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알콜중독자 부모들
최근에는 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지만, 한국 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술에 대해 관대한 문화를 유지해 왔다. ‘약주’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술을 건강에 좋은 보약처럼 여기거나 고된 삶의 위안으로 삼고 집단의 화합의 도구로서 사용하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과학적 연구 결과는 소량의 음주조차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술을 적당히 마시고 풀어지는 것은 모르겠으나,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것과 그것을 넘어서 중독되는 것은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알코올 중독이라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만들어낸다. 특히 부모의 알코올 중독이 자녀에게 주는 상처는 우리가 더 이상 술에 대한 관대함을 유지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알코올 중독자 부모는 가난과 함께 불행한 가정의 흔한 클리셰로 등장한다. 이는 알코올중독인 부모의 가정은 현실에서도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비극적인 가정의 예시이기 때문이다.
많은 알코올 중독자 부모는 자신의 음주에 대한 핑계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음주를 힘든 삶 속에서, 그리고 자식들을 키우면서 얻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작은 위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작은 위안'은 가족들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고통을 해소하는 방식이 타인에게 폭력이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위안이나 치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상처를 가족에게 전가하고, 대물림하는 비극적인 행위일 뿐이다.
알코올중독 부모의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기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가장 기본적인 보금자리가 되어야 하는 집에서 오로지 '버티는' 데 사용하게 된다. 다른 아이들이 자유롭게 성장하며 시간을 온전히 누릴 때, 이들은 매일 불안정한 공기 속에서 감정을 숨기고,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를 쌓아간다. 불안정한 유년기는 트라우마, 낮은 자존감, 관계 문제 등 평생을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되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소모시킨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은 단순히 가족끼리 사이좋게 지내라는 따뜻한 조언을 넘어선다. 이 말은 가정이 화목해야만 개인의 삶, 특히 자녀의 삶이 제대로 뿌리내리고 발전할 수 있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가정은 아이에게 안정감과 회복을 제공하는 가장 강력한 안전장치다. 그런데 부모의 '작은 위안'인 술로 인해 이 안전장치가 무너진다면, 아이들은 매일 폭풍 속에서 항해하는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다. 그것도 항구 주변만 얼쩡거리며 앞으로는 나아가지 못한 채 말이다.
결국, 술에 대한 사회적 관대함은 단순한 문화적 특성을 넘어, 다음 세대의 삶을 파괴하는 위험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자신의 고통을 해소하는 방식이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인생은 본래 짧고 시간은 유한하다. 자녀가 그 시간을 '살기' 위해 쓰게 할 것인가, 아니면 '버티기' 위해 쓰게 할 것인가. 그 선택은 어른의 책임이며, 그 시작은 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