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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Dec 20. 2023

인류 역사의 10대 터닝포인트 (2/2)

6. 콜럼버스와 신대륙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AD 476년은 고대의 종점이자 중세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천년, 유인원 이후 인류사에 비춰보면 순식간이지만 현대 관점에선 길고 길었던 중세 암흑시대는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전후해 근대를 여는 새벽을 맞는다. 오래전 아프리카 대륙을 떠난 인류가 메소포타미아라는 교차로에서 유럽과 아시아 쪽으로 각자 헤어졌다가 아메리카 대륙의 턱 밑 바하마 제도에서 처음 만난 순간이다. 수만 년 세월 동안 자신들은 느낄 수 없는 먼 길을, 동쪽과 서쪽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다가 우연한 접점에서 마주친 것이다. 이미 다른 피부색이 되어 있었기에 그들은 같은 조상 한 뿌리 후손임을 서로 알아볼 수 없었다. 


극적 상봉이 이뤄진 그곳은 거주민 인디오들에겐 대를 이어 살아온 낙원의 땅이요, 불청객 유럽인들에겐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줄 꿈의 신대륙이었다. 대서양이라는 망망대해를 세계 최초로 건넌 콜럼버스로 인하여 유럽인들은 황혼이 지는 바다 저편이 무한 지옥 낭떠러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고무된 마젤란은 다섯 척의 배를 띄워 서쪽 바다로 나갔고, 그 배들은 얼마 후 반대방향인 동쪽 바다에서 돌아왔다. 지구 위 땅과 바다가 비로소, 평면이 아닌 둥근 원구임이 확실해졌다. 


탐욕스러운 유럽인들은 마음 놓고 바다를 휘젓고 다니며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고, 약탈과 살육의 땅따먹기 각축과 함께 살벌한 약축 강식이 시작한다. 소위 대항해시대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인류사의 무대를 기존 유라시아 대륙에서 전 세계 5대양 6대주로 넓혀 놓았다. 




7. 산업혁명 


영국인들이 입던 옷감의 재료가 동물의 털에서 목화솜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산업혁명은 일어났다. 오랜 세월 써온 국내산 양털 모직물보다 식민지 인도에서 대량 수입되는 솜털 면직물이 저렴하고 실용적이라 인기를 끌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수입 면직물에 밀려 국내산 모직물이 안 팔리자 자본가들은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면직물 제조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수입산과 경쟁하려다 보니 인건비를 줄여야 했고 이를 위해 설비 기계화가 시급했다. 때 맞춰 하그리브스와 아크라이트가 방적기를 개발하면서 실이 대량으로 자동 생산되기 시작한다. 이제는 옷감을 빨리 짜는 기술이 필요해졌다. 한동안 실이 남아돌았지만 카트라이트가 자동 방직기를 발명해 내면서 만사가 풀렸다. 곧이어 제임스 와트가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까지 발명하자, 가내 수공업 수준이던 면직물 제조는 공장 대량 생산 체제로 급격히 고도화되었다. 


이렇게 늘어난 생산성은 종래의 모직물을 소비하던 국내 시장만으로는 커버가 될 수 없었다. 수출시장으로 연결이 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선 대량의 제품과 대량의 원료가 저렴한 비용으로 '운반'될 수 있어야 했다. 이번에도 역시 필요가 혁신을 불러왔다.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하면서 화물 운송에 대한 모든 문제들이 풀렸다. 이 증기기관차로 여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세계 최초의 철도가, 영국 리버풀과 맨체스터 간 45km 거리에 개통되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은 인류의 삶을 가장 혁신적으로 변화시킨 사건이다. 맨손으로 시작해 도구와 불을 쓰며 수백만 년 동안 숙련돼 온 인간의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시점인 것이다. 




8. 1차 세계대전

       

백여 년 전 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역사의 여덟 번째 터닝포인트기 되는 대사건이었다. 도구의 진화가 불러온 대재앙, 수백만 년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살육전쟁이었다. 이전까지 집단 간 싸움이란 건 국지전에 근접 전, 수백 미터 안에서 말 타고 활 쏘며 총칼로 서로 죽여봐야 고작 수백에 수천 명 한정된 숫자였다. 이 전쟁에선 활이나 총칼이 기관총과 포탄으로 바뀐다. 말 탄 기마병 대신 탱크와 비행기가 전장을 누볐다. 지구상 수십 개 나라가 들고일어나 서로 싸우는 와중에 ‘수천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수백만 년 전 도구의 목적은 공룡과 맹수 등 포식자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함이 컸다. 직립보행을 거쳐 두 손이 앞발 역할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인류는 석기 등 사물을 보다 더 날카롭고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게 되었다. 예전까지는 오직 생존을 위해 다른 종(種)들에게 휘둘렀던 도구들이 점차 인간끼리 영역 싸움을 위한 무기로 변해갔다. 인류가 재물 축적에 맛을 들이며 탐욕스러워진 결과다. 살상이 쉽도록 더 단단하고 더 날카로운 도구를 가진 집단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근대의 산업혁명을 거치며 인류는 과학의 힘을 알게 되었고, 과학의 목적은 더 나은 도구의 개발에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의 도구 개발 경쟁이 빚은 참극이었다.           




9. 아폴로 11호 달 착륙  

    

“전 지금 사다리에 매달려 있습니다. 달 표면은 매우 고운 입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거의 분말 같습니다. 이제 드디어 사다리에서 내리겠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에겐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입니다.”      


