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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Dec 09. 2023

하산할 때의 마음가짐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고요. 

가장 좋고 비싼 산은 부동산이라고 해요. 

그러면 제일 중요한 산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하산(下山)입니다.’ 

                                                              (엄홍길 대장) 


고산 위에서는 시간의 흐름도 빠르다. 

혼자 상념에 젖고 아주 잠깐 서로 껴안고 축하해 주고 인증 사진 몇 장 찍고 나서 쭈그려 앉아 머리 싸매고 아파하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다. 이곳까지 올라오는 십일 동안은 미지와의 조우, 완전히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 시간이었다. 실족 등 사고의 위험 또한 일상이었다. 그런 여정을 뒤로하고 드디어 정상에 섰다. 벅찬 감동과 안도가 격랑처럼 휩쓸고 간 자리엔 하산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자라난다. 여기에 섰을 때를 기대하며 언제부턴가 막연히 품었던 감상, 우주를 껴안을 듯한 원대한 감상 따위는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이제 해발 3,800m의 묵티나트(Muktinath)까지 고도차 1,600m 이상을 거의 수직으로 내려가야 한다. 체력은 이미 소진이 되어버린 상태, 허기도 갈증도 별로 느끼지 못한다. 오로지 머리만 빙빙 돌며 어지럽다. 온몸은 붕 떠 있는 느낌이다. 내려다보이는 하산길은 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설산들 때문인지 웅장하고 신비로운 모습인 한편 이상한 공포감을 안겨주고 있다. 봉우리 부분만 흰 눈으로 덮인 채 그 아래부터의 무채색이 흡사 커다란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형상이다. 우리가 어서 그 아가리 속으로 들어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까마득한 저 길을 내려가는 동안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고산 쇼크가 슬그머니 다시 걱정스러워진다. 해발 4,000m까지 내려갈 동안에는 방심할 수 없는 고산 쇼크, 체력이 이미 소진되고 방전된 걸 실감하기에 두려움은 더 커진다. 


드디어 하산을 시작했다. 

안전한 지점까지 얼른 내려가야 한다는 조급함에 은연중 걸음이 빨라졌나 보다.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뒤따르던 포터가 얼른 다가와 내 팔을 붙잡고 부축한다. 그리곤 거듭 주의를 준다. 고도를 급격히 올리는 것도 위험하지만 급격히 내리는 것 또한 위험하다는 것이다. 혈압 등이 온몸의 균형을 깨트릴 수 있음을 재차 상기시켜 준다. 그렇지, 서두른다고 되는 일은 없지, 심호흡 크게 한 번 더 해주고 마음을 다잡아 가며 조심조심 스틱을 내딛는다. 


이틀 전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호주인 부부와 만났다. 남편은 나와는 고산병 동지인 셈이다. 둘이 같이 포즈를 취했고, 남편에 대한 간호가 정성스러웠던 아내가 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줬다. 내내 헉헉거리며 여전히 하늘이 노랗지만 그녀가 들이대는 카메라 앞에서는 그래도 억지웃음을 보여줘야 했다. 남편 또한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카메라 앞 두 남자, 웃고는 있지만 동병상련인 것이다. 각자의 몸 상태가 어떨지는 서로가 익히 아는 바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Good luck. See you again’이라는 인사말로 부부와 헤어졌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뒤돌아 정상을 올려다보았다. 나도 모르게 반복되는 행동이다. 저 자리에 잠깐이나마 머물 수 있게 허락해 준 모든 것이 고마울 뿐이다. 저 자리까지 오르는 동안 나와 인연을 맺었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폭풍처럼 일었다. 이제 안전지대까지 내려온 모양이다. 비로소 마음에 여유가 들어서는 듯하다.



집 떠나와 십여 일째, 처음으로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에 대한 감사의 눈물일 수도, 결국 성공했다는 감동의 눈물일 수도 있었다. 조금만 내려가면 끝이라는 안도의 눈물인지도 몰랐다. 정상에서 흘렸어야 할 눈물이다. 위에서는 그저 가파른 내리막길을 어찌 안전하게 하산할까, 공포에 가까운 걱정뿐이었다. 남들 모두는 정상에서 감격에 겨워 흘리는 눈물이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며 남은 하산길을 굳세게 노려본다. 내려올 때 뒤돌아 올려다보는 심정은 올라갈 때 정면을 직시하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정상을 향하던 때의 막바지 고통과 희망과 설렘이 있던 자리엔, 정상을 내려서는 내내 까닭 모를 회한과 아쉬움이 들어차고 있다. 


정상에 머무는 시간이란 대개는 짧다. 영원한 정상이란 없다. 아등바등 올라가며 걸린 시간들에 비하면 그저 찰나일 뿐이다. 정점 이후의 내리막 하산길은 지난하고 멀게만 느껴지기 쉽다. 누구의 인생에나 정상의 시간은 있는 법이다. 높고 낮고 길고 짧음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정점에 다다른 걸 인식하기 어렵다. 내려가야 할 시점이 눈앞이란 사실 또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좀 더 오를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올라야 한다는 당위 또는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다. 


다시 고개 돌려 몇 시간 전에 서 있던 곳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아쉬움과 회한이 몰아친다. 그 소중한 시간에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누렸는지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 속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렇게 힘없이 하산하고 있다. 어떻게 고생해서 올라간 정상인데, 아쉽기만 하다. 고산증에 대한 대비를 좀 더 계획적으로 했더라면 정점의 순간에 더 깊은 감동과 행복을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정점도 이미 지난 것일까? 

지금 이처럼 무기력한 하강 길에 들어선 것일까? 솟구치는 아쉬움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엄홍길 대장의 말처럼 하산길이 가장 중요하단 말을 잠깐씩 망각하는 것이다. 잠시 머물러 쉬며 정상에서의 순간을 추억하는 건 좋지만 내리막길 내내 자꾸 뒤를 돌아보는 건 위험하다. 미끄러져 실족하거나 계곡으로의 추락 위험도 상존한다. 한 치 미련도 두지 말고 하산길 한 뼘 한 뼘에만 집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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