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의 연대 학습기
나는 개인주의자다.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는 일은 내게 득이 되더라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대로 다른 사람으로 인해 손해나 피해를 보는 것도 싫다. 나는 주고 받는 것이 분명한 게 좋다. 어쩌다 한 두번은 내가 준 것 보다 남이 내게 주는 게 더 많으면 좋지만, 계속되는 경우 마음이 불편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내가 기울게 주는 것도 별로다. 남에게 특히 신세지는 것도 으쓱할 것도 없이, 내 깜냥대로 사는 것이 좋다.
얼마 전, 마을축제에서 마을탱고 사람들과 함께 탱고 공연을 했다. 기분이 참 삼삼한 것이 며칠은 시간 날때 마다 공연 영상을 휘휘 돌려 보았다. 어쩌다 무대 앞에서 설 일이 있을 때마다 덜덜 떨면서, 아- 이번만 잘 넘기면 끝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저 무대를 잘 넘기길 바란다. 그런데, 이 날 여럿이 함께 추는 탱고는 신기하게 별로 떨리지 않았다. 내 앞에 나와 춤추는 상대가 있고, 우리 둘과 같은 다른 여덟 커플이 함께 추는 춤. 시선이 나에게 올 것만도 아니고, 더군다나 우리는 맨 뒤니까-, 나 하나쯤 틀려도 상관 없어서는 아니었다. 이날은 틀리지 않을 담담함 같은 것이 있었다. 하던대로 하는 게 쉽지, 여기 틀리는 게 더 창조적인 일일 정도로 같은 춤을 많이 췄다. 3분이 채 안되는 같은 곡을 5개월 일주일에 평균 세 시간씩은 연습했다. 아홉 커플이 무대에 올라, 춤곡 Pathetico가 '따당-, 따당-, 따당-, 따다앙-' 나오면 순서에 맞춰 포즈를 잡는다. 그 후론 동작이 절로 춰지는 거다. ‘연습을 많이 해서 잘출 수 있었어요.’ 라고 올림픽 메달리스트 같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나, 개인주의자는 왜 이렇게 여럿이 함께 추는 탱고에 이토록 에너지를 들이게 되었을까?
첫째, 미안함틱하게 고마워서
탱고를 처음 추기 시작했을 때, 남편과 함께하는 취미로 생각했다. 둘은 성격과 기질이 달라 같이 하는 게 거의 없는데, 힘든 운동은 싫고, 춤 한 번 춰볼까 마음이었다. 매주 하루 저녁 8시부터 시작하는 수업을 듣고 나면, 9시에 그 뒤를 이어 춤 연습하러 오는 마을탱고 선배들이랑 어울리게 되었다. 수업 끝나고도 한 30분은 앉아서 그날 배운 거 한 번 추게 되고, 더 오래 앉아 있을 때도 생겼다. 이제 막 걸음마 하는 나에게 한 번 추실까요? 먼저 제안하는 땅게로(탱고는 리더/팔로워가 같이 추는 춤인데, 보통 남자가 리더역할을 하며, ‘땅게로’라고 부른다. 여자는 ‘땅게라’라고 부른다)들이 있었다. 걸음마 부축과도 같은 한 걸음 한 걸음을 음악이 끝날 때까지 걸었다. 그것도 한 번 나가면 세 곡씩 꼬박 췼다. (탱고는 '딴따'라는 세션으로 나뉘어 진다. 같이 나간 파트너와 보통 세네곡으로 구성된 한 딴따를 추는 것이 관례다.) 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춤을 추고난 뒤, 상대에게 영 미안한 마음과, 어쨌든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니 흥겨운 마음이 오간다. 온갖 잡념에도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마다 같이 추자는 사람이 있으면, 고마웠다. 한 딴따가 끝나고, 자리에 앉으면 선배 땅게라(탱고를 추는 여자)들은 지금 젬병이라도 결국은 즐기며 출 수 있는 때가 올 거라고 자신의 유려한 동작을 레퍼런스로 안심시켜주었다. 이렇게 탱고 걸음마를 하면서 음악을 슬슬 타보는 경험이 탱고에 재미를 붙이게 했다. 또, 아무리 몸치라도 왠만큼은 출 수 있게된다는 선배들의 이야기가 탱고에 재미를 붙이게 했다. 탱고를 계속 할수록 더 미안도 해졌다. 탱고는 혼자 추는 춤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와 같이 출 마음을 내줘야 출 수 있다. 이렇게 이미 잘 추는 땅게로가 내가 춤을 출 수 있도록 맞춰서 춰주는 것이 신기하고 미안했다. 땅게라 앤이 그랬다. 탱고를 추는 사람들은 모두 탱고를 처음 시작해 본 경험이 있고, 그 때 탱고를 처음 어떻게 본인이 즐기게 되었는지 기억하고있다고. 그러니 미안해 하지 말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의 나에게 보내는 땅게로와 땅게라의 마음담긴 손내밈에 미안함틱한 고마움이 있다.
둘째, 함께하지만 나대로도 빛날 수 있어서.
