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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Nov 22. 2018

전설이 된 상하이 호텔, 애스터하우스를 추억하며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 여섯 번째 이야기

상하이는, 도시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는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겐 더없이 흥미진진한 메트로폴리탄 시티다. 그러나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영어가 통용되는 도시와는 달리, 상하이는 중국어를 못하는 나 같은 이에게는 불친절하고 가혹한 도시다. 현지 식당이나 중소 규모의 호텔에서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빠르게 정착된 모바일 결제의 대중화로, 불과 몇 년 사이에 중국에서 현금 결제는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 되었다. 심지어 현금을 받지도 않는 상점도 늘고 있다고 하니, 모바일 결제를 쉽게 이용할 수 없는 외국인에게 중국 개별여행은 녹록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그런데 출장으로 상하이를 갑작스럽게 방문할 일이 생겼다. 여행 콘퍼런스 참관 신청이 통과되어 급작스럽게 중국행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한창 사드 이슈까지 겹쳐 비자 대행비용도 높아졌고 발급 조건도 까다로워졌다. 정신없이 현업에 치이며 비자 준비를 하다 보니, 그만 호텔 예약의 적정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이제 출국은 내일이다. 하는 수 없이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위시리스트 중에서, 박람회 장이 있는 푸동과 멀지 않은 노스 번드(North bund)의 한 호텔을 예약했다. 아시아 호텔 역사의 시발점이 된 중국 최초의 현대식 호텔, '애스터하우스'다.



1900년대 초와 현재의 애스터하우스. 거의 원형 그대로의 외관을 유지하고 있다.


애스터하우스는 1846년에 영국인 리처드가 중국에 최초로 세운 현대식 호텔이자 근대 건축물로, 상하이의 주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차피 호텔을 예약해야 한다면, 투숙 자체로 살아있는 호텔 역사 공부의 장이 되는 애스터하우스를 경험해 볼 좋은 기회였다. 호텔이 지닌 역사적 의미나 유명세에 비해, 아직까지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점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한 번드의 역사적 호텔 '페어몬트 피스(Fairmont Peace)'가 비교적 높은 객실가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애스터하우스에는 1박당 10만 원 대의 저렴한 객실도 있어서 부담 없이 박람회 일정 3박을 예약할 수 있었다. 무려 17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는 외관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애스터하우스의 고풍스러운 첫인상도 놀라웠지만, 갑자기 출장으로 찾은 이 호텔에서 의외로 놀란 순간은 따로 있다.



번드에 위치한 타 호텔에 비해 터무니없이 넓은 객실이 특징.


3일간의 박람회 참관은 예상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호텔이 위치한 곳이 지하철역과는 다소 떨어져 있어서, 신속하게 움직이자면 택시가 정답이다. 물론 운 좋게 택시를 탄다 해도, 기사에게 중국어로 설명을 할 수 없으니 행선지의 중국어 주소를 잘 준비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날 따라 호텔 앞에 택시가 한 대도 오지 않아 20분째 발만 구르고 있는데, 앳된 얼굴의 직원이 다가와 상황을 묻는다. 곧바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며 '제 택시 어플로 차량을 호출해 드릴게요. 예상 택시비가 여기 찍혀 나오니, 저에게 현금으로 주시면 됩니다'라며 차량을 검색한다.


제가 대신 차량을 불러 드릴게요.


한국에는 카카오톡 택시가 있다면, 중국에는 디디다처(滴滴打車)라는 모바일 택시 어플이 있다. 아무리 디디다처가 편리하다 해도 중국어를 못 읽는 내게는 무용지물인데, 호텔 직원이 이걸 대신해주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마도 예상컨데, 오히려 특급 체인호텔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고객의 편의를 돕는 일은 내부 매뉴얼상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더욱 이 직원의 융통성 있는 대처와 작은 서비스가 크게 다가왔다. 그로부터 5분 후 차량 한 대가 도착했고, 늦지 않게 박람회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장 오래된 호텔에서, 가장 젊고 빠릿빠릿한 서비스를 만난 순간이다.  




호텔급 시설과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인, 상하이의 한 마사지숍 체인.


박람회 일정이 모두 끝난 마지막 날, 온몸이 욱신거리기 시작하더니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피로감이 폭풍처럼 쏟아진다. 이럴 때는 상하이의 저렴하고 수준 높은 중국 마사지가 간절해진다. 제법 가성비가 좋고 깨끗하게 운영하는 마사지숍 체인을 겨우 알아냈는데, 모든 지점이 사전예약 없이는 갈 수가 없을 정도로 현지에서도 인기가 높단다. 홈페이지를 찾아냈지만, 역시나 중국어를 못하니 연락할 방도가 없다. 그 순간 엊그제 택시 어플 사건(?)이 생각났다. 왠지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면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서둘러 프런트 데스크로 내려가 간단히 영어로 상황을 설명했더니, 직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해당 점포에 전화부터 건다. 1분 만에 예약은 모두 끝났고, 점포 두 군데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자칫 헷갈리기 쉽다며 예약한 숍의 상세 주소와 위치까지 다시 파악해서 알려 주었다. 종이에 큼지막하게 한자 주소를 써주며 택시기사에게 보여주라는 당부는 덤이었다. 이들의 서비스는 진짜였다. 직원 모두가 애스터하우스의 명성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게 매 순간 느껴졌다.


사실 호텔의 방대한 역사적 스토리와 시간의 흔적을 들여다보기 위해 투숙을 결정한 거지만, 비슷한 객실가를 가진 특급호텔의 다양한 부대시설을 포기할 만큼의 가치가 있을지 반신반의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컨시어지' 역할이 왜 중요한지, 호텔 서비스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호텔을 만났다. 생각지도 못하게 내 출장의 든든한 비서가 되어 준 애스터하우스에서, 3박 4일 동안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대답은 바로 'No'였다.



에필로그. 애스터하우스를 추억하며

이 호텔은 저서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를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었던 호텔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책에 싣기 위해 썼던 원고의 일부다. 그런데 집필 과정에서 호텔 가격대를 체크하려고 여러 사이트를 뒤져도, 이상하게 애스터하우스가 검색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애스터하우스가 2017년 12월 31일 부로 폐점했다는 소식을, 그것도 일본 매체에서 겨우 찾았다. 노후한 건물이라 더 이상의 호텔 영업은 어려웠던 것 같고, 향후 리뉴얼을 거쳐 증권거래소 박물관으로 재개장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작년 박람회 출장에서 묵었던 3박이, 영원히 마지막이 된 것이다. 그렇게 170년의 역사를 뒤로 한 애스터하우스를 기리며, 책에 싣지 못한 아쉬움을 뒤늦게나마 달래 본다.


이 호텔의 에피소드를 새삼스레 돌아보게 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평소 자주 가는 호텔 관련 블로그에 올라온 인천 영종도 N모 호텔의 어처구니없는 고객 응대가 여러 커뮤니티에서 큰 회자가 되었다. 리뷰의 요지는 '고객의 요구에는 대부분 No라고 답하는, 직원들의 불친절한 태도'였다. 어느 한 사람의 개별적인 상황이라고 하기에는, 유사한 응대를 받은 수많은 이들의 댓글이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환대산업인 호텔산업이, 2018년에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이자 에어비앤비와의 차별점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애스터하우스에서 머물던 3박 4일 동안, 그들이 내게 No라고 답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원래 이 에피소드를 책에 실었다면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No'라는 제목을 붙이려던 이유는,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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