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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호 상하이 Jul 25. 2022

상하이의 한 여름에 만난 '이거면 됐다'의 순간

상하이 한 여름 비밀의 장소를 소개합니다

한 여름에 만난 '이거면 됐다'의 순간


이번 여름은 참 삭막하다. 여름의 단골손님인 장마도 오지 않았다. 태풍도 소식이 없다. 더위와 비의 합작으로 극적인 하루하루를 맞았어야 했을 상하이의 여름이 차분하고 평온하다. 덕분에 참으로 일관적이게 덥다. 높은 온도에 정 못 참겠을 때 한 번씩 비가 쏟아지는데 이거 원 태양이 눈치를 주는 모양인지 소나기가 밤에만 살짝 다녀간다. 그렇게 '매우 매우 덥다 - 매우 덥다 - 매우 덥다 - 덥다 - 매우 매우 덥다'가 이어지다 지난 토요일은 정말 매우 몹시 많이 더웠다. 잠깐 밖에 서있으면 '으악' 소리가 나왔다. 뜨겁기만 한 더위라면 어쩌면 바싹 마른빨래를 걷을 때의 상쾌함과 쨍한 태양의 활기로 기분 좋게 견딜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하이의 더위에는 '습함'이 따라다닌다. '뜨겁다'라는 깔끔한 단어에 '불쾌하다'라는 꼬리가 따라붙어 솔직히 말해 힘들고 답답한 더위다.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처럼 더 남쪽에서 살다 온 분들은 이 정도는 습한 것도 아니라며 웃어 넘기기도 하지만, 습기에 취약한 나는 상하이의 여름이 좋지만 버겁다. 집 밖은 위험해를 되뇌며 외출을 자제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러나 외출이 주는 매력은 높은 습도에 대한 거부감을 매번 이긴다. 나가서 후회를 할지언정 하루에 한 번은 꼭 외부 세계로 발을 내딛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다고 목적지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니다. 동네 한 바퀴든, 그 순간 떠오르는 어떤 곳이든 마음 따라 움직인다. 산책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채찍을 흩트려놓는다.'는 뜻이라던데 지팡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정처 없이 다니는 진정한 산책을 하루에 담는다. 그렇게 걷다 보면 길, 나무, 자동차, 건물, 사람이 그려진 수많은 그림을 만난다. 다양한 모습이 내 속도에 맞춰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어느 때보다 감각의 활기와 자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유한한 시간 속에 이런 소중한 경험을 습도 품은 더위 따위에게 내어줄 수 없다. 그렇게 여름날의 산책이 이어진다. 걷는 게 참 좋다. 



'으악' 소리 나는 무더운 토요일도 여느 때처럼 걸었다. 그런 토요일의 끝에 밤비가 시원하게 내렸고 참 반가웠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 비가 조금은 더위를 데려가 주리라 기대했다. 다음 날 아침, 기분 탓일까.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잠시 느껴본 바깥공기는 뭔가 어제와 다른 것 같았다. 시원한 여름 비를 맞고 난 다음의 공기는 뭔가 조금 선선한 것 같아, '오늘은 좀 선선해진 것 같아'라는 사실인지 소망인지 주문인지 모를 문장을 읊조리며 호기롭게 나갔다. 그러나 습기는 아직 상하이를 떠나지 못했다. 덥다. 더워. 아니 습하다. 습해. 이왕 나온 거, 강바람을 맞으며 걸어볼까 싶어 웨스트 번드(WEST BUND)라 불리는 쉬후이 강변공원을 찾았다. 그러나 강바람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역시나 습하고 더웠다. 다만, 이런 날씨에도 보드를 타거나, 농구를 하거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잠깐 정서적인 시원함을 맛보게 했다. 그러다 잠깐 들어간 카페에서 나는 잊지 못할 진정한 시원함을 만났다. 더티 커피 한 잔을 들고 잠깐 이 카페의 시그니처 장소인 루프에 올라갔다. 매장이 시원하지만 잠깐이나마 강변의 전망을 이 근방 가장 높은 곳에서 보고 싶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다가 테라스로 이어지는 문을 열자 역시나 습함이 몰려왔다. 잠깐만 보고 내려와야지 하며 루프에 올라서자 방금 전까지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강바람이 온 감각을 타고 내 것이 되었다. 결국 내 입에서는 '와, 시원하다'는 말이 나왔다. 시원한 강바람이 주변을 감싸고 있던 더위와 습도를 날려 보내고 나니 상쾌함만 남았다. 원래 마음은 잠깐 지붕에서 바깥을 보고 에어컨의 힘을 빌어 쾌적한 카페 매장으로 들어가서 쉬려고 했는데, 자연의 강바람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게 했다. 타인의 치맛자락이 바람에 흔들리고, 함께 온 이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내려가고 싶지 않아 조금 더 머물렀다. 의자는 좀 불편했지만, 커피 한 잔, 강바람, 그리고 테라스 아래로 보이는 마당의 댕댕이들과 사람들, '이거면 됐다.' 싶은 순간들이 모이고 있었다


7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이 습하고 더운 여름, 이곳에서 맞은 강바람이 한동안 생각 날 것 같다. 

한 여름의 행복한 기억들이 그렇게 하나 둘 모이고 있다. 





장소: Manner Coffee(徐汇滨江店)  瑞宁路243号(近滨江滑板公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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