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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K Oct 19. 2020

애플워치너마저

Applewatch, you too

주말에는 늘 집안일에 시간을 할애한다. 세탁기를 가득 메운 빨랫감을 탈탈 털어 볕이 잘 드는 곳에 주르륵 널고, 한 주 동안 가득 찬 쓰레기통을 비워내고, 화장실 이곳저곳 숨바꼭질하듯 붙어있는 머리카락들을 훔쳐내고, 청소기와 물걸레로 은근하게 버석거리며 신경을 거스르던 바닥을 말끔하게 닦아낸다. 청소를 마치고 마른빨래들을 차곡차곡 개어 수납장에 넣고 마지막으로는 셔츠를 다린다. 다림질은 왜 아무리 해도 속도가 안 붙는지 참… 그래도 말끔하게 펴지는 주름을 보며 미묘한 쾌감을 느낀다.


이 모든 일을 해내려면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화장실 청소를 본격적으로 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날은 가시밭길뿐이다. 오늘은 바로 그 가시밭길을 걷는 고통의 날이었다. 화장실 바닥 타일에 낀 거뭇한 때를 줄눈이 하얘지도록 솔질로 벗겨내고, 언제 꼈는지 모를 세면대와 욕조의 물때를 몇 번씩이고 문질러 제거하고, 변기를 구석구석 닦아내고 나면 데드리프트를 500개쯤은 한 것 같은 컨디션이 된다. 꽃길만 뭐 길인가 싶다가도 화장실 청소나 냉장고 청소 같은 가시밭길을 만나면 역시 집안일을 야무지게 하는 건 아무나 못 하는 일이지 싶다.


애플워치를 사용한 지 3개월 정도 되어 가는 초보 유저인 나는 다행히도 아직은 활동링의 햄스터다. 애플워치는 3가지 목표의 활동링을 제공하는데 움직이기, 운동하기, 일어서기링이다. 움직이기는 움직여 소모한 칼로리를, 운동하기는 신체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운동이라고 인식할 만큼 움직인 시간을, 일어서기는 단위 시간당 일어선 횟수를 표시하여 완수한 만큼 원 모양으로 도식화해준다. 목표한 활동링을 모두 완성하기 위해 나는 매일 쳇바퀴를 타는 햄스터처럼 바지런히 움직인다. 오늘은 데드리프트 500개급의 집안일이 바로 그 바지런함이었다.


일을 모두 마치고 애플워치의 링을 확인한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애플워치에게 집안일 따위는 운동으로 쳐줄 수 없는 것인지 그 모든 분주함을 뒤로하고도 운동하기링에 단 1분도 카운팅이 안된 것이 아닌가? 움직이기링도 전후로 큰 변화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는 기분 탓인 줄로만 알았다. 내가 청소기를 설렁설렁 돌렸나 보지 뭐, 아니면 주로 오른손으로 청소를 하니까 왼 손목의 워치에게는 기별이 안 갔나? 하면서. 아니 그런데 오늘은 정말이지 집안일한다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닌 시간만 해도 얼마인데! 출퇴근길 지하철을 타러 가는 가벼운 발걸음은 운동하기링에 야무지게도 카운트하더니만 가사노동은 왜 외면받는 것인가. 커피를 마시다 알 수 없는 서러움에 잠긴다.


수많은 스마트워치 유저 중 한 명일 뿐인 나의 불만은 활동 측정 알고리즘을 만드는 이름 모를 사람들에겐 사막의 모래 한 톨 같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생각을 좀 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집안일은 운동하기링에 카운트되지 않는 것일까? 바깥일은 큰 일이고 집안일은 작은 일이라고 취급해서일까? 물론 서러움을 내려놓고 생각해보면 가사노동을 하는 신체의 다이나믹이 실외의 걷기 활동보다 덜 해서일 수도 있겠다. 그렇대도 출퇴근길의 무의식에 잠긴 걸음과 점심을 먹으러 가는 밭은 걸음, 살림을 하는 분주한 걸음이 모두 같은 삶의 걸음임에는 변함이 없다. 고작 스마트워치의 활동링으로 이렇게 오바스럽게 생각할 일인가 싶다가도 불쑥 어딘지 모르게 억울해지고 만다. 모두의 모든 걸음이 모두에게 동등한 걸음으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그런 세상이 되어가길, 나도 그러한 구성원이길 바라며 본의 아니게 한 걸음의 노력을 다짐해본다. 애플워치너마저 나를 노력하게 만드는구나. 이거 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노릇이다.



2020년 10월 일요일의 끝을 잡고

경계를 허물고 싶은 밀레니얼 K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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