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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Dec 13. 2023

인류 역사의 10대 터닝포인트 (1/2)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뭔가 ‘쾅’하는 대폭발이 일어났다. 지금으로부터 138억 년 전의 일, 빅뱅(Big Bang)과 함께 우주공간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무한 질량의 작은 점에서 뻥튀기처럼 생겨난 이 공간은 빛의 속도로 팽창을 시작한다. 멈출 수 없는 관성에 따라 공간의 부피는 영원히, 무한대로 확장 중이다. 

폭발이 있고 수십억 년 지나면서 적막했던 공간에 ‘물질’이란 것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각자의 중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겨 뭉치거나 충돌하며 크고 작은 덩어리로 변해간다. 별들과 태양, 목성과 토성 같은 소위 항성과 행성들이 생겨났고, 지구라는 우리 행성 역시 그런 과정에서 46억 년 전 태어났다. 


초기에는 울퉁불퉁하고 시뻘건 불덩어리에 불과했다. 멈추지 않는 자전과 공전으로 점점 매끄러워지고 냉각되더니, 2억 년 전에 이르러선 판게아라는 하나의 땅과 테티스라는 하나의 바다로 다듬어졌다. 다시 수천만 년 지나자 판게아에 균열이 생기고 쪼개지며 지금처럼 5대양 6대주의 아름다운 지구 모습으로 자리가 잡혔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렸다’는 개천벽지(開天闢地)는 아마도 이때쯤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하늘나라 선녀가 산속 개울로 내려와 목욕하던 시절이다. 개울가 큰 바위 하나가 일 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에 스치며 닳아 없어지는 겁(劫)의 세월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지구상에는 무수한 생물체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며 개체 수를 늘려갔다.  


인류의 조상인 유인원들 또한 진화를 거듭하며 꾸부정하나마 직립보행 단계에까지 이른다. 그런 인류 초기의 모습 이후 21세기 오늘날까지 조그만 행성 우리 지구 안에서는 우주 공간 별자리 숫자만큼이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이들 중 가장 획기적인 사건 또는 변화를 딱 10개만 추려 보기로 하자. 인류사에 제일 큰 영향을 끼쳤고 인간의 삶의 질을 혁신적으로 바꿔 놓은 10대 터닝포인트를 하나씩 찾아내 들춰보는 것이다. 



1. 도구의 사용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영화 사상 최고의 SF 걸작으로 꼽힌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흐르며 화면이 열리고, ‘인류의 새벽’이라는 자막과 함께 오프닝 명장면이 이어진다. 황량한 원시 지구의 아프리카 대자연, 먹을 것 찾아 헤매는 유인원 무리를 굶주린 암사자 한 마리가 달려들어 급습한다. 동료가 물어 뜯기며 비명을 지르지만 유인원 무리로선 어쩔 방도가 없다. 비록 한 마리이지만 맹수의 날카로운 이빨과 강력한 힘에는 속수무책이다. 그저 멀리 떨어진 채 양팔로 가슴을 치고 괴성을 지르며 안타까움만 표시할 뿐이다. 멧돼지 무리도 그들과 섞여 있지만 아직까지는 서로 해를 끼치지 않는 이웃이고, 서로에게 어떠한 경계심도 없다. 


장면이 바뀌고 어느 날, 홀로 떨어진 유인원 한 마리가 포식자들이 먹어 치운 동물들 뼈다귀 더미를 뒤적이고 있다. 남아 있는 살점이나 없나 살펴보다 굵직하고 단단해 보이는 다리뼈 하나를 손에 쥐어 본다. 아무 생각 없는 우연한 동작이다. 손에 든 뼈다귀로 여기저기 툭툭 쳐보니 주변 작은 뼛조각들이 잘게 부서지며 튀어 오른다. 은근한 재미로 같은 동작을 반복하던 그, 이번엔 뼈다귀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일어서선 강력한 힘으로 내리쳐본다. 바닥에 있던 단단한 두개골 뼈가 산산조각이 난다.


묘한 흥분 속에 두 번, 세 번 계속 내리치면서 온몸에 희열이 일고 어떤 이치를 깨닫는다. 인류의 조상이 ‘도구’의 힘을 최초로 알게 되는 역사적 순간이다. 이후, 도구를 쥔 유인원 무리가 맨손의 무리를 제압하여 유리한 영역을 차지하거나, 몸집이 거대한 들소를 도구의 힘으로 쓰러트려 생고기를 나눠 먹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인류의 삶의 질을 혁신적으로 바꿔 놓은 첫 번째 터닝포인트는 바로, ‘도구의 사용’ 일 것이다. 




2. 불의 발견 


인류에게 불은 태초부터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수천만 년 전에는 하늘에서 거대한 돌덩이가 떨어져 온 세상 불바다 된 속에서 겨우 소수만 살아남았고, 높은 산 꼭대기가 폭발해 불덩이를 쏟아내는 지옥을 수시로 경험하며 진화한 그들이다. 어느 날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불타버린 숲 속 잿더미에서, 죽은 동물의 사체를 무심코 먹어보곤 그 맛의 기막힘에 놀랐다. 날고기만 먹던 그들이 불에 익힌 고기의 맛을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돌이나 나무토막을 마찰시켜 오래 비비면 불이 만들어진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불을 만들고 유지하고 다룰 줄 알게 되면서 그들의 일상에는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생식(生食)이 화식(火食)으로 바뀌며 체형도 좋아지고, 횃불을 무기로 사용하거나 동굴 속에 불을 피워 추위를 이겨내면서 수명도 늘어났다. 다른 뭇 짐승들과 다를 바 없던 그들의 삶이 불 사용법의 터득으로 비로소 야만의 환경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4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인류사 두 번째의 터닝포인트였다. 




