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다영 nonie Sep 19. 2016

호텔여행자가 만난, 호텔리어

나는 호텔에서 여행을 배운다

4년 째 호텔여행을 해오면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을까? 문득 돌이켜보면, 화려한 식사나 아름다운 객실보다 더욱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건 역시 사람이다. 여행의 속성이 본래 그러하듯, 낯선 타인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 비로소 나를 돌이켜보게 되기 때문이다. 내 경우엔, 그 장소가 '호텔'이다. 호텔의 시설이 얼마나 좋은가, 서비스가 얼마나 훌륭한가도 중요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기억이 가장 오래 간다. 호텔여행의 여운을 좌우하는 큰 요소는, 바로 호텔을 이루는 사람들 '호텔리어'다.


일반 여행자가 호텔을 찾으면 고객 대면을 담당하는 프론트 데스크나 컨시어지, 레스토랑 외에는 호텔리어와 마주칠 기회가 딱히 없다. 하지만 나는 취재를 겸해서 묵는 일이 많다 보니, 대부분 투숙 첫날에 고객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와 오피스의 홍보 담당자, 때때로 총지배인과도 두루 인사를 나눈다. 레스토랑 소개를 위해 런치나 디너를 함께 갖는 일도 빈번하다. 업계에서 오래 일한 호텔리어들은 대부분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매너, 언어 구사력이 매우 출중하다. 고객이나 매체를 응대하며 오랜 시간 갈고 닦여진 스킬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항상 많은 걸 배우게 된다. 


호텔 소개만 받고 헤어지는 경우와 달리, 식사나 티타임 자리를 갖게 되면 호텔리어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도 꽤 많이 나누게 된다. 나이와 경력이 많은 커리어우먼 분들을 만날 때도 있지만, 대부분 내 또래의 젊고 열정적인 여성들이 많다보니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며 금방 친해진다. 그 중에서도 깜짝 놀랄만큼 자신의 삶과 호텔에 열정이 가득한 몇몇 이들과의 대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방콕의 도심 빌딩숲에 깊숙히 숨어 있는, 아름다운 리조트형 호텔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만난 방콕의 어느 호텔과도 다른,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한 품격이 흐르고 있어서 더욱 호텔을 소개받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잠시 후 만난 홍보 담당자 C는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호텔의 부대시설과 객실을 찬찬히 소개해 준다. 그런데 뜬금없이 내게 묻는다. 'nonie, 혹시 이 호텔 알아요? 나 이번 주말에 가는데, 혹시 여기도 알고 있나 해서요'


그녀가 핸드폰 속 검색결과로 내민 호텔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차오프라야 강변의 소형 호텔이었다. 방콕에 호텔이 2천 개쯤 된다지만 왠만한 호텔은 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로컬의 정보력은 한 수 위구나.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태국과 주변국의 알려지지 않은 호텔을 두루 다니고 있어요. 나중에 귀국해서도 궁금한 호텔 있으면 연락해요'란다. 호텔리어의 취미가 호텔여행이라니! 게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끊임없이 새로운 호텔을 찾아 다닌다니, 이길 수가 없다 이건.


현재 몸담고 있는 호텔을 홍보할 때, 다른 호텔을 돌아보고 모니터링한 내용이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된단다. 귀국 후 인스타그램의 타임라인에는, 정말로 매주 그녀의 여행사진이 빠짐없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그녀를 통해 알게 된 태국과 베트남 등지의 새로운 호텔도 꽤 된다. 이런 걸 덕업일치라 해야 하나. 투철한 직업정신, 그리고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는 취미를 동시에 가진 그녀가 참으로 부럽다. 


    

   


마카오에 새로 오픈한 한 특급 호텔은, 특히 애프터눈 티가 일품이라며 꼭 소개해 주고 싶단다. 그래서 특별히 오후에 티타임 일정을 잡았다. 티 포트에 담긴 향기로운 티, 클로티드 크림과 잼 발라 크게 한 입 베어무는 정통 스콘의 맛이 착착 감긴다. 스콘이 맛있다고 칭찬을 했더니, 갑자기 맞은 편 담당자 K의 눈빛이 반짝인다. 호텔을 소개할 때는 차분하고 조용했던 그녀가 갑자기, 속사포처럼 빵과 버터에 대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열혈 파티시에 지망생이었다. 곧이어 인스타그램(자신의 완성작품만 올리는 계정이 따로 있었다)을 보여주며 직접 만든 화려한 케이크를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호텔에서 왠만큼 경력을 쌓고 나면 언젠가 파티세리에서도 일을 하거나 직접 차리고 싶다고도 했다.  


마카오 로컬인 그녀는 고맙게도 퇴근 후 현지인 식당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고, 맛있는 현지식 저녁을 함께 했다. 식사 후 그녀는 매일 들른다는 근처 수퍼마켓에서, 가장 싼 버터를 한 덩이 샀다. 퇴근 후 매일매일 케이크를 만들어 재료비가 많이 드니, 버터는 저렴한 걸 써야 한다고 했다. 

귀국 후, 그녀가 간절히 찾던 한국의 베이킹 스튜디오(외국인 대상으로 레슨을 하는 곳) 연락처를 찾아 보내주었다. 언젠가 그녀가 꿈꾸는 대로 자기 이름을 건 스위트 숍을 운영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 


이들 외에도 전세계에서 만난 호텔리어 중에는 여행을 나보다 훨씬 가열차게 다니는 이들이 참 많아서 종종 놀라곤 한다. 다양한 분야에 꿈을 가진 이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고, 나의 열정과 마음가짐도 늘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호텔을 여행한다. 


 

호텔여행자 nonie가 지금까지 여행한 호텔이 궁금하다면?




Who is nonie?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과 공공기관, 직장인 아카데미에 여행영어 및 스마트 여행법 출강으로, 휴일도 없이 싸돌아 다닙니다. 호텔 컬럼니스트. 연간 60일 이상 세계 최고의 호텔을 여행하고, 함께 일도 합니다.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

강의/방송/세미나 요청은 강사 소개 홈페이지 에서 문의해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호텔여행자에게, 묻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