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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자독립 Jul 10. 2020

아빠가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추락으로 다가온 나의 실패가 가져온 변화들

나에게 추락의 모양은 완만한 포물선이 아니었다. 포물선을 가장한 완벽한 수직의 모양이었다. 거기에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잠시 쉬어갈 경사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도 학교 어디에서도 추락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기에 추락의 미지는 나를 완벽하게 집어삼켜버렸다. 힘 없이 바닥에 나자빠진 나는 중력보다 더한 강한 충격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바스라졌다. 스물넷 가을이 만연하던 때였다.






임용고사를 처음 치를 때 즈음 많은 일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빚 때문에 결국 아빠는 유일한 재산이던 집마저 훌렁 팔아버리셨다. 쫓기듯 월세방을 구해 이사를 갔다고들 한다. 나는 그 당시 고시원에 있었기에 이사 간 상황을 그냥 전해 들었다. 그러다 처음 치른 시험에 떨어지고 졸업을 해버린 나는 고시원을 떠나 낯선 집으로 내쳐졌다.  곧장 낯선 집 앞 독서실을 잡아서 다시 공부를 해야만 했다. 가족의 모든 기대가 오롯이 나에게로 향해있음을 느꼈다.




독서실에는 나를 아는 사람은 없어서 더 이상 공부하는 척 연기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매일 밤 고성을 지르며 노래를 부르는 술에 만취한 남자 때문이었다. 익숙한 목소리의 그 남자는 집에서의 무뚝뚝한 모습과는 다르게 술에 취해 흥겨워하며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노래를 하는 모습이 자유롭고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 노래 밑에 깔린 그의 울음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밤마다 노래를 빙자한 울음소리를 듣는 것과 함께 나를 고달프게 한 것은 노래를 부를 만큼 술에 덜 취한 아빠가 이따금씩 나를 호출하는 전화였다.

‘잔말 말고 너희 엄마 찾아와’

이 말에 나는 조건반사처럼 정말 집 근처 음식점을 배회하거나 아무 상가나 무작정 들어가 엄마를 찾아 헤매었다. 어릴 적 길 잃고 헤맸던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그때처럼 집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그땐 엄마가 나를 찾아주었는데. 이번에도 길을 잃으면 엄마가 나를 찾아내 줄까. 낯선 집을 나와 걷던 길들이 더욱더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 집은 어디에 있는 걸까? 예전 집에는 또 어떤 낯선 이들이 살고 있겠지? 무표정한 내 얼굴은 소리 없는 비명을 연신 질러대고 있었다. 악몽 같은 나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런 가족을 구제해줄 건 나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거울을 들어 무표정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독서실 조명 아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청춘이 퍽 예뻐 보였다. 씨익 입꼬리를 올려 웃어본다. 반쪽짜리 웃음. 예전부터 나는 이 반쪽 짜리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쩐지 비대칭인 내 얼굴은 오른쪽 입꼬리가 늘 쳐져있었다. 억지로 손가락으로 오른쪽 입꼬리를 집어 올려본다. 겁 없이 나의 젊음을 만져댄다. 점차 자리에서 책 보다 거울 보는 일이 늘어갔다. 쉬지 않고 오른쪽 입꼬리를 잡아 늘였다. 그러다 나는 내 젊음이 툭 하고 끊어지는 것을 보았다. 내 청춘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기선 안되겠다 싶어 다시 고시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부하는 연기라도 해야 할 내가 허구한 날 거울만 들여다보자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그럼에도 나는 거울 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내 젊음이 급격하게 사그라들고 있었기에 1분 1초도 틈을 줄 수가 없었다. 나라도 나의 젊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기억해 주어야만 했다.

결국 나는 완전히 미쳐버렸다. 입꼬리에서 시작된 음울한 집착은 내 영혼까지 침투해버렸고, 하루 4시간만 자며 공부했던 나는 하루 종일 고시원 침대에서 누워있게 되었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잠을 들 수가 없었다. 살아있는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설핏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때 처음으로 꿈에 아빠가 나왔다. 아빠는 나를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고 있었는데 느낌상 할머니 댁에 가는듯했다. 아빠는 뒷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너무 힘들면 내려와도 돼.”

