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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Feb 01. 2016

나를 유혹하는 TV 속 여행지, 그 이면

책 '대중 유혹의 기술'을 읽으며


선생님, 이번 달에 혹시 아이슬란드 강의 안 되세요?

작년 이맘때 아카데미 매니저에게 받은 '크로아티아하고 그리스 강의 안 되세요?'와 같은 맥락의 질문이다. 작년에도 그랬듯, 이 질문 또한 몇 달 후면 사라질 게 분명하다. 여행은 대중 트렌드에 민감한 시장이다. 2년간 여행글쓰기 정규 과정을 맡아 오면서, 수없이 많은 여행강의가 아카데미에 반짝 생겨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렇게 철따라 바뀌는 일회성 특강은 '여행지(Destination)'에 좌우된다. 그 여행지가 선택되는 최고의 기준은 단연,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여행지다.


해당 여행지 책을 1~2권 낸 작가들이 단기 특강을 진행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들을 이 바닥에서 계속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여행지의 유행은 끊임없이 바뀌고, '강의'라는 분야 자체가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인 작가들은 많은 사람 앞에서 생각을 전달하는 스피치를 글보다 훨씬 힘들어한다. 그래서 저서를 요약한 제법 두툼한 자료를 나눠주며 이를 소개하는 정보 전달에 촛점을 맞춘다. 다행히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헬리캠으로 스펙터클하게 담아낸 TV 속 여행지를 잠시 들여다보는 시간 만으로도, 당장 떠나지 못하는 현실의 대리만족은 충분히 된다. 문제는 이 대리만족의 대상(여행지)이 우리의 스스로의 욕망이나 필요가 아닌, 미디어가 주입해준 수동적 욕망으로 끊임없이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미디어가 절대적으로 좌우하는 대한민국의 여행 트렌드는 과연 정상일까? 갑자기 의문이 생긴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내 여행지마저 정해주는 삶의 방식을, 우리 사회는 은연 중에 부추기는 건 아닐까? 내 취향으로 계획한 여행이 아니라 TV에 소개된 곳을 따라가고, SNS 인증으로 유명 관광지와의 투샷을 증명하는 여행이 어느 새 우리의 '힐링'이자 '휴식'으로 둔갑한 지 오래다. 획일화된 맛집과 과자 열풍, 직업관, 나아가 삶의 방식까지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개인의 취향을 조종(혹은 통제)당하는 것이 대단히 쉬운 일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여행시장에는, 단순히 미디어의 편향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이 자리잡았다. 최근 종영한 여행 예능 프로그램을 예로 들면, 해당 국가의 대사관과 관광청의 전폭적 지원 하에 모든 관광지를 회차 별로 꼼꼼히 소개한 후, 이를 완벽히 반영한 패키지 여행상품을 TV 방영 시점과 동시에 판매했다. 여행상품 개발이 하루이틀만에 만들어지는 게 아님을 감안할 때, 이는 TV 프로그램과 여행상품을 함께 전략적으로 기획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EBS 다큐와 책으로 동시 제작된, '대중 유혹의 기술'


책 <대중 유혹의 기술>에서는 미디어가 일방적으로 휘두르는 대중 트렌드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우리가 즐겨보는 리얼리티 쇼는 '위반-위기-교정'의 3단계(사회인류학자 빅터 터너가 주창한 사회적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이전의 여행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 형태였다면, 지금은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여행지를 압도하는 리얼리티 예능으로 진화했다. 여행 예능은 다큐처럼 정보전달만 하지 않는다. 위기상황과 이를 이겨내는 감동적인 메시지가 필수 요소다. 여행지는 이 서사를 든든히 뒷받침하면서, 헬리캠이 그려내는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우리의 마음에 화려하게 각인된다. 


"그들의 귀에 드라마를 집어넣어라. 그러면 알아서 자랄 것이다"
- '대중 유혹의 기술' 중에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인식하는 세상이 아닌, 미디어가 그려내는 사회적 현실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진다" 라고 언급한 대목은 지금의 여행시장과 일치한다. "지금 나의 신념이라고 믿는 것이 조금 전 미디어가 나에게 집어넣은 생각이며, 그 근본적인 사실을 잊게 만드는 것이 바로 주류 미디어 드라마투르기의 힘이며 계략"이다. 미디어의 욕망과 나의 욕망을 구분짓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이유다


시간을 자유롭게 운용하면서도 한 분야의 전문성을 쌓고 활동하는 나만의 영역을 갖기까지, 가장 결정적인 재교육이자 인생 재테크는 바로 여행이었다. 현지인과의 인터뷰와 비즈니스 미팅, 선진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테마공간(특히 호텔)을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내 삶에 적용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주도적 여행을 통해, 비로소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가 어떤 모양새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원했던 삶은 '잠재력과 재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 스스로 주도하는 삶'이었다. 디지털 노마드의 형태로 일과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살기위해 필요한 능력을, 20대와 30대 초반에 걸쳐 조직생활을 하며 하나씩 쌓아 왔다. 


삶과 일의 형태를 바꿀 수 있었던 계기는 여행이다. 하지만 여행을 그저 즐기고 끝냈거나 남의 선택에 휘둘렸다면, 아마 지금의 삶을 선택하기는 훨씬 어려웠거나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에 대한 얘기는 따로 차근차근 해보기로.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우리가 원하는 삶과 여행을 스스로 선택하는 힘을 키운다면, 우리를 조종하려는 보이지 않는 힘은 자연스럽게 무력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Who is nonie?

히치하이커 Founder & 여행 콘텐츠 디렉터.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여행법'을 제안합니다. 전국의 기업과 개인을 대상으로 '스마트한 여행영어' '직장인 여행작가 입문' 등 다양한 여행강의를 합니다. 여행잡지 기자 출신이면서 파워블로거, IT/출판업계 홍보 8년차에 전격 독립, 1년에 60일 이상 전 세계 최고의 호텔을 탐험하고, 마케팅 컨설팅 및 홍보대행을 합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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