탱고 3개월째, 초급반 선생님 긴기린에게 연락이 왔다. 마을 축제에서 마을탱고팀이 군무를 출 것인데 같이 추자고 했다. 나는 그럴 생각이 당연히 없었다. 3개월 째에도 박자도 제대로 못맞추고 지지부진 발맞추기 어려운 상태로 어떻게 군무를. 만약 된다고 하더라도 당연히 더 연습하고 해야할텐데, 지금 보다 시간을 더 내기도 부담스러웠다. 긴기린은 올해 성미산 마을축제 30주년 기념으로 하는 거니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성미산 언저리에 산 지 17년, 마을 축제에 나도 뭐하나 내보이고 싶은 마음은 있어, 더 배워서 내년 축제 때 나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긴기린이 마을 축제가 계속있더라도 군무를 또할지는 기약이 없다고 좀 더 생각해 보라고 했다. 더 이상의 푸시는 없었지만, 그 한번의 디밈에 나는 고민고민 하다, 며칠 후 군무를 신청했다. 아무리 해보고 싶대도 나혼자의 퍼포먼스로는 꿈도 못꾸는 일이다. 여럿이 추는 춤에 묻어가면서도, 나는 나로서 파트너와 함께 한곡의 춤을 완성하는 게 기대되었다.
셋째, 서로의 애씀이 있어서.
6월부터 아난도, 난다 선생님과 군무팀은 곡을 선정하고, 대열을 맞추고, 하루에 5-7초 정도 되는 동작을 배우고 빌드업 해나갔다. 몇 초짜리 동작을 배우는 데에도, 동작 자체를 못따라하거나 계속 까먹었다. 음악 멜로디에 따라 진도는 매주 계속 나가는 데, 배운 것도 잘모르는 상황이 계속이었다. 혼자서는 벌써 못해먹겠다 했겠으나,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기억안나도 계속 시도해보게 되었다. 단체연습이 있으면 빠지지 않으려고도 했다. 그런데도 여름휴가를 마치고 왔을 때, 지난 두 달 배운게 뭔가 싶게 기억이 안났다. 그런데 그걸 나무라는 사람도, 탓하는 사람도 없었다. 선생님들, 우리들 모두 그저 서로 짠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오래 배운 선배 땅게로, 땅게라들은 선생님 눈치를 더 이해하는지 '나도 잘 모르지만 ...'이라고 말하면서도, 주섬 주섬 서로 익힌 동작을 알려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나는 충분히 그만하겠다 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이미 부어 놓은 게 있는 게 아까운 것보다, 앞으로 부어야 할 에너지가 걱정되었다. 이제와 도망감이
미안하기도 했고, 끝까지 가면 결국은 외워서 추게 될 것이라는 말이 의지가 되었다. 추긴 출 건데 문제는 완성도라고 그 다음을 내다보는 여유있는 선배 땅게라 삐삐의 이야기에 궁금과 기대도 들었다. 선생님들은 틀린 동작은 틀렸으니 고치게 했지, 목표를 향해 열심히 하고 있는데 힘빠지게 하는 목적없는 비난은 없었다. 8월 이후부터는 틈날때 마다 추가 연습이 있어서, 주 3일 탱고 출 때도 있었다. 선배
땅게라/로들은 서로 완급과 다름을 조절하며, 왠만하면 함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출력은 달라도 혼자만이
아닌 서로의 애씀이었다. 모든 군무동작을 익히자, 조금 더 먼저 동작을 익힌 선배 땅게라/로들이 왼쪽, 오른쪽 파트를 나누어 별도로 시간을 잡고, 부분 동작 연습을 계속 하도록 했다. 사람들 시간조율하고, 장소 예약하고, 영상을 촬영해서 리뷰하고, 자기연습을 뒤로 미루고 다른 사람이 음악에 맞춰 춤추는 동작을 봐줬다. 나는 나대로 시간 맞춰 나가는 것도 버거웠다. 선배 땅게라/로들은 그 시간에 연습 안하고 놀 수도 있고, 개인동작의 완성도를 높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연습을 더해가면서 한 사람, 한 커플이 춤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아니라, 한 흐름으로 하나의 춤을 만드는 노력이 군무구나 싶었다. 이번 군무에서 탱고를 가장 늦게 시작한 나는 그런 선배 땅게라/로들이 엄청 고마웠다.
결국 그렇게 공연을 했다.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과 아트센터에서 두 번이나! 나중에 공연 영상을 보니, 나와 같은 초급 땅게라/로들이 주변부에서 받쳐 주니, 센터의 선배 무용수가 더욱 빛났다. 즉, 결론적으로 가운데가 아무리 잘 했더라도, 주변의 땅게라/로들이 동작이 안맞거나 큰 실수를 한다면 전체적인 공연의 퀄리티가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없었을 것 같았다. ‘이거 선배 땅게라/로들이 나한테 고마워 해야 겠는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인 나 잘되라고도 있었겠지만, 그 보다 자신의 춤, 자신의 공연을 위해 열심히 한 선배 땅게라/로 멋지다. 결국 함께 한다고 각자의 분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망의 정도나 종류가 다른 사람이 하나의 목표 안에 모일때 그 차이를 인정하고 1/n이 아닌 누구는 조금 덜하고, 더하고 하는 변주가 새로운 개인주의자들이 공동체에 발을 담그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 안에서 개인주의자는 미안함틱한 고마움으로 무임승차하지 않고 함께의 맛을 본다. 그리고 그 맛의 고마운 맛에 개인주의자는 나름의 염치와 성의를 발휘한다. 비단 이것이 여럿이 췄던 마을탱고만의 이야기 일까? 주어에 다른 활동도 넣어본다. 살면서 함께하고 싶은 개인주의자를 만난다면, 나도 이렇게 그 사람에게 함께하고픈 이유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