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커리어 코칭 사례 '퇴사와 여행을 반복해요'
35세 이전에 내 업을 찾고 싶다면 포스팅 후, 몇 년 전 블로그에 달렸던 댓글이 불현듯 떠올랐다. "회사 밥벌이 안 하고 자유로운 일을 하면 잠깐은 잘 나가는 것 같아도 곧 트렌드에 뒤쳐져요. 결국 나이 들면 안정적인 직장 다니면서 착실하게 결혼하고 자녀 키운 사람이 노후가 편하더군요."라는 댓글이다. 이 관점에는 '직업은 성장하지 않으며, 나이가 들면 직업세계에서 도태된다, 그러니 젊은 시기에 남과 같은 직업 트랙에서 빠져나오면 위험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왠지 부모님의 말씀을 듣는 듯한 댓글이다. 그런데 이 트랙을 충실하게 따르던 이들은 어느 날 정신 차려 보니 '하고 싶은 일과, 지금 하는 일은 왜 다를까?'라는 거대한 의문 앞에 봉착하곤 한다. 내 워크숍을 찾는 이들 역시, 대부분 이 편에 속한다.
얼마 전 라디오에 출연한 기획재정부 김동연 장관은, '일자리 문제'에 대한 인식을 이렇게 밝혔다. "노동시장에 나오는 젊은이들이 모두 같은 교육을 받기 때문에, 비슷한 사람을 길러내는 공급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노동의 퀄리티가 동질화되어 있고, 원하는 일자리(대체로 사무직)도 동일하다. 비슷한 교육과 스펙을 보유한 이들이 모두 같은 눈높이의 직장만 바라보니, 일자리에 미스매치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이 시스템의 희생양이자 피해자인 셈이다. 그렇다고 개인은 시스템만 탓하며, 내 삶과 직업을 손 놓고 방관해야 할까? 지금의 일이 나의 희망과 '미스매치'라는 걸 깨달았다면, 뭐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슨 일을 하세요?
서울 4년제 대학교의 1~2학년을 대상으로 진로설계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여행을 베이스로 한, 혹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직업이 많고, 나는 이렇게 일하고 있고, 여행이 삶과 일에 이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자 어김없이 받은 질문, "그래서, 선생님의 직업은 뭐라고 불러야 해요?"
우리가 아는 몇 개 안 되는 직업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어떠한 직장도 평생의 직업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걸, 대학에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들은 저학년이었음에도 직업의 다양성보다는 기업 채용설명회같은 취업 정보가 훨씬 절박해 보였고, 어른들이 말하는 소위 '불안정한 직업'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일찌감치 진로 선택을 강요받는 대학생들은, 비로소 직장인이 되어서야 지금 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없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나는 직장인 시절, 입국신고서의 직업란에 쓸 단어를 매번 고민했더랬다. 'Office worker'가 직업은 아니니까.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지속 가능한 나의 '직업'을 갖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한 것이.
이상은 크지만, 인내하긴 싫다면
그러나, 오피스 워커로 보낸 8~9년이 '비즈니스로서의 직업'을 설계하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하면, 직장인들은 의아해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실망한다.(그래서, 더 다니라고요?) 예를 들면 디지털 브랜딩은 홍보 일을 하며 배운 것이고, 작문실력이나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하며 내 관점을 갖는 힘은 기자 일을 하면서 익혔다. 이직을 할 때마다, 그 일이 내 직업적 독립이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지를 기준으로 고민했다. 그런데 사실, 직장일은 다 거기서 거기다. 일에 임하는 자세나 자신만의 목표가 훨씬 중요하다. 그렇게 어느 시점이 되니, 쌓은 능력치와 네트워크를 모으고 키워서 '나만 할 수 있는 일로 직업을 구축할 수 있겠다'는 시점이 자연스럽게 오더라.
