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에 종속되고 싶지 않다면
'거대 IT 플랫폼(야X자 등)이 관광업계를 독식하려 한다'
'각국 통계에도 안 잡히는 에어비앤비가 무슨 관광업이냐'
'여가와 여행의 개념을 구분하지 못하느냐'
여행, 여가 경쟁력의 문제다
얼마 전 정부기관에서 마련한 정책 세미나에 패널로 참석했을 때, 유튜브 생중계에서 (놀랍게도) 위와 같은 댓글이 이어지는 걸 봤다. 한 마디로 여행업계를 대변하지 않는 이들이 탁상공론하고 있고, 특히 내게는 왜 플랫폼 비즈니스 입장을 옹호하냐는 것이다. 특정 서비스와 이해관계가 없는 나로서는 딱히 답할 가치를 느끼진 않는다. 하나 확실한 건, 정작 내 책을 꼭 읽었으면 했던 '업계' 주체들이 여전히 책 제목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알겠다.
책 <여행의 미래> 출간 이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코로나 이후 여행'이다. 하지만 지난 7년간 기업 강의를 하면서 발견한 여행 소비 변화의 기준점은, 코로나보다 훨씬 이전이다. 십수 년간 혁신이라곤 없었던 관광상품과 실제 여행 소비 패턴은 더 이상 서로 접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벌어져 있었다. 그 틈새에 IT 기반 플랫폼이 들어와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건 여행업계만의 변화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이다. 이게 산업을 '보호'한다고, 계속 예전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흐름일까?
여행상품을 하나라도 만들어서 돈 받고 팔아본 사람만이 이 바닥 사정을 말할 수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여행사가 현시대의 변화를 읽고 자생적인 생존 대안을 꾸준히 내놓아 왔다면, 업계인도 아닌 내가 5년간 전 세계의 호텔과 컨퍼런스를 다니며 '여행의 미래'를 고민하는 책을 낼 일은 없었을 것 같다.
플랫폼에 묶이기 싫다면, 스스로 되어야 한다
이제 코로나로 이동이 중단된 상황에서, 국내여행은 업계의 유일한 대안이다. 하지만 우리의 여가 시간은 코로나 이전이나 지금이나 한정되어 있다. 퇴근 후, 주말과 같은 짧은 시간을 놓고 모임 플랫폼, 경험 플랫폼, 심지어 넷플릭스와도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국내여행 시장이 과연 여행과 여가를 분리할 수 있는 시장일까? 여행과 여가를 구분할 시간에, 어떤 경험이 체류시간의 '경쟁력'을 갖느냐로 관점을 바꿔야 한다.
이제 새로운 국내여행 상품은, 과거에 '프로 여행러' 중에서 지역에서 콘텐츠를 직접 발굴하여 로컬 크리에이터로 활약하는 이들이 혁신적인 생산자 역할을 할 것이다. 최종 결제? 업계는 이제야 '거대 플랫폼이 우리를 죽인다'라고 토로하지만, 10년간 승승장구해온 글로벌 OTA 조차 생존의 위기에 처한 게 현실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OTA조차 거치지 않고 지도에서 네이버 예약을 눌러 물건 사듯, 전시 예약을 하듯 여행을 구매한다.(내 책의 원래 제목이 '여행, 어디서 구매하시나요?'였다) 결국 여행 공급자는 여러 플랫폼을 적시적소에 활용하면서 기획력을 발휘하고, 기존의 여행 영역 너머에서 무형의 콘텐츠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시점이다. (하반기 프립소셜클럽을 통해 이 대목을 집중적으로 독서토론 + 공부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보려 한다)
세미나가 끝나고, 허공에 대고 얘기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다소 지치는 걸 느꼈다. 기분전환도 할 겸 코엑스에 두어 달 전 오픈했다는 쿠캣마켓으로 향했다. 푸드와 미디어를 결합해 큰 성공을 거둔 온라인 플랫폼 쿠캣은,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경험'을 제공한다. 한 가지 포인트는 비대면과 편의성이다. 입구에 길게 늘어선 줄은 모두 '비대면' 키오스크에서 결제 순서를 기다리는 이들이다. 반면 직원 계산대에는 줄이 하나도 없다. (단, 계산대는 키오스크와 하는 일이 다르다. 키오스크는 레스토랑 메뉴 결제, 계산대는 상품 결제를 맡고 있다.)
시중에서 쉽게 사기 어려운 전국 각지의 전통 술, 뉴욕에서 핫하다는 토끼 소주 등이 진열되어 있어 큐레이션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냉동 칸에는 대기업 마트 제품이 아닌, 쿠캣의 PB 상품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니까 언뜻 보기에는 고급스러운 편의점이나 마트처럼 보이지만, 판매하는 제품은 '쿠캣' 제품이니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다. 한참을 빙빙 돌며 구경하다가 예쁜 패키지의 막걸리 한 병을 골라, 한산한 직원 계산대에서 구매를 마쳤다. 쿠캣마켓을 나서면서 문득 생각했다. 플랫폼에 종속되기 싫다면, 스스로가 크든 작든 플랫폼이 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관광정책 세미나에서 내가 했던 얘기는 방송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098/clips/45
P.S 위 이야기는 특정 여행사나 업계에 재직하시는 구성원 분들께 드리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오히려 재직자 분들이나 관광 연계 전공자, 졸업생 분들은 하반기에 진로 고민이 많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함께 고민하면서 준비해 보자는 취지로 유튜브에서는 '35세 이전에 내 업 구축하는 법'을 주제로 짧게 이야기를 드리고 있어요. 개인에게 도움이 될 정보와 책 추천 등은, 유튜브에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기업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호텔 칼럼니스트와 여행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좀더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인스타그램 @noni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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