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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Dec 27. 2023

조선시대 6대 간선도로와 코리아둘레길 (下)

의주대로, 경흥대로, 평해대로, 영남대로, 삼남대로에 이어 조선시대 6대 간선도로 중 마지막 여섯 번째는 한양에서 서쪽 강화도까지 이어지는 서지강화육대로(西至江華六大路), 강화대로였다. 연산군과 광해군 등 숱한 유배인들의 한숨이 서린 길이고, 그보다 훨씬 이전엔 몽골군에 밀린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천도할 때도 이 길을 지났을 것이다.      


조선시대 주요 도로망은 이상과 같은 6대로에서 더 세분화하면 4개의 지선(支線) 길들이 추가되어 10개로 늘어난다. 이천, 충주 거쳐 경북 봉화까지의 봉화로(奉化路), 노량진에서 시흥 거쳐 수원까지 이어진 수원별로(水原別路), 평택, 아산 거쳐 보령으로 이어진 충청수영로(忠淸水營路) 그리고 삼남대로 후반 삼례에서 갈라져 남원, 함양 거쳐 통영으로 이어진 통영별로(統營별路)가 4개 지선 길들이다. 6대로는 1770년대에 제작된 신경준의 ‘도로고(道路考)’ 기준이고, 그보다 100여 년 후에 나온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이처럼 10개 도로망으로 늘어난다.      


그러면 현대로 오면서 이 길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북으로 향했던 1번 길 의주대로는 파주 임진각에서 막혔고, 2번 길 경흥대로 역시 철원 DMZ를 넘을 수 없다. 남쪽에선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뚫리며 서울-부산은 자동차 반나절 거리로 짧아졌다. 그 옛날 과거시험 보러 가던 선비들이 짚신발로 보름을 걸어야 했던 영남대로는 일제강점기 땐 철도와 신작로에 밀리며 점차 그 위상이 초라해지더니 고속도로가 생기고부터는 존재감마저 희미해졌다. 삼남대로 등 다른 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발 시대를 거치며 국도와 지방도에 묻히거나 옛길의 흔적들만 아련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오늘날 ‘길’의 의미는 그 옛날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 지역 간 이동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여행 또는 걷기 목적이 추가되었다. 일상과 생계라는 쳇바퀴에서 벗어난 현대인의 여유가 반영된 것이다. 오랜 세월 묻히고 잊혔던 옛길들이 하나둘씩 복원되며 사람들 발길을 맞아들이고 있다. 일례로 수도권에선 경기옛길 6개 노선이 인기를 끄는 중이다. 경기도가 관내 옛 조선시대 6대 간선도로 노선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낸 것이다.      


2013년 5월 경기옛길 삼남길이 과천-평택 구간에 개통된 걸 시작으로, 고양-파주 구간에 의주길, 성남-이천 구간에 영남길, 구리-양평 구간에 평해길, 의정부-포천 구간에 경흥길이 순차적으로 개장된 데 이어 2022년 10월엔 옛 강화대로를 복원한 경기옛길 강화길이 6번째 마지막으로 열린 것이다. 옛길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여러 해 동안 공들여 연구하고 고증을 거쳐 검증해 낸 결과다. 고속도로에 묻히고 신도시 아파트 등에 막힌 구간은 더 나은 대체 도로를 찾아 우회하면서 원형을 벗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열린 경기옛길도 그 원조는 제주올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난 십여 년간 우리나라 걷기 열풍 분위기와 함께 개장된 거의 모든 도보여행길들이. 제주올레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제주 사람 서명숙 씨가 제주 섬 동쪽 끝에 올레길 1코스를 개장한 건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이듬해인 2007년 9월이다. 그리고 매년 몇몇 코스를 이어가면서 2009년에는 제주 섬 서쪽 끝을 넘어 14코스까지 이었고, 2012년에는 마지막 올레 21코스까지를 연결한다. 이로써 제주 섬은 차 없이도 도보여행으로 한 바퀴 돌 수 있는 올레 길로 연결이 되었다. 1코스 개장한 지 5년 만이다. 이후에도 2022년 5월에 추자 섬의 제주올레 18-2코스 등 지선(支線) 코스들은 계속 추가되고 있다.     

 

기독교 종교인들만 걸었던 1,000년 역사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36년 전 파울로 코엘료가 걸어 ‘순례자’를 출간하면서 일반인들의 자기 성찰을 위한 도보여행길로 거듭난 것처럼, 단체 버스 관광객이나 택시 대절한 신혼부부들의 관광지였던 제주는 올레길이 생기면서 도보여행의 천국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그와 함께 대한민국엔 걷기 열풍이 몰아친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도보 여행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로 생긴 길들은 아니고, 원래 있어 왔던 여러 갈래의 길들이 하나의 길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이름으로 거듭난 것이다. 지리산 둘레길, 강화 나들길, 서울둘레길  강릉 바우길……, 원래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가 걸을 일은 없었던 길들이다. 울긋불긋 안내 리본들이 매달리고 이정표와 표지목들이 세워지면서 적막했던 길 위에 사람들 발자국이 새롭게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코리아둘레길


2016년엔 동해안에 해파랑길이 열렸다. 우리나라 동해바다와 남해의 분기점인 부산 오륙도 앞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750km 길이다. 걸어서 한 달 걸리는, 당시로선 국내 최장거리 도보여행길이었다. ‘해파랑’이라는 이름에는, 해 뜨는 동해, 넘실대는 파란 파도를 바라보며 너랑 나랑 함께 걷는다는 이미지가 담겨있다.      


해파랑길이 생기고 4년 후인 2020년에는 남파랑길이 열렸다. 부산 오륙도 앞에서 남해안을 따라 해남 땅끝 마을까지 잇는 1,470km 길이다. 망망대해인 동해 바다와 달리 오밀조밀 다도해 섬들을 바라보며 걷는다. 지난 2022년에는 서해안에 서해랑길이 열렸다. 남파랑길 종착지인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화도 북단 평화전망대까지 이어지는 1,800km 길이다. 갯벌이 많은 서해안이다. 바다 색깔도 다르고 동해와 남해와는 또 다른 은근한 분위기를 안겨준다.      


내년 봄에는 DMZ 평화의 길 524km가 열릴 예정이다. 지금은 경기권 DMZ 접경지에만 경기평화누리길이 운영되고 있지만, 내년 초까지 강원도 구간을 횡단해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DMZ 접경 지역 전 구간이 연결되고 나면 대한민국을 한 바퀴 도는 코리아 둘레길이 완성된다. 해파랑길부터 동서남북 4개 길 거리를 모두 합치면 총거리가 4,500km를 넘긴다.      


미국 대륙을 종단하는 3대 도보여행길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서부 쪽으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중부 내륙에 컨티넨탈 디바이드 트레일, 그리고 동부의 애팔래치아 트레일이다. 각각의 길이는 짧게는 3,500km에서 길게는 5,000km에 이른다. 우리나라 코리아 둘레길이 4,544km, 대단한 거리다. 땅 면적으로는 미국 대륙의 100분의 1에 불과한 우리나라가 도보여행으로는 천국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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