막 할머니 댁에 도착하려는 순간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깨니 오전 7시 반쯤이었다. 그때였다. 아빠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아무 내용도 없이 사진 한 장이 다였다. 빽빽한 나무들이 가득한 직접 산 정상에 올라가 찍은 듯한 사진이었다. 하늘에 닿을 듯 뾰족한 산봉우리들 사진.


나는 왠지 아빠도 나와 같은 꿈을 꾼 것이라는 이상하리만큼 확신에 찬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차오른 나는 무너지듯 아빠에게 전화 걸었다. 결국 나는 시험을 두 달 앞두고 고시원에서 짐을 뺐다. 사실상 시험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평소 같으면 제정신이냐며 매섭게 호통쳤을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내 짐을 묵묵히 쌀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무수한 책더미들에 집착을 해서 애지중지해하며 책을 날랐다. 그 모습에 아빠가 거친 동작으로 책을 낚아챘다. 아빠의 뒷모습을 보니 많이 왜소해져 있었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미련이 덕지덕지 엉겨 붙은 딸의 책더미를 나르는 아빠의 뒷모습은 서럽게 울고 있었다.



무뚝뚝하긴 했어도 부모는 부모인지라 딸의 변화에 누구보다 민감해했고 무척 충격받으셨다. 믿었던 장녀, 집안의 희망이던 딸의 추락을 두 눈으로 지켜본 부모님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빠는 말없이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그때 나는 난생처음 정신병원에 가보았다.


대기표를 받아 들고 내 이름이 불리길 앉아서 기다리는데, 나보다 더 초조해 보이던 아빠는 굳은 표정으로 연신 문 앞을 서성거렸다. 우리는 애써 서로를 외면했다.


영화에서와 달리 정신과 의사는 매우 싸늘하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나에게 ‘증상’을 물었다. 나는 그 증상이 무언지 몰라 그냥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설명해주었다.

“내 얼굴이 (하루아침에) 변해버렸어요.”

그러자 의사가 약을 처방해준다고 했다. 약 성분이 뭐냐는 나의 물음에 의사의 목소리는 더욱 싸늘해졌다. 병자 주제에 뭘 묻냐는 듯했다. 내 물음에 대답해주지 않길래 나도 그냥 병원에서 나와버렸다. 아빠가 말없이 나를 따라왔다. 우리는 병원 앞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시켰다. 그날 먹은 짜장면 맛은 기억나질 않지만, 그날의 짜장면 먹던 아빠와 나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나름의 방식으로 아끼고 내심 의지했던 장녀를 이끌고 정신병원을 다녀온 아빠는 짜장면을 먹으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 날 이후 아빠는 술과 담배를 일절 끊으셨다. 그리곤 처음으로 집에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한두 개의 작은 화분으로 시작했던 아빠의 취미는 거실 선반 세 줄을 채우고도 모자라서 베란다까지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나는 식물들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나에게 좀체 말을 걸지 않던 아빠가 나에게 말했다.

“식물들을 보렴”

식물들을 봐서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또 아빠가 시키는 대로 그저 식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계속 푸릇한 식물들을 바라보자 나에게도 어떤 무언가가 꿈틀대는 듯했다. 온 정성을 다해 아빠가 돌본 만큼 식물들도 온 힘을 다해 자라주었다. 나는 날로 번창해가는 아버지의 숲 속에서 생명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식물에게도 심장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아빠는 식물이 아니라 나에게 물 주고 있었다. 시들어가던 나에게 물을 준 것은 결국 아빠의 사랑이었다.






정상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바닥에 있을 때 비로소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진부하지만 그것은 바로 가족의 ‘사랑’이다. 사랑을 먹고 식물이 자라듯 나도 다시 자라났다. 새 발이 돋아난 나는 처음으로 엄마와 단둘이 등산을 갔다. 직접 집 근처 산 정상에 오르자 어딘지 낯익은 풍경이 보였다. 아빠가 지난날 나에게 보내주었던 사진은 여기서 찍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다시는 오를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나는 결국 다시 일어섰고 다시 정상에 올랐다. 지금에서야 나는 굴곡진 산봉우리들 사진을 보낸 아빠의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나는 산을 오를 일만 남았다. 한번 내려가 봤으니 다시 올라갈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러다 다시 바닥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산등성이가 끊임없이 이어지듯 이번에 나는 바닥이 끝이 아니란 걸 알 듯 힘차게 다시 올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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