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고유한 기적을 재생시키는 거지
머리로 들어오는 정보보다 마음으로 느껴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내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감동이 있는 것 말이다. 기적은 움직이지 않는다. 고유한 기적을 다시 재생시키는 능력을 이미 아무개는 가지고 있다.
다양한 아무개들이 지구에 살고 있는데 모든 아무개들이 같은 패턴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삶의 다른 방식과 순환을 겪으며 이미 기준을 통달한 아무개도 널려 있다. 그중에는 부정적인 아무개는 제외하고,
긍정적인 아무개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
평범하게 태어나서 가장 보통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며 어느 다친 곳 하나 없이 일말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평범한 아무개는 그럭저럭 공감도 보통으로 하고 인간관계도 그럭저럭을 넘기지 못한다. 왜 평범한 순간을 간직한 아무개는 중간중간 마땅한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을까. 그럭저럭 밟고 온 인생은 감동을 휩쓸고 오는 처절한 몸부림의 기억이 없을 뿐 아니라, 가장 보통의 삶으로 돌아가면 누군가에겐 간절히 원하는 기쁠 일이지만 당사자는 딱히 얻는 것이 없다.
목표는 같아도 출발점이 다른 아무개들이 있다. 그것은 뛰어나게 앞장을 서지도, 특혜를 받는 일도 없다. 그들은 그냥 그 자리에서 열심히 노를 젓고 있을 뿐, 한계에 부딪히면 스스로 내려온다.
글을 쓴다고 해서 마치 영화처럼 그들의 인생을 평가하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소망을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그것은 다른 아무개가 할 일이 아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 스스로가 결정할 일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가난하게 태어나서 보통의 사랑을 넘기지 못하고 그 이하에서 멈추며 지속적인 자신의 성장만을 고유한 채로 힘들지만 계속 살아가는 아무개가 있다. 이 아무개는 평범한 삶을 살진 않았지만 이미 무의식에선 알고 있다. 어떤 것을 잃으면 슬픔이 오고 어떤 것을 얻으면 기쁨이 오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이런 아무개는 무수히 존재한다. 그리고 아주 위대한 인물도 이런 바탕에서 이루는 아무개도 무수히 많다.
이미 실패를 거머쥐고 태어난 이들은 고유한 기적을 다시 재생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즉, 현실을 부딪혀가며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판별해 놓고 자신만의 성장만을 고유한 채로 살아왔기에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으며 뚜렷한 목표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조금만 다르게 해 보면 많은 아무개들이 지금도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그들이 부자이던 가난하던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던 평범한 아무개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아무개는 머리로 들어오는 정보보다 마음으로 느껴지는 감동을 좋아하고 평범함을 기준으로 더 높은 목표로 하는 것을 좋아하며 힘들었던 시절의 영광을 잊지 않길 좋아하고 오늘보다 더 나은 실패를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아무개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