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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Nov 15. 2018

도시의 숨겨진 매력을 원할 때, 오볼로 사우스사이드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 다섯 번째 이야기

가이드북을 펴낼 만큼 자주 들락거리는 홍콩이지만, 아무리 익숙하다 해도 시내를 벗어나서 묵을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여행에서 나를 과감하게 만들어주는 건 오직 호텔뿐이다. 디자인호텔스가 선정한 몇 안 되는 홍콩 호텔 중 하나가 시내에서 엄청나게 떨어져 있다니, 더욱 커진 호기심은 곧장 예약으로 연결되었다. 주요 관광지가 몰려 있는 홍콩의 시내를 한참 벗어난 지역에 숙소를 잡으면 과연 어떤 홍콩 여행이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고 싶기도 했다. 


남부 애버딘(Aberdeen, 香港仔)에서도 버스로 30분을 가야 하는 사우스사이드(Southside)는 홍콩 초보자에겐 어려운 지역이다. 그래서 지하철이 아닌 시내버스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면, 생소한 동네를 제대로 즐길 정보와 준비가 되어 있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사실 홍콩의 여러 오볼로 호텔 중에 오볼로 사우스사이드가 가장 유명해진 건 이렇게 황당한 위치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처럼 오직 호텔만을 보고 후미진 곳에 찾아온 전 세계의 수많은 여행자들이 호텔과 호텔 주변을 활기차게 채우고 있었다. 




새롭게 개통된 사우드 아일랜드 라인의 웡척항 역. 홍콩 섬 최남단을 지난다. 


척박한 남부 지역을 개척한 한 호텔의 무모한 도전 덕분에, 최근 몇 년간 이 일대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많은 화랑이 시내의 치솟는 땅값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해 오면서 그 옆으로 트렌디한 카페와 펍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홍콩의 지하철역에 새롭게 추가될 사우스 아일랜드 라인(South Island Line)이 통과하는 웡척항 지하철역은 아직도 공사가 한창이다. (주: 2018년 11월 현재 사우스 아일랜드 노선은 개통된 상태로, 이제는 MRT로 편리하게 이 곳을 오갈 수 있다) 


이전에 오볼로의 다른 체인인 오볼로 카오룽(Kowloon, 九龍) 지점에 머문 적이 있어서, 오볼로 특유의 감각적인 디자인이나 친절한 프런트데스크, 조식과 해피아워 등은 내심 기대했던 그대로였다. 하지만 전망은 기대하지 않았다. 홍콩 호텔에서 전망을 기대하는 건 넓은 방을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헛된 기대다. 홍콩에는 창문이 없는 숙소가 기본이라고 할 만큼 부지기수고, 객실 사이즈는 좁고 옹색하기 이를 데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객실의 첫 인상. 푸르른 녹음이 상쾌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객실 문을 딱 열었더니 눈앞에 나지막한 침대와 하얀 벽돌 벽 너머로 푸르른 녹색의 자연이 펼쳐진다. 마운틴 뷰라더니, 진짜 눈앞에 산이 펼쳐져 있을 줄이야! 덕분에 아직은 개발의 때가 덜 묻은 사우스사이드의 자연경관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자연광이 하얗게 쏟아지는 객실은 세련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었다. 오볼로 답게 냉장고를 열면 넉넉한 무료 음료가 가득 채워져 있고, 테이블에 올려둔 종이봉투를 열면 주전부리 과자들이 귀엽게 담겨 있어 흐뭇한 미소가 절로 흐른다. 이게 부족하다면, 저녁에 호텔 바에서는 해피아워에 공짜 맥주와 안주용 과자까지 준비해준다. 단, 무료 미니바와 해피아워는 오볼로 공식 웹사이트를 통한 다이렉트 예약 시에만 제공된다. 다양한 혜택을 원한다면 호텔에 직접 예약을, 객실만 저렴하게 예약하고 싶다면 최저가 검색을 해보자.




라운지의 저녁 해피아워 시간에 즐긴 맥주와 간단한 안주. 


