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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독립 Nov 12. 2020

자위에 지쳐 글쓰기로 했다

자기위안에서 벗어나기까지

모두가 잠든 밤과 새벽의 경계 시간에 홀로 앉아 글쓰기가 참 오랜만이다. 그간 뭐하느라 그리도 쓰는 것에 소홀했느냐 하면 나는 참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한가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두 팔과 두 다리를 힘껏 뻗어 쉬이 잠을 청할 수 있을 정도로 한가했으나 깊은 잠이 주는 안락함은 느껴보지 못했다. 늘 불안했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에 시달렸으며, 늘 바뀌는 상황에 대처해주는 다양한 이유들로 든든하게 그 불안과 자책들을 잠재워왔다.


갑작스레 계획에도 없던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늘 하루하루 전쟁같이 치열하게 살아오던 나에게 하루아침에 찾아온 평화와 고요의 시간들은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를 혹사시키던 버릇을 쉽게 고치지 못하고 쉬지 않고 할 일들을 찾아보았다. 내일배움카드로 강의라도 들어보려 열심히 커리큘럼을 보고 수강 계획을 다 짜 놨더니, 코로나라는 복병이 터졌다.


꼼짝없이 집에 갇힌 나는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고, 우연히도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알릴 수 있고, 잘만하면 출간의 기회까지 주어질 수 있다는 말에 시작한 브런치였지만 정작 나를 알릴 수도 없었고, 출간의 기회는 멀게만 느껴졌다. 나를 알리고 싶어 하면서도 익명성에 집착하는 이상한 굴레에 갇혀버린 나는 몇 개의 글을 발행하면서도 대부분이 브런치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함이었을 정도로 유명해지고 싶은 은연중의 욕망과 상금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 어릴 적 우연히 응모했던 한 편의 글로 유명세를 탔던 그 기적 같은 일이 또 한 번 재현되기를 내심 기대하며 공모전 발표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수상작에 내 글은 없었다. 잘못 본건가 싶어 여러 번 읽고 또 읽어도 내 글과 비슷한 제목이나 필명과 비슷한 글자조차 없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발표일을 기다리며 수상작에 내 글이 올라가면 가족들에게 어찌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고민하며 행복해했던 내 모습이 참 씁쓸했다.


규정된 분량을 초과했겠지, 심사하시는 분들이 내 글을 읽다만 거겠지 등등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들로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또다시 공모전에 응모했고, 또 한 번의 탈락. 혹시나 싶어 브런치 말고 다른 공모전들을 뒤져서 닥치는 대로 또다시 응모해보았다. 탈락, 탈락, 탈락. 탈락의 연속에 내 글 쓰는 손도 점점 무디어져 가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늘어만 갔다. 그래도 도전한 게 어디냐며 날로 능숙해져만 가는 자기 위안 속에서.


그러다 우연히 지태주 라디오라는 유튜브 채널의 '귀티 나는 사람들의 5가지 특징'이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귀티 나는 여성분이 조곤조곤 편안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귀티와 부티를 비교해가며 귀티 나는 사람들의 특징을 설명해주는데, 나도 저렇게 귀티 나고 싶다고 생각해서인지 영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끝까지 집중해서 봤을 정도로 엄청 흥미로웠다.


우연히 보게 된 지태주 라디오 영상


그런데 앞의 귀티에 대한 설명보다 나를 더욱더 사로잡은 부분은 후반부의 '말하는 인간과 쓰는 인간'에 대해 직접 쓴 짧은 글을 낭송해 주는 부분이었다. 작가 장강명이 썼다는 문장 "작가는, 쓰는 인간은, 독자에게 영웅 같은 존재다. 그런 존재를 말하는 인간으로 대면했을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아니면 쓰는 인간은 말하는 인간과 다른 존재인 걸까?", 이 문장을 읊는 도입부에 이미 내 가슴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나의 숱한 불안과 자책을 잠재워줄 수 있는 방법을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결국 다시, 글쓰기였다.


내가 깨달은 것은 더 이상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쓰기를 멈추고, 나를 보듬기 위한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점이다.


브런치는 완벽한 익명성이 보장되진 못해도 최소한의 익명성은 보장해주니까 용기 내어 글 써보자. 가족 누구도 심지어 남편조차도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지 모른다.


일종의 나만의 비밀 일기장 같은 곳이자, 유일한 숨 쉴 구멍이다. 그렇게 생각하련다.

그러니 이제, 마음껏 숨 쉬어보자.


하루 한 문장씩, 조금씩 늘려가며 하루에 한 문단씩, 그리고 마침내 하루에 한 편씩의 글을 완성시켜나갈 것이다. 뭐든 시작만 어려울 뿐, 막상 시작점에서 이동하여 점에서 선으로 합류하게 되면 선이 가지는 유동성은 나를 쉬이 흘러가게 해 주니까.  


남에게는 그리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나 자신에게는 왜 그리도 한없이 관대하게 굴었는지. 나에게는 좀 더 엄격해져야겠다. 지난 공모전에 투고했던 글들이 왜 떨어졌는지, 주최사에서 원하는 글은 무엇인지, 내 글이 주제에서 벗어난 건 아닌지 좀 더 깊이 분석해볼 것이다.

더 이상의 행운이나 요행을 바라지 말자. 

운도 움직여야 오는 것이다.


세상에는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볼 때마다 나를 위축시키던 구독 중인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더 이상 의도적으로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읽고 비교해가면서, 내 글을 반성해보며 쉬지 않고 써볼 것이다.


더 이상 자기 위안 말고 글쓰기 위안을 해보려 한다.
글을 쓰면서 나는,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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