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텔에서 여행을 배운다
침대에서 눈을 뜨면 HD급 와이드로 눈앞에 펼쳐지는 사이반 호수의 물결과 그 너머로 솟은 마카오 타워의 전경. 이제 막 만다린 오리엔탈의 레스토랑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다. 마카오에 온 지도 6일째, 어느 덧 세 번째 호텔과의 만남이다. 첫번째 호텔인 콘래드에서는 멀티 아답터를 두고 나온 것 같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는 순조롭게 모든 일정이 흘러가고 있다.
비록 3일마다 반복해서 짐을 열고 싸야 하는 신세지만, 모든 살림살이는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는 일정에 맞게 어느 정도 분류해 놓았다. 매번 가방에서 꺼내는 건 거의 정해져 있는데, 화장품/욕실용품 파우치와 헤어 브러쉬, 샌들, 노트북과 충전기 연결선 정도다. 나머지는 모두 여름옷이라 다음 행선지인 싱가포르에 갈 때까지는 꺼낼 일이 없다. 마카오는 지금 겨울이고, 걷기 좋은 선선한 날씨다. 난 거의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다. 두 달 전 상하이에서 구입한 유니클로의 블랙 스키니 팬츠와 운동화, 스카프와 얇은 트렌치 코트 차림이다.
언제나 느끼지만 호텔은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호텔 정문을 나서면 호수를 따라 아름다운 조망이 펼쳐지는 넓은 길이 그랜드 리스보아를 바라보며 이어진다. 조깅을 하기에도, 천천히 걷기에도 좋은 길이다. 날씨가 좀 춥거나 날이 어둡다 싶으면 MGM 아케이드의 명품을 구경하면서 호텔로 연결되는 내부 출입구로 들어오면 된다. 여행자에게 있어 호텔이란, 여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편의를 아낌없이 제공하는 공간이다. 컨시어지에서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그들이 쉬는 날 놀러가는 동네라던가), 유명 맛집이라고 소개된 곳보다 훨씬 근사한 미식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호텔이다. 호텔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꿈과 현실의 그 어디 쯤에 있는 것 같다. 항상 모든 것은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고, 안락함과 편안함이 끝없이 이어진다. 적어도 체크아웃을 하기 이전까지는.
매년 평균 60일 이상을 타국의 호텔에서 보내는 상황이다 보니(앞으론 더 늘어날 것 같다), 나만의 호텔 라이프스타일이 조금 생겼다. 뭐랄까, 아무도 내게 강요하지는 않지만 혼자서 지키는 몇 가지 규칙이랄까. 별 건 아니지만, 일단 호텔 어메니티를 함부로 쓰지 않는다. 사실 비행기 타는 것 부터가 환경오염이다 보니 어느 정도의 책임감도 있고, 평소 여행을 대비해 모아둔 샘플을 잔뜩 가지고 다니다 보니 비치된 용품을 쓸 일이 없다. 그래도 처음 보는 브랜드나 호텔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스파용품은 리뷰도 써야 하니 열어서 사용해 본다. 대부분은 한 두 번밖에 안쓰니 많이 남는 편인데, 바디워시는 비누 대신 핸드워시로 쓰고, 새제품은 모두 그대로 놔두고 온다. 이렇게 해도 일회용품 낭비를 아예 안할 수는 없다는 게, 매번 호텔을 다니며 고민하는 딜레마다.
운좋게 스위트룸에서 혼자 머물 때면, 방은 보통 하나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장실도 여러 개 있고, 심지어 세면대도 항상 두 개씩 있다. 가급적 한 곳만 쓰고 클리닝할 범위를 너무 넓히지 않게 조심하게 된다. 사실 이건 호텔이 아니라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인데, 서울 호스팅도 경험하고 나니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게스트의 매너에 대해 새삼 반성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침대와 이불도 아무렇게나 헤쳐놓고, 청소는 커녕 온갖 쓰레기를 잔뜩 테이블에 늘어놓고 짐가방은 활짝 열어놓은 채로 방을 나섰던 예전의 내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워진다.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클리닝 하시는 분들이 눈살 찌푸리지 않을 만큼은 정돈을 해놓고 나가려고 한다. 참, 쉐라톤이 특별히 멋지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유일하게 분리수거 쓰레기통을 객실마다 두고 있다는 것. 전세계 어디나 동일하다.
분명 좋은 호텔 서비스를 받으며 지내는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행복한 시간 중 하나다. 누구나 돈을 벌고 성공하면 멋진 여행지에서 좋은 호텔에 묵고 싶어한다. 그래서 일이긴 하지만 최소한 스테이하는 순간 만큼은 집중해서 이 편안함을 최대한 느껴보려고 노력한다. 이번에 마카오에서 머문 모든 호텔은 '좋은 호텔'에 대한 기존의 내 경험치를 여러 번 갱신하는 꿈같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호텔이 선사하는 럭셔리와 안락함이 멋진 이유는, 그것이 현실과 단절된 비일상의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자로서 가져야 할 호기심이나 열정이 그 안락함에 종종 묻혀버리기도 하고, 로컬 문화와 완전히 분리된 여행을 하기가 쉽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바쁜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다. 물론 객실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통의 이메일을 보내야 하고 거의 매일 미팅 일정이 있지만, 지금의 내게는 더 이상 비일상이 아닌 삶과 일의 연속이기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된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호텔 헬스장을 이용해 간단한 운동을 하고, 만다린에서는 객실에 요가매트가 있어서 집에서 하던 운동을 했는데 체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역시 뭘 하든 운동만이 살 길이라는 걸 체감하면서, 슬슬 오늘의 일정을 시작할 시간.
원문: nonie의 로망여행가방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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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과 공공기관, 직장인 아카데미에 여행영어 및 스마트 여행법 출강으로, 휴일도 없이 싸돌아 다닙니다. 호텔 컬럼니스트. 연간 60일 이상 세계 최고의 호텔을 여행하고, 함께 일도 합니다.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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