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가장 우아해지는 시간, 호텔 라이프
호텔이 여행자에게 주는 큰 미덕은, 일상성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욕구를 완벽하게 해소해 준다는 것이다. 종종 좋은 호텔은 여행자인 나의 시간을 안온하게 독립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복잡한 도심을 여행하다가 호텔로 돌아오는 순간, 나의 세계는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고 평온한 휴식이 신속하게 제공된다. 하지만 호텔의 모든 공간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있지만은 않다. 한 발짝 더 깊숙이 들어간 경계선, 바로 대부분의 특급 호텔이 운영하는 클럽 층과 클럽 라운지가 그곳이다.
일반적으로 클럽 라운지는 클럽 층에 있는 객실을 예약하면 투숙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다. 요즘에는 클럽 라운지가 단순한 휴게 공간을 넘어서서 VIP 고객을 위한 맞춤 컨시어지, 체크인/체크아웃 서비스, 조식은 물론 애프터눈 티와 샴페인 디너 등 다양한 역할로 확장되는 추세다.
난 대부분의 호텔의 1층 로비에 마련된 로비 라운지는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너무 많고, 자리는 언제나 붐비고, 음료는 호텔 이름값만큼 비싸진다. 그래서 폐쇄적이고 여유로운, 언제든 마음 놓고 간단하게 다과를 즐기며 쉬어갈 수 있는 클럽 라운지가 마음 편하다. 취재로 호텔을 가는 경우엔 일부러 라운지를 보여주기 위해 클럽 층의 객실을 내어줄 때도 많아서, 그동안 거쳐간 호텔 중 기억에 남는 라운지들이 몇 있다.
세계적인 럭셔리 호텔 브랜드 랭햄(Langham)의 고객 서비스는 일종의 버틀러처럼 맞춤으로 제공된다. 특히 클럽층에 머무를 경우 나를 담당하는 직원이 투숙 내내 세심하게 케어해 준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미스 김, 뭐 필요한 거 없으십니까?'라고 묻는 그들의 서비스는, 무척이나 세련되고 사려 깊다. 어느 날 저녁,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테이블에 놓인 치즈 플래터와 와인 한 병, 그리고 매니저의 손글씨가 적힌 엽서. 그러고 보니, 호텔 예약과 동시에 '어떤 드링크를 선호하십니까? 객실에 준비해 드릴까요?'라고 별도의 메일이 왔던 것을 떠올렸다.
창가 너머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시카고의 석양을 잠시 감상하다가, 저녁을 먹으러 라운지에 들렀다. 물가 비싼 시카고에서, 가볍게나마 저녁을 먹을 수 있는 클럽 라운지 혜택은 무척 유용했다. 이날은 시카고의 명물인 시카고 피자를 귀엽게 미니 사이즈로 만들어 놓았다. 그것도 3가지 맛으로! 덕분에 시카고에 와서 아직도 맛보지 못한 진짜 피자 대신, 나를 위로해주는 오늘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치즈가 듬뿍 들어있어 와인과 참 잘 어울렸다.
방콕의 무더운 날씨는, 패기 넘치는 여행자도 금세 지치게 만든다. 이럴 때 타워클럽 르부아의 호텔 라운지는 제 몫을 톡톡히 해준다.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무제한 음료와 하이티 뷔페를 즐길 수 있는 데다, 52층의 화려한 전망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클래스부터 다른 호화로운 라운지에서, 핑거푸드와 시원한 수제 모히토를 곁들이며 저녁 시간을 위해 잠시 쉬어간다. 하이티(High Tea)라고 해서 디저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작게 만든 샌드위치 류도 다양하게 많고 하나하나의 퀄리티도 높았다. 좋은 라운지는, 그 미묘한 경계선을 넘어 들어갈 때의 긴장감이 있다. 르부아의 아름다운 라운지에는 그런 기분좋은 긴장감이 흘러서 더 좋았다.
콘래드 마카오의 조식 뷔페는 1층의 그랜드 오빗을 추천하지만, 클럽 조식과 그랜드 오빗을 모두 경험해본 내 생각은, 역시 Case by case다. 콘래드에서 맞는 첫 아침, 수많은 투숙객으로 북적이는 대형 레스토랑보다는 프라이빗을 보장해주는 클럽의 아침식사가 참 조용하고 좋았다. 중화권의 호텔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영자 신문,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에는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인 중화권의 경제&사회 뉴스가 촘촘히 실려 있다. 천천히 신문을 읽으며, 신선한 빵과 더운 야채, 직접 만들어 주는 계란 요리와 함께 맞는 아침. 이튿날 대형 레스토랑의 조식 뷔페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소중한 여유다.
오랫동안 바라왔던 꿈의 호텔에 도착했는데도, 으리으리한 로비는 영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예상 도착보다 2시간을 훌쩍 넘겨 호텔에 도착했을 때, 마땅히 함께여야 할 짐가방은 아직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캐세이 퍼시픽의 다구간 항공권은 전반적으로 가성비 최고였지만, 싱가포르에서 타이베이로 올 땐 예외였다. 출발 시간이 2시간 이상 연착되면서, 나 포함 대부분의 경유 환승객이 다음 비행기를 모조리 놓치게 된 것이다. 운 좋게도 싱가포르 항공 직항을 얼결에 얻어 타고 왔지만, 짐가방은 뒷 비행기로 밀리면서 졸지에 수하물 분실자가 되었다. 여기서, 첫 번째 호텔이 이렇게도 중요할 줄은 몰랐다. 샹그릴라 호텔을 바로 알아듣고 신속하게 배달 신고절차가 마무리된 것이다. 첫 호텔이 소형 호텔이나 비앤비였으면, 진짜 아찔했다.
불안했던 마음은 호텔에 도착하자 금세 잦아들었다. 체크인하러 클럽 라운지에 올라가는 길, "우리 모두 미스 김을 걱정하고 있었어요" 라며 늦게 도착한 나를 안심시키고, 체크인보다 먼저 조용히 샴페인부터 따라 준다. 차분하게 수하물 신고서류를 건네받아 컨시어지에 접수해 두고, "짐은 잘 도착할 거예요. 늦은 시간이니 먼저 전화를 드린 후 가방을 올려 드릴게요"라며 신속히 대응해주는 클럽 라운지 덕분에 나는 비로소 마음을 진정시키고 객실로 향할 수 있었다. 좋은 호텔은, 때로는 나의 여행을 송두리째 구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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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과 공공기관, 직장인 아카데미에 여행영어 및 스마트 여행법 출강으로, 휴일도 없이 싸돌아 다닙니다. 호텔 컬럼니스트. 연간 60일 이상 세계 최고의 호텔을 여행하고, 함께 일도 합니다.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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