을 시작하게 됐고, 파이터의 길을 걷고 있다. 그녀가 살고 있는 파이터들의 삶이 단순히 화려한 영광만을 바라본 시간은 아닐 것이다. 정확힌 설명할 순 없어도 그녀의 삶의 많은 부분을 대변하고 어떤 의미에선 자기 증명을 위한 그녀의 이야기 자체가 '격투'라는 직업일 수 있다.

라샤드 에반스는 한 때 존 존스의 대항마로도 꼽히는 라이트 헤비급의 탑 랭커였다. 무릎 부상 이후 오랜 재활을 견뎌야 했지만 마음 급한 그는 그 기다림이 쉽지 않다. 분노조절 장애인 아버지에게 맞고 자라며, 거리에서 싸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일이었던 그의 유년 시절은 격투기를 통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도입부이기도 했다. 반복되는 무릎 부상 끝에 복귀전에도 패한 라샤드 에반스이지만, 파이터로서의 삶을 떠나긴 쉽지 않을 듯하다.

"조커"로 불리는 마이클 가이먼은 이 다큐의 가장 주요 캐릭터이다. 뇌수가 흘러나올 정도의 부상을 입고 우울증과 함께 생활고마저 겪고 있는 더 이상 선수로서의 삶이 쉽지 않다. 경기를 원하지만 매치를 잡아주지 않는 현실에 체육관 운영마저 힘들어진다. 그러나 MMA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격투기를 가르치는 순간을 즐기는 그의 표정은 그가 왜 이토록 MMA 무대를 떠나기 싫어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조커와 같은 선수들이 생계를 위해 경기를 뛰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만 싸우는 것은 아니다. 자부심과, 영광, 그리고 사람들의 즐거움. 그들을 움직이는 동인이 무엇이건 간에 경기장 밖에서도 멈추지 않는 그들의 진짜 싸움을 우리는 이 다큐를 통해 볼 수 있다.


계속되는 이 무대를 위해


성장해온 UFC 마켓에 비해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적게 돌아가는 대전료에 대한 비판. 소수의 스타들을 위해 좌지우지되는 공정성에 대한 비판, 선수 생명을 중단시키는 부상과 그 후유증으로부터 선수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비판 등 현재 UFC는 끊임없는 변화의 요구를 받고 있다. 소수의 스타들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려줄지는 모르지만, 그 스타들이 올라가려는 연단에서 경쟁하는 다수의 파이터들이 없다면 이 무대는 성립할 수가 없다. 상처를 작업복으로 입는 직업을 택한 그들의 계속되는 여정을 볼 수 있는 이 다큐의 가치는 많은 MMA 팬들 뿐만 아니라 오늘도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 <The Hurt Business> (파이터: 부상의 비즈니스) 는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https://www.netflix.com/title/8015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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