1969년 7월 21일 02시 56분 15초, 아폴로 11호에서 달 표면에 내리며 닐 암스트롱이 했던 말이다. 우리 지구상에는 외계 어디로부턴가 운석 같은 불청객들이 날아와 부딪힌 경우가 많았다. 그 충돌 여파로 공룡 등 생명체들이 멸종되고 한동안 얼음시대 빙하기가 이어지기도 했다. 지금도 외계의 고지능 생명체들이 인간의 능력으론 감지할 수 없는 방법으로 지구를 들락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면에 우리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 외계로 떠나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고작해야 비행기라는 걸 만들어 메뚜기처럼 폴짝 지상에서 잠시 뛰어올랐다 내려올 뿐이었다. 그런 인류가 당시로선 머나먼 외계인 달까지 날아가 내린 것이다. 전 세계 수천만 명이 호모사피엔스라는 단일 종족 일원의 심정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로서 달에는 계수나무도 떡방아 옥토끼도 없음이 분명해졌다. 보름달 뜨면 늑대인간이나 드라큘라 등 악귀가 나타난다는 불길한 징조도 한낱 기우로 밝혀졌다.      


다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 장면, 도구의 힘을 최초로 깨닫게 된 그 유인원이 흥분 속에 하늘로 힘껏 던진 뼈다귀는 공간을 날아가다 어느 순간 거대한 우주선으로 바뀐다. 인류의 도구가 수백만 년의 세월을 거쳐 변화된 모습을 단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 영화적 장치이다. 닐 암스트롱 이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달은 이미 외계가 아니다. 인류의 관심은 화성을 넘어 머나먼 외계 인터스텔라로 향하고 있다.       

    



10. 스티브 잡스 아이폰 출시

      

“오늘은 제가 지난 2년 반 동안 손꼽아 기다려온 날입니다. 오늘 저는 혁신적인 제품 세 가지를 소개하려 합니다. 첫 번째는 터치 조작 가능한 와이드스크린 아이팟입니다. 두 번째는 혁신적인 모바일 폰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획기적인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기기입니다. 이들은 각각 3개의 제품이 아닙니다. 단 하나의 제품입니다. 오늘은 휴대폰이 재발명된 날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꿔놓으려 합니다. 여러분은 일상의 삶을 주머니에 넣고 손바닥에 들고 다닐 것입니다.’     

 

2007년 1월 9일,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iPhone)’이라는 신제품을 발표한다.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에서다. MP3 플레이어, 휴대폰, 소형 포켓 컴퓨터는 이미 아이팟, 스마트폰, PDA라는 각각의 이름으로 시중에 유통되고 있었다. 잡스가 이들 세 제품의 기능을 하나로 묶었다며 직접 시연해 보인다. 핸드폰에 고정 자판이 없어졌고 그 면적만큼 화면이 넓어졌다. 


손가락 터치스크린 기능도 세상에 처음 선보였다. 구글지도를 불러오자 현장 주변 스타벅스 매장들이 다 떴고, 그중 한 곳에 전화를 걸어 즉석 주문도 해본다. 지금은 그저 우리 일상의 흔한 모습들이지만 당시 현장은 달랐다. 잡스의 말 한마디와 손가락 움직임 하나에 매 순간 놀라움으로 넘쳤고 환호가 터졌다. 그때로부터 16년이 지났고, 잡스가 세상과 이별한 지는 11년이 흘렀다.    

  

세상은 그의 예상대로 완전히 바뀌었다. 세상사람들은 온통 그가 생전에 설계해 놓은 일상 패턴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머리맡을 더듬거리고, 하루 종일 스마트폰과 함께한다. 누군가로부터 어떤 소식을 기다리고, 바로 옆방 또는 해외 멀리 누군가에게 안부 인사를 건넨다. 다른 이들의 일상을 훔쳐보며, 내 일상에 대한 다른 이들의 반응도 확인한다. 


원하는 신문을 마음대로 골라 읽고, 새로 나온 신간을 구매해 짬짬이 아무 데서나 읽는다. 침대에 누워 직장의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내일 아침 식사메뉴를 주문하곤 잠든다. 만사가 손바닥 속 핸드폰 하나로 처리된다. 예전 아침 출근길에선 전철 속 가득한 조간신문 잉크냄새가 유독 코끝을 간질이며 기분이 좋았다. 책을 읽거나 또는 서서 졸면서도 이어폰 끼고 영어공부하는 정겨운 모습들, 겨우 16년 전이었지만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들이다.           




먼 조상이었던 유인원 시절부터 인류 역사 터닝포인트가 되는 10대 사건들을 더듬어보았다. 4백만 년 전 최초의 도구를 시작으로 40만 년 전 불의 발견, 4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 BC 4천 년 문자와 문명, AD 4세기 게르만족 대이동, 1492년 콜럼버스 신대륙, 1750 산업혁명, 1914년 1차 세계대전, 1969년 달 착륙 그리고 2007년 아이폰 출시다. 10개 항목의 선정과 선사시대 시점들에 대해선 정답이 없다. 100인 100색일 것이다.      


각 사건 사이의 간격들이 기하급수로 줄고 있음이 뚜렷이 보인다. 선사시대는 10 배수만큼, 역사시대엔 2~3 배수씩 단축되고 있다. 이 추세가 맞다면 11번째 터닝포인트가 멀지 않았다. 앞으로 5년 또는 10년 안에 우리 앞에 전혀 새로운 뭔가가 나타날 것이다. 지구상 수많은 선각자들이 온갖 지혜를 짜내며 날밤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인류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정열을 쏟아내고 있는 그들 제2, 제3의 스티브 잡스들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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