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다영 nonie Sep 23. 2016

객실의 주인이 되는 순간, 배스로브

삶이 가장 우아해지는 시간, 호텔 라이프

호텔에서의 휴식을 가장 우아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을 꼽자면, 역시 배스로브(Bathrobe)를 빼놓을 수 없다. 흔히 '파자마'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하고, 배스 가운이라고도 한다. 배스로브의 매력을 잘 모르던 시절엔, 굳이 여행가방에 편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따로 잠옷으로 챙겨 다녔다. 객실에 비치된 길고 거추장스러운 배스로브는 왠지 모르게 어색해서 잘 입지 않았다. 특히 대부분의 호텔에 비치된, 수건에 주로 쓰이는 테리천으로 제작된 두꺼운 배스로브는 입었을 때 몸을 묵직하게 만들고 착용감이 좋지 않다. 그런 내게 배스로브의 매력을 처음으로 알려준 호텔은, 바로 힐튼 소속의 '콘래드(Conrad)' 호텔이다.  



콘래드 마카오


이전까지는 배스로브를 잘 입는 편이 아니었는데, 콘래드의 배스가운은 입어볼 가치가 있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아서, 옷장을 열어보니 이렇게도 아리따운 퍼플색의 가운이 들어있다. 침대 밑에 살며시 준비된 Her, Conrad가 수놓아진 보랏빛 슬리퍼와 완벽한 컴비네이션을 이룬다. 어쩜 컬러마저도 내 맘에 쏙 든다. 참고로 남성용은 블랙 컬러다.


다른 호텔의 배스가운은 두꺼운 테리천으로 만들어져서 수건을 뒤집어쓴 것처럼 뻣뻣하고 불편하기 일쑤인데, 콘래드의 배스가운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가볍고 편안하다. 운좋게 업그레이드되어 드넓고 호화롭지만, 남의 집 놀러온 것 것처럼 낯설었던 스위트룸이 비로소 내 방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콘래드 센테니얼 싱가포르


싱가포르의 콘래드 센테니얼에 첫 투숙하던 날, 마카오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배스로브를 가장 기대했는데 옷장을 열었더니 일반 가운뿐이다. 그러나 싱가포르 콘래드엔 반전이 숨어있다. TV 밑 서랍을 열면 또 다른 배스로브가 준비되어 있다. 일본식 유카타를 본뜬 얇고 시원한 배스로브인데, 이것 역시 입은 느낌도 들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활동성이 좋다. 로비에 있는 기프트숍에서 판매도 한다는 안내가 적혀 있다. 역시 똑똑한 콘래드.




인디고 호텔, 방콕


작년에 그랜드 오픈하자마자 찾았던 인디고 방콕. 인터컨티넨탈 특유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트렌디한 객실도 참 아름답지만 욕실이 단연 압권이다. 다양한 소재와 오브제를 이질감이 들지 않게 세련된 디자인으로 마무리했다. 골드 톤의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앤티크 한 세면대와 욕조에는, 로컬 브랜드인 판퓨리의 스파용품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하지만 내 시선은 배스 가운과 슬리퍼에 오랫동안 멈춰 선다. 시원한 재질의 린넨 천으로 만든 가운 세트라니, 이보다 열대의 도시 방콕에 잘 어울리는 휴식의 차림새가 또 있을까? 자칫 욕실의 금속 재질이 발산하는 차가운 기운을, 편안한 소재의 배스 가운과 슬리퍼가 부드럽게 상쇄해 주는 역할을 한다. 배스로브와 슬리퍼를 착용하는 순간, 비로소 이 공간의 주인이 된다.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버진 호텔, 시카고


작년 말의 시카고에서 배운 건, 역시 미국 여행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몇 번 와봤다고 나도 모르게 미국을 만만하고 안일하게 본 걸까. 악명 높은 미국 공항의 입국심사는 범죄자 심사에 가까울 정도로 힘든 10분이었고, 수하물에 넣어 붙였던 현금 500$이 감쪽같이 사라진 걸 발견한 건 시카고 온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현금 도난과 속사포처럼 날아오는 시카고 영어에 적응할 새도 없이, 하루하루 여정은 계속되어야만 했다. 


나를 위로해준 건, 이번에도 호텔이었다. 야심 차게 예약해둔 버진 호텔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특유의 생동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체크인하자마자 옷장부터 슬쩍 열어본다. 그토록 원하던 부드러운 감촉의 가벼운 파자마가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부터 나는 호텔을, 이런 배스로브가 있는 호텔과 없는 호텔로 나누게 됐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덜 깬 채로, 주섬주섬 머리맡에 준비된 커피 드립 세트를 챙겨 테이블로 향한다. 버진 호텔에는 특이하게도 드립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실 수 있도록 하리오 드리퍼와 드립 포트, 여과지까지 갖춰 놓았다. 이런 센스쟁이 호텔 같으니. 평소에는 매일 해마시는 커피지만, 커피 맛없기로 유명한 미국에 와서 내가 내린 커피를 아침에 마실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할 뿐이다. 아직 체크아웃까지는 몇 시간 남았으니, 배스로브를 입고 있는 이 시간만큼은 내가 이 공간의 주인이다. 이제 1시간쯤, 느긋하게 커피나 마셔볼까.:) 




호텔여행자 nonie가 지금까지 여행한 호텔이 궁금하다면?




Who is nonie?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과 공공기관, 직장인 아카데미에 여행영어 및 스마트 여행법 출강으로, 휴일도 없이 싸돌아 다닙니다. 호텔 컬럼니스트. 연간 60일 이상 세계 최고의 호텔을 여행하고, 함께 일도 합니다.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

강의/방송/세미나 요청은 강사 소개 홈페이지 에서 문의해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호텔에서 지내는 삶의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