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다영 nonie Jun 07. 2021

호텔, 럭셔리 브랜드 외에는 청소 안 해준다고?

열망이 이끄는 경험 소비의 명암 2. 호텔

지난 포스팅에서 비즈니스 석을 관람하게 설계된 이코노미 석의 탑승 동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퍼스트 클래스의 숨겨진 타깃이 누구인지 소개했다.


"모든 사람이 '부자'와의 경제적 격차를 늘 인식하는 양극화 사회에서는,
나보다 위에 있는 계급을 열망하며 소비하는 비즈니스가 만들어진다."



이 플렉스 이코노미 현상은 여행산업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호텔은? 좀더 노골적이고 치밀하다. 항공 좌석이 기껏해야 퍼스트, 비즈니스, 이코노미라면 호텔 객실은 요금에 따라 십 수 가지 객실로 세분화된다.



SNS 여론, '한라산 뷰'에 발끈하는 이유

객실의 넓이 만큼이나 가격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있다. 바로 '전망(View)'이다. 특급 호텔이 제공하는 핵심 가치는 '일상을 벗어난 럭셔리'다. 따라서 이에 합당하는 객실과 전망을 갖춘 호텔 서비스에 그만한 가격을 내는 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앞으로의 럭셔리도 그럴까? 공공의 전망을 사유화하고 지역과 연계성도, 상생도 없는 호텔에 돈을 쓰는 행동에 대해서도 '럭셔리'라고 생각할까?   


무엇보다,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동경하고 부러워할까?



출처: 하얏트 닷컴 hyatt.com


2020년 12월에 문을 연 제주도의 그랜드 하얏트와 호텔이 입점한 드림타워에 대해, SNS에서 일련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중국 자본과의 합작, 초고층 상업시설과 호텔의 결합, 호텔과 지역과의 괴리 등은 상업 부동산 업계에서 호텔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따라서 MZ세대가 호텔을 바라보는 사회적 맥락의 변화를 들여다 봐야, 이 비판을 제대로 볼 수 있다.


2030 세대는 양극화가 심화되는 환경 속에서 각자도생과 생존을 고민하는 개인의 집합이다. 이들이 잠시 숨을 돌리고 싶을 때 가장 많이 떠나는 여행지는 제주이고, 저마다 제주에 대한 소중하고 애틋한 추억을 갖고 있다. 그러한 맥락 속에서 이 호텔의 출현을 바라보면, 한라산을 독점하는 고층 전망에 대한 격앙된 비판과 반감을 이해할 수 있다. 어떤 호텔에서 카지노, 부산의 엘시티, 부자의 횡포와 같은 부정적 키워드가 먼저 연상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그 호텔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일련의 타임라인은 그러한 압박감을 반영하고 있다. 호텔 오픈 이후 제주소상공인연합회가 "제주 드림타워 쇼핑몰 운영 중단하라"며 주변 상권 침해를 항의하자, 드림타워 측은 대규모 점포 위반을 사과하고 상생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2주 뒤, 관광공사까지 나서서 롯데호텔과 함께 전통시장을 응원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과연 6주간의 캠페인이 끝나면 무엇이 남을까? 상생과 협력에 힘쓰겠다는 6개월의 기간이 끝나고 나면, 이 일대의 상권은 어떻게 변화해 있을까?



출처: loyaltylobby


메리어트, 이제 럭셔리 브랜드만 청소해준다?

여행의 계급화 심화는, 미국에서도 핫한 주제다. 6월 4일, 여행 분야 유명 매체인 로열티 로비에는 '메리어트 하우스키핑의 새로운 소식: '오직 럭셔리 브랜드만' 이라는 뉴스가 올라왔다.


메리어트의 최신 뉴스레터에 따르면, 코로나 19와 비용 절감을 구실로 메리어트의 최상급 라인(리츠칼튼, 에디션, JW 등 총 7개 브랜드만 '요청없는 자동 방청소(+턴다운)'가 이루어진다. 반면 쉐라톤과  메르디앙을 비롯한 모든 호텔은 '요청을 해야' 연박  방청소가 이루어진다. 

물론 이 정책이 인터내셔널인지, 미국 호텔만 시행할 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은 에어비앤비와의 유일한 차별점이었던 호텔의 방청소 서비스가, 이제는 당연하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소비자들도 이러한 계급화에 비판없이 동조해온 경향이 있다. SNS에서 쏟아져 나오는 호캉스 경험은, 끊임없이 왜곡된 열망을 서로에게 투사시켜 왔다. 남에게 뒤쳐지지 않아야 하는 한국인 특유의 불안감, 힘겨운 사회생활로 텅빈 내면을 소비로 채우려는 보상심리 등이 겹친 해외여행과 호캉스 열풍은 전 세계 호텔산업이 소비자의 지갑을 마음껏  '분류'하는 좋은 구실이 되어 주었다.


다행히도 소비자들은 여행 소비의 계급화를 노골적으로 체감하는, 어떤 임계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와 같은 환경 재앙 이후 여행에 대한 개인의 가치가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고, 또 변화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조금 불편하지만 지역과 환경에 보탬이 될 소비를 의식적으로 하려는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더 민감하게 여행 소비의 기준을 세워갈 것이다.


10년 전 호텔여행을 시작하게 해준 첫 호텔인 네덜란드의 시티즌 엠, 유럽의 여러 독립 브랜드는 호텔 객실로 계급을 형성하지 않고도 탄탄하게 비즈니스를 일구어가고 있다.(스위트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럭셔리 호텔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럭셔리의 정의와 기준을 소비자의 의식 변화에 맞추어 섬세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젠 크고 화려한 건물과 독점적인 뷰를 무조건 동경하기 보다는 '중국스럽다'거나 '탐욕스럽다'고 느끼는 소비자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으니 말이다.






 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일반 기업에서는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산업 칼럼니스트와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nonie21 

무료 뉴스레터 (팝업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