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립소셜클럽, 첫 번째 모임을 마치며
경험을 콘텐츠로, 그리고 업으로 바꾼 이들의 비밀
지금의 산업이 다시는 이전의 구조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내가 속한 산업 전체의 구조와 변화를 읽고, 내 자리를 새롭게 정의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코로나 19 같은 외부 위기는 주기적으로 계속 올 거고, 자기 자리를 모른 채 일을 하다가 그 자리가 사라지는 상황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이 와중에도, 어떤 이들은 콘텐츠를 기반으로 새로운 직업을 만들고 수익을 낸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서라도 보려는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는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된다. 도대체, 비결이 뭘까? 나도 개인적으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프립(frip)과 함께 기획한 '프립소셜클럽 - 경험을 콘텐츠로 바꾸는 비즈니스 인사이트'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커리큘럼을 짰다. 경험을 왜 유의미한 콘텐츠로 만들어야 하는가? 어떤 경험은 콘텐츠가 되고, 어떤 경험은 되지 못하는가? 팔리는 경험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경험의 맥락도 특별한가? 아니, 이렇게 거창한 질문이 아니어도 그저 '모두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데, 그걸 찾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찾은 걸까?'라는 질문은 누구나 품고 있다.
경험(여행)과 콘텐츠로 업을 만드는 프로세스를 조금 먼저 만든 입장에서,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매주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책을 제시하고 생각을 나누는 토론 + 강의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6월 18일 첫 번째 모임이 있었고, 역시 강사가 얼마나 좋은 직업인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양질의 경험과 경력을 가진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오히려 내가 배우는 게 훨씬 많았던 시간이었다.
콘텐츠, 못 만드는 것과 안 만드는 건 다르다
이번 모임과는 별개로, 때때로 양질의 경험이라는 좋은 재료를 많이 가지고도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절대 못 만드는 게 아닌) 분들을 코칭할 때마다 물음표가 뜨는 지점이 있다. '왜 내 글을 (외부에) 연재하는 일을 이토록 어려워할까?'다. 처음에는 개인의 성향 차이 혹은 우선순위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칭을 하면 할수록 성향이나 기질은 큰 연관성이 없었다.
그보다는 '자기 검열' 프로세스가 강할수록, 내 글을 외부에 공개하기 어려워진다. 평소 외부 평가에 엄격한 이들이 자신의 콘텐츠에도 엄격한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다. '어차피 안 읽힐 글을 굳이 뭐하러 쓰나', 혹은 '평소 읽는 다른 글보다 퀄리티가 떨어지는데?' 등의 자기 검열이 대표적이다. 저 두 검열은 성격이 매우 다르지만, 결국 공개 글쓰기를 멈추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지난 몇 년간 나의 개인 워크숍이나 공개 클래스에서 만나는 분들은 경력과 경험 면에서 훌륭한 자본을 쌓은 이들이 많다. 좋은 경험을 쌓은 만큼 자신의 평가 기준도 높다보니, 선뜻 이를 콘텐츠로 만들지 않고 스스로의 부족한 점만 보완하려고만 한다.
최근 감명깊게 읽은 서민규 저자님의 책 <회사말고 내 콘텐츠>에는 콘텐츠 자본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특별한 경험을 많이 했거나 유명 기업에 재직한 이들은 이미 커리어 자본을 획득했기에 자신만의 업을 만드는 데도 유리하지만, 정규직 재직 경험이 없는 저자는 커리어 자본 흙수저였기에 콘텐츠 자본을 쌓아 업의 독립을 이루었다고 이야기한다. 내 생각을 좀더 보태자면, 커리어 자본의 기준 또한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 좋은 커리어로 평가했던 직업이나 직장이, 앞으로는 그렇지 않은 업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콘텐츠 자본을 쌓고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이 '라떼는 커리어'를 넘어 새롭게 주목받는 것이다.
이 책에서 한국은 고맥락 문화의 사회로, '받아 적기'와 눈치보기에 익숙한 회사형 인재를 양성해 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니 '너만의 오리지널리티는 뭐야? 너에게는 어떤 콘텐츠가 있어?'라고 물으면 답을 못하는 무비판적 사고를 키워왔다는 것이다. 특히 중장년층 고경력직들은 글쓰기로 자신을 표현하거나 책을 내는 일에 소극적이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건 나도 직장인 시절에 몇몇 상사들을 보며, 또는 은퇴예정자 강의를 하며 종종 느꼈다. 그래서 지상파 방송국 PD로 오랜 세월 일했지만(커리어 자본), 블로그 글쓰기를 쉬지 않으며 끊임없이 단행본을 출간해 자신의 콘텐츠 자본을 쌓는 김민식 PD의 사례는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드문 케이스다.
콘텐츠의 재료인 좋은 경력과 경험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 것과, 좋은 경험이 있는데도 만들지 않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좋아하는 일(경험)을 남들보다 많이 해본 이들은, 주변에 이를 이야기하거나 SNS에 흔적을 남기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변화를 원한다면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만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현재 하고 있는 경험과 생각을 구체적인 언어로 공개할 때, 그 경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비로소 연결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나의 콘텐츠를 '구매'하려고 하는 사람(또는 기업)이 생겨난다. 그 지점에서 작은 도약이 일어나고(출간, 강의 등), 그 성장이 꾸준히 이어지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업을 갖게 된다.
최근 신간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의 추천사를 보니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나에게 재능이 있을까 고민하며 괴로워할 시간에, 그 괴로움에 대해서라도 써야 한다는 것을". 캬. 명언이다.
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기업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호텔 칼럼니스트와 여행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좀더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인스타그램 @noni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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