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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Nov 01. 2023

프로메테우스와 오펜하이머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몸 위에 엎드려 붙은 채 허구한 날 정기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가이아는 숨이 막혀 짜증이 났다. 똘방진 아들 크로노스를 불렀다. 날카로운 낫을 하나 쥐어주며 아버지를 거세하라는 특명을 내린다. 아들이 휘두른 낫에 남근이 싹둑 잘리는 순간 우라노스는 고통에 겨워 솟구쳤다. 대지와 하늘이 비로소 분리되었다.      


부친을 몰아낸 크로노스는 자신도 언젠가 자식에게 위해를 당할까 불안했다. 해서, 아내 레아가 자식을 낳는 족족 통째로 삼켜버린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막내아들 제우스가 결국은 아버지 크로노스를 몰아내고 신들의 제왕이 되었다.      


제우스는 똑똑한 정실 헤라에게서 잘난 자식들이 태어날까 두려워, 헤라와의 잠자리는 가급적 피했다. 허나 타고난 바람기는 주체할 수 없었으니, 바깥으로 나돌며 온 세상에 자신의 씨를 뿌리고 다녔다. 자식에 대한 두려움은 대를 이어 물려졌는지, 제우스 역시 어느 잘난 자식에게 왕좌를 빼앗길까 늘 불안했다. 


‘먼저(pro~) 아는 사람, 선지자(先知者)’인 프로메테우스가 어느 자식이 문제일지를 살짝 귀띔해 주면 좋으련만 그러지 않는 게 제우스로선 괘씸하고 밉다. 제왕인 자신의 수하이지만 사촌형뻘에 인간 세상의 사랑까지 독차지하고 있는 그다. 얄밉긴 하지만 우직하기 이를 데 없는 그를 함부로 대할 수도 없다.      


그런 프로메테우스가 어느 날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불을 훔쳐다가 인간 세상에 전달해 주는 만행을 저질렀다. 인간이란 것들은 추운 데서 고생도 해가며 살아야 마땅한데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불을 훔쳐다 선심을 쓰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격노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의 바위산에 데려가 단단한 쇠사슬로 묶게 하였다. 어느 자식이 문제가 될지 제우스의 미래에 대해 귀띔 한마디 해주면 풀려날 수도 있었지만 올곧은 프로메테우스는 굴복하지 않고 바위산에 묶인 채 독수리에게 매일매일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감수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 그 형벌로 그는 바위에 묶여 영원히 고통받았다.(Prometheus stole fire from the god and gave it to man. For this he was chained to a rock and tortured for eternity.)’ 


개봉 중인 영화 ‘오펜하이머’의 오프닝 자막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두 줄 문장에 세 시간짜리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아놨다. 원폭 발명으로 2차 대전 승전 영웅이 된 오펜하이머 박사는 이후 메카시즘 등 치졸한 사회적 광풍에 휘말리며 프로메테우스처럼 청문회에 묶여 간을 쪼아 먹힐 정도의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당한다.     


프로메테우스가 가져다준 불은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낮 동안 고된 사냥을 마친 저녁엔 동굴 안에 둘러앉아 모닥불을 피웠고, 사냥감을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다 따뜻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오랜 생식에서 벗어나 익혀 먹게 된 식생활은 인류의 체형도 크게 바꿔 놓았다. 늘어난 근육량 덕택에 활동 반경도 넓어졌다. 고향인 아프리카 남부에 얽매이지 않고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유라시아 대륙 각지로 삶의 터전을 넓혀갈 수 있었다. 불이라는 선물 덕분이다.      


그러면 오펜하이머가 인류에게 내놓은 원폭은 어떤가? 원래는 독일 히틀러보다 먼저 내놔야 한다는 강박에서 시작해 개발에 성공했지만, 결과는 이미 괴멸 직전의 일본을 확인 사살하는 쪽으로 끝장이 났다. 진주만부터 쌓인 천추의 한을 ‘굉장하고 장엄하고 뭐라 항의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인 방식’의 복수로 끝장을 낸 것이다. 그 짧은 기간에 들인 비용과 고급 두뇌들이 유기적으로 일궈낸 개발 성공 과정이 워낙 드라마틱했던 만큼 결과 역시 미국의 입장에선 멋지고 장엄했다. 


소련 등 경쟁 강대국을 향해선 이제 누가 세계 최강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효과까지 얻어냈다. 그러나 미국이 아닌,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암울한 결과다.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핵폭탄이 제3차 세계대전에 이르면 인류의 멸망까지 초래할 수 있음은 오늘날 누구나 절감하는 두려움이다. 오펜하이머의 원폭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에 비유될 만큼 인류에게 반가운 선물은 아닌 것이다.     


영화 속 오펜하이머는 청문화 과정에서 자신을 몰아내려는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하여 아내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가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죄책감, 자신의 개발품 핵이 인류의 미래에 미칠 결과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 듯하다. 이는 죄책감 따위는 없었던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의 내면과는 극명하게 다른 점이다.      


한쪽이 해피엔딩인데 반해 다른 한쪽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 또한 신화와 영화의 다른 점이다. 프로메테우스는 3만 년 후에 나타난 헤라클레스에 의해 구출되며 제우스로부터도 깔끔하게 사면을 받지만, 오펜하이머의 경우는 그러지 못했다. 영화 속에선 해피엔딩이기에 보이지 않지만 이후의 오페하이머와 그의 가족의 실제 삶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박사는 62세에 후두암으로, 그리고 몇 년 후 아내 키티도 색전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딸 또한 아버지로 인한 사회적 연좌제에 얽혀 32세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오늘날의 우리는 그 옛날 인류에게 불을 선물해 준 신의 이름은 많이들 기억하지만, 원자폭탄을 개발한 과학자의 이름은 이번에 ‘오펜하이머’라는 영화가 나오기 이전까지는 대부분 잘 몰랐다. 오펜하이머가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구절을 떠올리며 읊조리는 말속에 그의 미래가 담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세상이 예전과 다르게 나아갈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몇몇은 웃었고 몇몇은 울었지만, 대다수는 침묵에 잠겼습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습니다.’ 


일본 나가사키 원폭 전시관 옆 평화공원의 비둘기와 소녀의 조형물 , ‘진혼, 어느 여름날. 원폭이 투하된 8월 9일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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