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여자'로 보는 시선은 동료애를 가로막는다. 나는 동료로 존재하고 싶었지만, 자주 여자라는 틀에 갇혔다. 담백하게 공동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연대를 꿈꿨지만, 경험은 그 꿈이 얼마나 나이브했는지 깨닫게 했다.
동료가 되고 싶었던 첫 직장
일터에서 나는 '일을 일로만' 하는 건조한 태도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팀을 이뤄 함께 무언가를 해 나가는 것'을 추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바로 '연대'였다. 배움에 늘 굶주렸던 나는 새끼가 어미를 찾듯 어깨너머로 배울 선배를, 길이 막히면 물어볼 사수를 갈구했다. 그리고 경험을 함께 나눌 동료를 기다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성적 대상화와 무례함이었다. 책상에 턱을 괴고 히죽거리거나 대놓고 허리가 가늘다며 짓거리는 남자들. 그들에게 나는 동료가 아닌 '여자'일 뿐이었다. 어느 날 팀장이 온다는 소식에 마음이 설레이던 작은 내가 떠오른다. 팀장은 기획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건네주고, 밥 한 끼 나누며 도움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는 디자이너 할 거야, 기획자 할 거야?"라는 질문으로 기획자로 사는 지금의 나를 만든 사람도 그 팀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표와 갈등을 겪고 입사한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퇴사했다. 나 또한 배움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시작과 동시에 붕괴된 연대의 꿈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내게는 모두 수용 가능한 존재였다. 그냥, 사람으로, 그저 좋은 동료가 필요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유형의 여자이기 보다 '사람'이었다. 배움을 찾던 길, 남산 아래 위치한 디지털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다. 내가 속한 부서에는 말 그대로 팀이라고 부를 만큼 많은 동료가,사람들이 있었다. 아침, 명동의 메인거리를 걸어 사무실까지 향하는 길 내 발걸음은 힘찼다. 모델 워킹을 하고 있었다.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했다. 막내였던 나는 일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 나이에 이런 프로젝트 PM 하는 거 쉽지 않은데 잘하는 거야." 당시 계약직이었던 나는 매일 스스로 다짐했다. "잘해서 정직원이 되어야지." 한때 나도 이런 흔한 대사를 읊었다. 정말 그랬다. 살아있었다. 좋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계약직 4개월 차, 팀장의 친절이 이성적인 접근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퇴근 후 식사 제안이 잦아졌고, 업무적 관계는 점차 뒤틀려갔다. 동료를 향한 순수한 신뢰는 이상한 관계의 미끼가 되었다. 나의 놀이터는 지옥으로 변했다.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고, 괜찮은 척 씩씩한 척,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던 날이 이어졌다. 결국 계약직 7개월 차에 두 번째 퇴사를 했다. 정직원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나를 아껴주던 다른 부서의 팀장은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나 이미 내 안에서 처음으로 싹트던 연대의 씨앗은 짓밟혀 있었다.
신체적 위협과 여자로의 환원, 두 개의 폭력
최근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한 사람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주변 테이블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언성을 높였고, 내 코끝까지 삿대질을 했다. 좁은 백반집 밥상에서 그의 손은 금방 내 눈앞에 닿을 듯했다. 순간 심장이 쿵쿵거렸다. 물리적으로 가까워진 손끝에서 폭력성을 느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의 문자를 읽고도 답하지 않은 적이 서너 번 있었다. 동료로 생각할 땐 그러지 않았지만, 그 이상 개인적 일상에 들어오려 할 때면 나는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느꼈다. 이런 감정이 쌓인 것인가 생각했다. 물론, 폭력성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될 수 없다. 그의 거친 행동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은 여성의 물리적 취약성을 이용한 폭력이자, 동료가 아닌 '여자'로 환원시키는 이중의 폭력이었다.
이성과의 연대 가능성
이번에도 연대는 깨졌다. 좋은 일을 도모하는데 생겨버린 갈등이라 더 비극적이다.
과연 이성과의 평등하고 진정한 연대가 가능할까? 이성과의 연대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어려운 과제였다. 아무리 능력을 인정받고 좋은 관계를 쌓아도, 결국 '여자'라는 프레임에 갇히거나 신체적 위협 앞에 놓이고 만다. 동료가 아닌 '여자'로 보는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의 연장선에 있는 남성의 물리적 우위 -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아니, 사실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