그렇게 직업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을 만나 보니, 직업의 세계란 무궁무진했다. 또한 과거의 직업관으로 앞날을 준비하면 이제는 정말 위험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직장에서 연차는 곧 퇴직 시점으로 연결되지만, 직업의 세계에서 나이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위 댓글처럼 나이가 들면 도태하는 직업도 물론 있지만(물리적, 체력적으로 젊은 시절에 비해 한계가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모든 직업이 그렇지는 않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경륜과 전문성을 갖춘다면, 그 분야의 젊은 진입자와는 견줄 수 없는 장벽과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즉, 이를 쌓아가는 긴 시간과 인내는 필수라는 얘기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 일이 내 성장에 도움이 되는 지를 판단할 새가 없다. 졸업 후 곧바로 직업 전선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거나, 외면하거나, 그럭저럭 견디는’ 계층이 저절로 비대해진다. 특히 독립에 필요한 능력을 제대로 갖추기 전에, 직업세계에서 자발적으로 튕겨져 나가는 이들은 점점 늘고 있다. 이는 사이먼 시넥이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배운 우리 세대에게, 직장 초년생으로서 겪는 다양한 좌절과 실패는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특히 개인의 존재감을 무력하게 만드는 한국 특유의 조직문화는, 이들과 충돌하면서 소속감과 생산성을 저하시킨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퇴사와 해외여행을 반복하는 2030의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진화하는 직업을 갖거나,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빛나고 싶다면.
앞으로 우리가 갖게 될 직업의 종류와 형태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직업 트렌드를 좇기 전에, 나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분석을 끝냈다면,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지를 좀 더 깊게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면 힘들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종종한다. 그럼 이렇게 되묻고 싶다. '과연 당신은 한 번이라도,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져본 적이 있느냐'고 말이다. 좋아하는 일이 지속 가능한 직업이 됐다는 의미는, '차별화된 능력'이 시장에서 이미 검증되었다는 것이다. 일이 삶이고 삶이 일이고, 일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어디서 일해도 생산성과 수익에 큰 영향이 없고, 일을 하면 할수록 당신의 가치가 올라간다면, 행복할까 아니면 불행할까?
지금 하는 일은 당신의 삶을 소비하기만 하는 일인가, 아니면 일 자체가 당신을 성장시키고 있는가?
후자에 Yes라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직업을 가진 것이다. 내가 지금의 일을 직업으로 정성스럽게 가꾸고 키우는 이유는,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돈도 벌뿐만 아니라 내 커리어(경력)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가기 위한 경력이 아니라, 내 이름 석 자를 건 일의 가치가 높아지는 경쟁력 말이다.
얼마 전 TV 방송에 출연해 여러 회차의 강연을 녹화했는데, 해당 방송 작가분이 어제 다급히 카톡을 보내오셨다. 네이버TV의 Top100 전체 순위(!)에 내 강연이 올라왔다며, 이런 반응은 프로그램 방영 이래 거의 최초란다. 이렇게 미디어 노출이 꾸준히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어짜피 길게 보고 하는 일이라 결과 하나하나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되니 내가 가장 빛날 수 있는 자리에 종종 서게 되더라는 것이다. 만약 30대 초반 즈음에 마음속 소리를 외면하고 그럭저럭 견딜만한 현실에 안주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상황이다. 이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면 별로이지 않나요?'라고 묻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답이다.
대책 없이 참기만 하는 것도 큰 시간낭비고, 여행으로 현실을 회피하는 것도 답을 주지 않는다. 원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올바른 방향을 잡는 것이고, 일단 큰 그림을 그렸다면 자잘한 어려움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복해가는 과정은 필수다. 달라지는 직업세계에서는 지속 가능한 직업을 스스로 만들고, 이에 필요한 능력을 나와 맞는 조직에서 유연하게 축적하는 이들이 결정적인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좌석을 가지고 경쟁할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자리를 만들 준비를 할 것인가?
Who is nonie?
국내)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 및 공공기관 임직원을 대상으로 '스마트 여행법' 교육 및 최고의 여행지를 선별해 소개합니다. 강사 소개 홈페이지
해외) 호텔 컬럼니스트. 매년 60일 이상 전 세계 호텔을 여행하고, 함께 일합니다. 2018년 6월, 호텔여행기를 담은 새로운 책이 출간됩니다.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