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ie의 투어리즘 인사이트 - 타이베이 편
'저...대만에 여행 가시는 거에요?'
김포~타이베이로 향하는 비행길에서 습관적으로 기내식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옆자리 승객이 서투른 한국어로 말을 걸어온다. 무표정에 무심한 태도로 앉아있던 내게 선뜻 말을 걸기는 어려웠던지, 사진을 찍는 나를 보며 그제야 '대만에 여행 가는 한국인이구나' 싶었나 보다. 어쩐지 아까부터 내 쪽을 힐끔힐끔 보며 한국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대만 국적기인 에바항공은 대만인의 탑승 비율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녀는 인자한 미소를 가진, 50대 초반 즈음의 여성이다. 대만의 한 은행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그녀는 요즘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이제 30분만 지나면 도착이니, 옆자리에 한국인이 탔다면 한 마디라도 건네보고 싶은 마음일 터였다. 지금까지 한국을 7번이나 자유여행으로 방문할 만큼 한국 여행 마니아인 그녀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자, 나야말로 갑자기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도대체 왜? 무엇이 그녀를 한국에 자꾸 오게 만드는 것일까?
우선 그녀에게는 한국보다 '한국인'과의 인연이 먼저 자리 잡았다. 젊은 시절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그녀에게는, 미국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여행에 재미를 붙인 이후로는 1~2년에 한 번 꼴로 친구가 사는 부산과 서울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그녀에게 한국 드라마와 여행은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학습 교재다. 한국의 사회 문제나 경제 상황도 꽤나 자세히 알고 있는 그녀에게, 한국이 왜 좋냐는 뻔한 질문을 했더니 '앞서가는 대중문화를 향유할 수 있고,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하다.'라고 했다. 덧붙여, 이 질문을 오히려 의아해했다. '너네 나라 좋은 거 되게 많은데, 왜 몰라?'
한국 여행 일정, 어떻게 준비하세요?
자유여행의 장벽을 낮추는, 중화권 여행 어플
한국 여행이 반복되면서, 그녀는 매번 자신의 여행을 스스로 계획해왔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짧은 휴가에 다녀오느라 3박 4일 정도로 매우 빡빡한 일정이었던 듯했다. 여기서 직업병(?)이 발동을 했는지, 그녀에게 '혹시 여행 준비 과정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대만인이 한국 여행할 때 쓰는 여행 서비스가 있어요. 이거면 다 돼요'라며 몇몇 애플리케이션을 소개했다. 가장 인상 깊은 어플은 '한차오(hanchao, 韩巢)'다. 그런데 어플 밑 부분에, 낯익은 SK의 로고가 보였다.
한차오는 중국 회사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일본인을 위한 한국여행 포털 '코네스트'(한국 소재)와 SK 계열사의 합작법인이었다. 여러 대기업이 중국 인바운드 여행정보 시장에 큰 관심을 보여왔지만, 한차오는 2012년부터 일찌감치 서비스를 개시하여 탄탄한 인지도를 쌓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KTO(한국관광공사)의 자유여행 앱 韩国自助游(Korea walks)가 약 5만 다운로드 선(구글 플레이 스토어 기준)인데 비해, 한차오는 사이트 메인에 게재된 누적 수치가 현재 160만 건이다. 서울과 부산여행 가이드북을 집필한 대만의 여행작가 '안나'는, 한차오만 있으면 맛집과 관광지 찾기는 물론, 독점적인 식당 할인쿠폰과 온라인 티켓 예약까지 가능하다며 자신의 블로그에 한차오를 강력 추천했다. 안나의 가이드북에 소개된 곳들도 모두 한차오 지도를 QR코드로 연결해 놓았다. 젊은 중화권 여행자들이 이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음의 장벽을 낮추는 소통의 힘, 유튜브
문득 그녀가 비행기에 탑승할 때 꽤 많은 쇼핑백을 짐칸에 올려둔 것이 기억났다. 무엇을 샀느냐고 물으니 활짝 웃으며 '주변에서 부탁해온 화장품이 있어요.' 하며 내게 알려준 이름은 뜻밖에도 w.lab이라는 브랜드였다. 대만에선 구매가 어렵고, 한국에서도 온라인으로 구매해야 저렴하단다. 그래서 한국 친구에게 배송 수령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을 했다. '저는 한국의 여행과 쇼핑 정보를 주로 유튜브에서 얻는답니다. 혹시 이 채널 아세요?'라며 한 유튜버를 소개해 주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녀가 20대가 아닌, 50대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이 채널에 들어가 보니, 한국 여행 정보라 할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한국 여대생의 일상과 대만 여행 브이로그로 이루어져 있었다.(이러한 구성은 유튜브의 공식이라 할 만큼 보편적이다) 게다가 굳이 꼽자면 한국 관련 영상보다 대만 여행의 비중이 더 높았다. 일반적으로 '외국인이 바라보는 우리나라'와 같은 외부 시선은 호기심의 대상이다. 한국인이 '영국 남자'를 소비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유창한 중국어와 친숙한 이야기로 다가간 한국인이 일상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 '아, 평범한 한국인은 저런 걸 먹고 저런 곳을 가는구나'라는 여행정보로 탈바꿈한다. 대만 여성은 '그녀는 너무 귀여워요'라고 했다. 유튜버를 한국인 친구처럼 가깝게 느끼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채널에는 어떤 의도나 목적성이 없었다. 이를테면 한국을 홍보해야겠다!와 같은 것 말이다. 친근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콘텐츠로 한국을 접하는 그녀에게 한국 여행 지름신이 자주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비행기는 어느덧 타이베이 송산공항에 도착했다. 아쉽지만 그녀와도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급하게 호텔 예약 루트와 선택 과정까지 물어보고 나서야 명함을 주고받으며 작별을 했다. 지면상 모든 이야기를 풀어놓을 순 없지만, 크게 느낀 것은 민간 업계의 자율성과 창의성은 잘 뒷받침되고 있는가? 였다. 특히 유튜브와 같은 소셜 콘텐츠의 경우 정부나 기업이 개입해서 만든 한국여행 홍보 영상은, 아무리 브이로그의 자연스러움을 가장한다 해도 실제 중화권 여행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브런치에서 본 관광 이슈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정부의 스타트업 베끼기는 그만!' 이 글이 내내 떠올랐던 건 왜일까. 유튜브가 유행이라고 하면 크리에이터 육성에 각종 지원사업이 쏠리고, 민간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싶으면 스타트업 공모전을 연다. 과연 그것이 실제 외국인 여행자 유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투자가 되어 왔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외국인들이 실제로 참고하는 여행 정보는, 여전히 그 테두리 바깥에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nonie의 투어리즘 인사이트: 최근 방문한 국가에서 발견한 여행업계의 새로운 흐름과 변화를, 저의 주관적 시선으로 해석하여 바라봅니다. 첫 번째 데스티네이션은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입니다. 앞으로 총 5~6편 정도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Who is nonie?
국내)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 및 공공기관 임직원을 대상으로 '스마트 여행법' 교육 및 최고의 여행지를 선별해 소개합니다. 강사 소개 홈페이지
해외) 호텔 컬럼니스트. 매년 60일 이상 전 세계 호텔을 여행하고, 함께 일합니다. 2018년 7월,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출간.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