3. 호모사피엔스의 출현 


400만 년 전 직립보행 초기 단계였던 아프리카의 ‘남방 원숭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류의 먼 조상이다. 다른 포식자들이 먹다 남긴 동물의 사체에서 살점을 발라 먹거나 두개골이나 뼈를 부숴 골수를 마시며 살아남았다. 두 손으로 기본 도구는 쓸 수 있었기에 뇌의 크기도 늘어났고 신체 발달도 빨라졌다. 


200만 년 전에는 ‘손을 잘 쓰는 사람’ 호모하빌리스로 진화하더니, 40만 년 전 ‘똑바로 걷는 사람’ 호모에렉투스 시절에는 불을 만들고 다루며 생활수단의 하나로 활용하게 된다. 그리고 4만 년 전에 이르면 드디어 마지막 진화 단계에 도달한다.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하는 것이다. 하체가 길어진 만큼 행동반경도 급격히 늘어났다. 고향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며 중동과 유럽 아시아 등지로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 먹을 것 많고 보다 안전한 지역을 찾아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는 것이다. 


완전한 직립 보행 덕택에 두 손은 완벽하게 자유로워졌다. 용량 커진 뇌는 두 손을 시켜 온갖 새로운 것들을 만들거나 유용한 행동들을 하게 해 줬다. 영장류 최고의 존엄 자리에 등극한 것이다. 기하급수적 진화 속도가 일궈낸 인류사 세 번째 터닝포인트는 호모사피엔스의 출현이다. 



4. 문자의 발명 


현생인류의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나며 BC 4000년경까지 세월이 흐르자 네 번째 터닝 포인트가 되는 대변화가 일어난다바로, 문자라는 첨단 수단을 발명하게 된 것이다. 에덴동산 주변에 있는 두 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작된 변화다. 점토판에 새겨 놓은 수메르인들의 설형문자 혹은 쐐기문자는 인류 최초의 문자로 통한다. 


당장 오늘 하루 먹고사는 관심을 넘어 내일이나 미래 혹은 후세를 위해 뭔가를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 그림에 불과했던 문자들이 부피 커진 호모사피엔스의 뇌 속에서 발전을 거듭하며 ‘길가메시 서사시’가 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법전이 되어갔다. 바야흐로 인류는 수백만 년 야만과 야수의 삶을 벗어나 기록의 시대, 문명의 시대, 역사시대를 여는 새벽을 맞는 것이다. 


400만 년 전 도구의 사용으로 시작된 인류의 혁신은 40만 년 전 불의 발견과 4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그리고 BC 4천 년 경 문자의 발명으로 이어진다. 네 번에 걸친 터닝포인트 사이사이 구간이 10 배수만큼 빨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섯 번째 터닝포인트에 도달한 기간 역시 10 배수만큼 짧아졌다. AD 4세기말부터 시작된 게르만 족의 대이동이 그것이다. 



5. 게르만족의 대이동 


아프리카를 떠난 초기 인류는 해 뜨는 동쪽으로 가면 뭔가 좋은 게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머나먼 몽골 고원에 도착한 그들은 초원에서 대대손손 떠돌이 유목생활에 적응해 갔고, BC 4세기에 이르러선 ‘흉노’라는 이름의 강력한 유목국가로 부상해 있었다. 바이칼 호수까지 광대한 면적에 걸쳤고, 진시황으로 하여금 만리장성을 쌓게 할 정도로 한때는 중원을 위협하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한무제의 위세에 눌려 서역으로 쫓겨가다 소리 소문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AD 4세기 어느 날, ‘흉노’의 후예일 것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훈족’이 역사의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는 인류사의 대변혁을 촉발시킨 것이다. 신석기시대부터 북해와 발트해 사이 지역을 떠돌던 게르만족들은 BC 2세기 때부터 좀 더 나은 곳을 찾아 서남 방면 라인강과 동남쪽 흑해 방면까지 광범위하게 이동해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동쪽 멀리에서 나타난 훈족은 무시무시했고 잔인했다. 공포 그 자체였다. 


유령처럼 급습해 온 훈족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게르만인들은 각 분파별로 새 터전을 찾아 대이동을 시작해야 했다. 앵글로색슨 분파가 북해 건너 브리튼 섬으로 들어가 원주민 켈트족을 밀어내고 잉글랜드 땅을 차지한 것처럼, 동고트, 서고트, 프랑크, 부르군도, 반달 등 게르만족의 여러 분파들은 각기 서쪽으로 남쪽으로 이동하며 로마제국의 영역을 야금야금 침범해 들어갔다. 예전 같으면 감히 넘볼 수 없던 로마제국이었다. 그러나 게르만인들에겐 생존 자체가 절실했고, 또한 강력한 훈족에게 당하며 배웠던 침략의 기술이 그들에겐 큰 무기가 되었다. 


AD 4세기 후반에 시작돼 서로마제국의 멸망까지 이르게 한 이 사건으로 인류사는 고대를 접고 중세시대로 들어선다. 이 과정에서 유럽 전역에 건설된 게르만인들의 여러 왕국은 21세기 오늘날 세계질서의 중요한 근간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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