이튿날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 천천히 동네를 산책해본다. 고즈넉한 옛 동네의 정취도 남아 있지만, 내가 방문했던 시점에는 대부분의 도로와 건물이 공사 현장이었다. 웡척항 MRT 역에 정차하는 사우스 아일랜드 노선이 개통하면, 이제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사우스사이드를 찾아올 것이다. 홍콩의 옛 모습이 남아 있는 지역이 또 이렇게 사라져 가는구나 싶어서 내심 아쉽기도 하다. 소음과 먼지가 심한, 황량하기 그지없는 공사판 너머로 허름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아시아의 전형적인 실내 시장 건물처럼 보여서 들어가면 뭔가 있겠지 싶었던 직감이 역시나 적중했다. 듬성듬성 문을 연 작은 식당은 죄다 현지인으로 바글바글 붐비고 있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으리라 는 건 이미 예상했기에, 손짓으로 현지식 라면 세트를 포장 주문했다. 근데 왜 하필 국물 있는 면을 시켰을까? 가다가 불어 터지면 못 먹을 텐데. 별별 걱정을 다하며 종종걸음으로 호텔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오면서 적잖이 흔들렸는데도 탱글하게 살아 있는 계란 노른자, 구수한 닭 육수에 꼬들꼬들한 면발, 진하게 우려낸 밀크티까지! 차찬텡(茶餐廳) 스타일의 홍콩 라면과 밀크티의 조합은 내가 원했던 홍콩 그대로의 맛이다. 새삼 홍콩의 포장음식 문화를 너무 가볍게 봤구나 싶다. 에어컨이 없는 실내 시장에서 먹기는 꽤 덥고 힘드니, 이렇게 포장해 와서 호텔 미니바에 갖춰진 무료 음료와 같이 먹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센트럴과 코즈웨이베이(Causeway Bay), 침사추이 등 홍콩을 대표하는 도심에는 많은 쇼핑몰이 밀집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 쇼핑몰은 소매점이라 한국에서 구입하는 것과 가격에 큰 차이가 없다. 그 래서 많은 사람들이 홍콩 쇼핑이라 하면 아웃렛, 특히 호라이즌 플라자(Horizon Plaza)를 첫 손에 꼽는데, 문제는 위치다. 시내에서 아무리 부지런히 가도 30~40분이 걸리기 때문에 부담스럽다. 홍콩 남부에서 시작한 여행에 어떤 장점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웡척항에서 고가다리로 이어지는 애버딘이 떠올랐다. 그렇게 향한 호라이즌 플라자에서 2~3시간 동안 마음껏 쇼핑을 즐길 수 있었다. 15만 원짜리 이탈리안 데님 티셔츠를 1만 원에 건지는 재미가 바로 홍콩 아웃렛 쇼핑의 묘미다. “살 것이 없다”고 불평만 했던 홍콩이 남부에 내려오니 조금 다르게 보인다. 


홍콩에서 만난 한 호텔리어는 내게 얘기했다. 홍콩은 이제 지루한 도시가 되었다고, 변화가 없으니 재방문자가 계속 줄어든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홍콩은 느리지만 크게 변화하고 있다. 호텔 산업은 그러한 도시의 변화와 흐름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인다. 그래서 새롭고 독특한 철학이 담긴 호텔을 따라다니는 나의 여행 방식은 자연스레 이 도시에 대한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통찰하게 한다. 외국인의 식견으로 미리 조사한 피상적인 맛집과 관광 정보는 좋은 현지 호텔을 만나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진다. 




저녁의 라운지는, 아침에는 조식뷔페 레스토랑으로 변신한다. 


이번에 만난 오볼로 사우스사이드는 호텔이 당연히 갖춰야 하는 서비스나 시설 면에서도 훌륭했지만, 새로운 위치로 여행자를 불러들이는 시도만으로도 묵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호텔이다. 단지 잠만 자는 비싼 숙소가 아닌, 존재 자체로 도시와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호텔이 모든 도시마다 숨어 있다. 이런 호텔을 끊임없이 찾아내 고 나만의 관점으로 경험해보는 일은 인생을 건 숙제이자 흥미진진한 모험의 여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볼로 사우스사이드에서의 시간은 더없이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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