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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Oct 28. 2023

1945년 어느 여름날의 나가사키

“내가 10살 때 미국 B-29가 날아왔어. 도시 전체가 사라졌지. 열 때문에 비가 내렸어. 네 놈들이 만든 검은 비!” 명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랙 레인(Black Rain)’에 나오는 대사, 일본 오사카에 파견된 뉴욕 형사 닉에게 야쿠자 보스 쓰가이가 했던 말이다.    

  

이 영화 이후 33년이 지난 금년 8월의 극장가에선 또 다른 명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가 세간의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영화에선 ‘검은 비’ 흑우(黒い雨)가 내리기 직전의 원폭 폭발 순간을 CG 없는 장엄한(?) 영상으로 보여준다.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이 터지는 순간 주변은 섭씨 4,000도까지 뜨거워졌다고 한다. 화장터에서 시신이 유골로 변하는 온도가 섭씨 1,000도인 걸 감안하면 실로 무시무시한 상황이다. 인간을 포함한 주변 모든 생명체와 사물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리곤 기체로 증발하거나 재 먼지가 되어 잠시 허공을 부유했다. 뜨거워진 대기는 이런 온갖 부유물들을 껴안은 채 하늘 높이 수직 상승해 치솟고, 진공 상태로 남겨진 그 자리엔 이웃 지역 찬 공기가 급격히 쏠려들며 빈자리를 메꿔버린다.      


이때 생긴 강력한 바람은 폭파 지점에서 먼 곳까지 불길을 옮기며 도시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리고 한두 시간 후, 뜨거운 공기에 섞여 위로 치솟았던 지상의 온갖 부유물들은 시커먼 먹구름이 되어 하늘을 뒤덮었고 그리곤 검은 비, 흑우(黒い雨)가 되어 지상으로 쏟아져 내렸다. 8월의 한여름, 불바다가 된 도시에서 그나마 목숨이 붙어 있던 사람들은 곧 죽을 듯한 갈증 속에서 이 반가운 비를 허겁지겁 받아 마셨다. 방사능이 뭔지 원자폭탄이 뭔지 알 수 없던 시절이었다.      


5개월 전 미군은 이오지마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승리야 당연한 결과지만 기대했던 일주일이 한 달 넘게 걸렸고, 이 과정에서 미군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큰 손실이다. 이어진 오키나와 전투에서도 두 배가 넘는 피해를 입었다. 물론 일본 측 피해는 민간인 포함 수십만 명에 이르니, 미군으로선 압도적 승리이긴 했다. 전함 야마토의 침몰과 함께 패망은 자명했는데도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다.      


가미카제 자살 특공 등 일본 군부의 광기는 미군에겐 큰 부담이었다. 다음 순서는 일본 본토 침공이었지만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두 번의 상륙작전에서 경험한 미군의 희생을 반복할 순 없었다. 전쟁을 끝낼 결정적 한 방이 필요했다. 미국은 결국 ‘굉장하고 장엄하고 뭐라고 항의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인 방식(존 키건, <2차 세계대전사> 중)’으로 전쟁을 끝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드디어 1945년 8월 6일 새벽,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보이(Little Boy)를 실은 폭격기 B-29가 히로시마를 향해 이륙한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침 출근길, 하늘 높이 떠 있는 몇 대의 미군기들을 별 긴장 없이 바라보던 사람들 머리 위에서 번쩍 하는 찰나의 순간, 도시는 인류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아수라 지옥으로 변한다. 히로시마 참상이 어떤 모습일지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채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났다.

      

일본 군부는 여전히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한 채 아직도 ‘결사항전 1억 옥쇄’를 외치는 강경파들이 득세하는 가운데 일본 남부 규슈의 나가사키에도 히로시마 원폭 3일째 그날이 밝았다.      


'1571년 포르투갈이 내항하면서 일본 무역 역사에 막을 올린 나가사키. 메이지 시대 이후 근대화와 함께 무역도시에서 조선산업 도시로 탈바꿈한 나가사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374년의 역사를 새겨온 언덕의 거리 나가사키. 그 나가사키에 1945년 8월 9일, 여름날의 하루가 찾아왔다.’(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안내글 중)      

그리곤 익히 알려진 2차 원자폭탄 팻맨(Fat Man)이 떨어졌고 그 참상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이날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폭심지(爆心地)에는 평화공원이 조성돼 있다. 공원 내 오른손 등에 앉은 비둘기와 대화를 나누는 소녀의 동상은 평이한 모습이지만, ‘진혼(鎮魂), 어느 여름날(ある夏の日)’이라는 제목에 눈길이 가면 왠지 숙연해진다.      


높이 10m에 이르는 거대한 ‘평화기념상’의 남자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원폭의 무서움을 일깨워주고, 왼손을 수평으로 뻗으며 온 세상의 평화를 강조해주고 있다. 공원 앞 원폭자료관 실내로 들어서면 다양한 전시물 중에서도 망가진 벽시계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원폭 투하된 지점에서 800m 떨어진 폐허 민가에서 발견된 벽시계라고 한다. 시곗바늘이 원폭 폭발 시간인 11시 2분에서 멈춰 있다.      



전시 자료에 의하면 2차 원폭으로 인한 이 도시의 인명 피해는 사망 74천 명에 부상 75천 명이라 한다. 당시 나가사키 인구가 총 24만이었디고 하니, 도시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사망 또는 부상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절반이 원폭에 의해 불바다가 되는 영화 ‘오펜하이머’ 속 엔딩 장면은 미래의 인류에 원자폭탄이 어떤 재앙이 될지, 영원한 화두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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