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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Aug 20. 2020

'나' 데이터를 많이 쌓아야 하는 이유

돈 공부보다, 돈을 버는 '일의 구조'부터

책 <여행의 미래> 이후 몇 달째, 업계 종사자를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수많은 블로그 서평과 유튜브 '35세 이전에 내 직업 만들기' 시리즈에는 '학교에서 배운 게 소용이 없다', '업계 침체로 방향을 못 잡겠다'는 질문과 고민이 이어진다. 이렇게 전문가의 정의가 '재정의'되고, 비종사자가 종사자를 재교육하는 역설적인 상황은 코로나 이후의 직업 세계에서는 빈번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업을 만들어가는 나 역시 종종 혼란에 빠지고, 저게 맞고 내가 틀린 건가 싶은 순간들이 찾아올 때가 자주 있다.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도 그랬다.



지식만 직업이 되던 시대는, 지났다

책 <여행의 미래> 때문에 출연한 방송인데, 황당한 질문을 받았다. "(여러 분야 중에) 꼭 여행이어야 했냐, 후회는 없냐(??)"는 질문이었다. 인문학 작가인 진행자의 이 질문에는, 그럴만한 배경이 있었다.


대학에선 기피 전공이라는 인문학은, 놀랍게도 출판계에서는 지위가 달랐다. 지식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엮냐에 따라 무한대로 변주되는 인문학은, 지대넓얕 이후 출판업계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지식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볼 때, 여행은 안 팔리는 (출판)상품이다. 그러니 지난 5년간 전 세계를 발로 뛰어서 수많은 컨퍼런스와 포럼을 취재해, 두 달만에 3쇄 '밖에' 못 판 내 책은 지식인들의 기준에는 너무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책인 것이다.


글쎄. 학문다운 학문을 해보지 못하고 사회에 떠밀리듯 나온 우리는,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은 다음에야 지식을 떠먹여 주는 이들의 책을 간신히 '소비'할 여력을 갖는 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담론과 지식을 소수가 상품화하는 것이, 특정 생산자에겐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더 많은 이들이 작은 분야를 스스로 탐구하고 '생산'하는, 그걸로 자신의 업을 온전히 만들고 공존하는 사회가 더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은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급속 재편되고 있다. 열정과 경험, 개성이 돈이 되고 일이 되는 시대다.


그래서 어떤 책이 팔리는 지는 알겠지만, 난 앞으로도 나의 경험을 기반으로 세상에 없던 지식을 구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기준은 그동안 축적한  '나' 데이터에서 나온다. 이 데이터는 어떻게 쌓아야 할까? 우선 내 마음, 내 취향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돌봐야 한다. 동시에 직장생활을 통해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바꾸기 위한 '잔기술'을 축적해 놓았던 게 업의 독립엔 결정적 기술이 됐다. (그 기술 얘기는 이제부터 연재할 예정)


한편, 앞으로 꼭 필요한 업의 기술을 아직 획득하지 못한 20대들이 돈 공부, 재테크 바람을 좇는 건 뭔가 순서가 바뀐 듯 하여 안타깝다. '하고 싶은 ' 돈을 버는 구조를 먼저 만들지 않으면, 나이가  수록 원치 않는 일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렇게 번 돈은? 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로 지출하거나, '돈 공부'에 시간을 따로 투자해야만 한다. 돈 공부는 일단 돈을 번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 같은 돈이지만 '좋아하는 일'로 잘 벌어야 더 오래 더 즐겁게 벌 수 있다는 건, 애초에 원치 않는 일로만 돈을 벌었던 이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다. 업의 구조화를 위해 돈보다 먼저 공부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나'에 대한 공부다.



'나' 데이터를 쌓고, 직업을 만들다

13년 전 여행업계를 벗어나 IT로 넘어온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다. 20대에는 스타트업 생활을 해보니 직접 창업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여러 번 창업을 시도했다. 물론 대부분 실패의 연속이었다. 30대 초반에는 큰 기업이 덜 불안한 줄 알고 모 계열사에 들어갔다가 한 달만에 광속 퇴사한 경험도 있다. 물론 정년과 복지가 보장되는 직장이 일의 중요한 기준인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의 기준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굳이 입사와 퇴사로 확인했을 뿐이다. 이렇게 직급도 업종도 다른 회사를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잘 모르고 있던 나에 대해 알게 됐다.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행복하고 불행한지 대해서 말이다. 돈 주고도 못 살 데이터를, 돈을 받아가면서 얻은 셈이다. 그렇게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면서, 계속해서 더 많은 '나' 데이터를 쌓았다. 마침내 그 데이터가 꽤 세밀해졌을 때,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마지막 회사를 다니고 원하는 시점에 퇴사할 수 있었다. 마지막 회사인 출판사는, 원하는 직업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퍼즐인 셈이다. (물론 이 퍼즐도 완벽한 missing piece는 아니었나 보다. 지식 베스트셀러를 양산하는 스킬은 미처 못 배우고 나온 걸 보면..)


어떤 업계에서 스스로 온전히 서는 업의 포지션을 찾고 싶다면, 되려 업계 바깥의 일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탐색해보길 권해주고 싶다. 최근 내게 고민을 털어놓는 여행업계 종사자들은 호텔, 항공, 여행사, 테크 등 직종은 다양해도, 대부분 전공부터 직장까지 20대부터 한 가지 길만 걸어온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업계 전체가 예상치 못한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는, 폭넓은 가능성을 상상하거나 선뜻 새로운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두려워질 수밖에 없다. 나 역시 2030 시절에 한 두 가지 분야만 경험했다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책이나 강의를 하는 일도, 직장인 시절보다 높은 소득과 많은 시간을 확보하는 시점도 영영 안 왔거나 훨씬 더 늦어졌을 것이다.


요즘은 여행사 교육, 심사와 컨설팅 등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공공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하는 여러 일 중 하나일 뿐이다. 업계에 뼈를 묻겠다거나 기여를 한다는 생색은 질색이고, 그런 대의를 삶의 우선순위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 일을 하다 보니 굳이 궁금하지 않은 것도 알게 된다. 각종 '협회'와 단체명을 앞세우고, '이 업계는 내가 살린다'는 사명감을 공공연히 과시하며 사회적 존재감을 유지하려는 이들을 본다. 이 또한 직업적 성찰이 부족하다 보니 시대 흐름에 뒤쳐지는 직업관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대의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의 경쟁력이고, 지금은 변화와 기술에 유연하게 적응하고 실력으로 시장에서 평가받으면 된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기성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콘텐츠의 영역을 확장해갈 생각이다. 업계의 경계에서 더 부가가치가 높은 직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이젠 알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여행하며 일하는 삶, 여행을 해야 몸값이 높아지는 나의 업을 더 길게 가져갈 수 있다는 것도 이젠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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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기업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호텔 칼럼니스트와 여행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좀더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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