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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Dec 06. 2023

알피니즘의 기원, 샤모니 몽블랑

해발 수천 m의 설산들은 오래전 인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때로 화산불 등 재앙을 내리는 무서운 존재이지 않았을까? 혹은 신이나 악마가 사는 성역으로 믿겼을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신비와 두려움의 대상이었음은 확실하다. 이런 설산들이 하나씩 베일이 벗겨지는 건 19세기 종반부터, 산업혁명과 함께 인류가 먹고사는 문제에서 조금은 숨통이 트이면서부터다. 장구한 인류 역사에 견주면 아주 최근의 일인 것이다. 


그러나 그 옛날부터도 시공을 초월한 위대한 이들에겐 신이나 악마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2400여 년 전 대군을 이끌고 마케도니아를 출발한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와 페르시아를 제패하고 마지막 타깃인 인도대륙으로 향했다. 이때 그들 앞에는 파미르고원에서 남서쪽으로 800km를 뻗어 내려온 거대 산맥이 가로막고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대군을 지휘하여 이를 넘는다. 기원전 328년인 이때의 동방 원정군이 힌두쿠시산맥의 해발 4000m 하와크고개(KhawakPass)를 넘은 이 사건이 어찌 보면 인류 등반 역사의 기원일 수도 있다. 


그로부터 100년 후에는 또 한 명의 위대한 인물이 유럽의 지붕인 설산에 도전하며 역사 전면에 등장한다. B.C. 218년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코끼리 수십 마리를 앞세운 수만 대군을 이끌고 알프스를 넘었다. 그렇게 높고 험한 설산을 넘어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지중해 쪽만 경계하던 로마인들은 혼비백산한다. 이어지는 칸나에 전투에서 수적으로 우세했던 로마군이 하루 동안에 수만 명 몰살당하는 인류 전쟁사의 대기록이 세워진 건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난 후 나폴레옹 또한 위기의 순간에 과감하게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반도를 장악했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가 여덟 개 나라 2400km에 걸쳐 있다면 역시 수많은 고봉 설산들로 이어진 유럽의 지붕 알프스는 일곱 개 나라 1000km에 걸쳐 있다. 5000만 년 전 유라시아 대륙판에 인도판이 부딪혀 히말라야가 생겨났듯이, 알프스는 유라시아판에 아프리카 판이 충돌하며 솟아났다. 총길이와 마찬가지로 높이 역시 히말라야의 절반 수준이다. 해발 8848m인 에베레스트가 히말라야 최고봉이듯 알프스 최고봉은 해발 4808m의 몽블랑이다. 정상 봉우리가 만년설로 사시사철 하얗게 보였기에 ‘하얀(Blanc) 머리의 산(Mont)’으로 불렸다. 부석(浮石)으로 늘 하얗게 보이는 우리의 백두산(白頭山)과 이름이 닮았다. 



알프스 몽블랑의 관문은 프랑스 동남부 오트사부아(Haute-Savoie) 주의 샤모니몽블랑(Chamonix-Mont-Blanc)이다. 통상은 줄여서 그냥 ‘샤모니’로 불린다. 동쪽으로는 스위스, 남쪽으로는 이탈리아와 국경을 접하면서, 알프스 여행자들에겐 인기 최고인 조그마한 산악도시다. 


샤모니에서 가장 번화한 곳은 닥터 파카르 거리와 발마 광장이다. 인류 최초로 알피니즘의 역사를 쓴 자크 발마와 미셀 파카르, 두 사람의 이름이 이 도시의 중심 지역 이름으로 남아 있다. 알피니즘의 기원에는 또 한 사람의 이름이 추가되어야 한다. 자신은 몽블랑 등정에 실패했지만 26년 후 두 사람이 몽블랑을 정복하도록 결정적인 동기 부여를 해준 오라스 소쉬르이다. 닥터 파카르 거리가 끝나는 발마 광장에서 이들 알프스 영웅 세 사람의 모습을 동상으로 만날 수 있다. 


광장에 들어서면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동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허리를 약간 숙이고 멀리 몽블랑 봉우리 지점을 가리키는 사람이 광장 이름의 주인공인 자크 발마다. 그 옆에 곳곳이 서서 발마의 설명을 듣고 있는 사람은 오라스 소쉬르, 바로 이곳 샤모니를 세상에 알리고 유럽인들에게 몽블랑 등정의 꿈을 심어준 인물이다. 


식물학자였던 소쉬르는 당시만 해도 산간 오지에 불과했던 이곳 샤모니를 식물 채집차 방문하여 해발 2526m의 브레방에 올랐다가 넋을 잃었다. 샤모니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거대 설산 몽블랑의 위용이 혈기왕성한 젊은이의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은 것이다. 몽블랑에 매료된 소쉬르는 산 정상에 오르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다. 그러나 몇 번의 시도 끝에 자신의 능력으론 한계가 있음을 알고 결국은 포기했다. 대신에, 저 산 정상까지 등반로를 찾아 올라간 이에게는 큰 상금을 주겠다는 공언을 남겼다. 


세월은 흘렀지만 소쉬르의 상금에 욕심을 내는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26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상금의 주인이 나타났다. 1786년 어느 여름날, 자크 발마와 미셸 파카르 두 사람이 1박 2일 동안의 사투 끝에 몽블랑 정상에 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산행 장비와 과학 도구 같은 건 있지도 않았던 시절의 설산 등반이었다. 그야말로 죽음에 맞선 도전임에 틀림없었다. 하산한 그들은 영웅이 되었다. 몽블랑 정상에는 신이나 악마도 없었고 인간이 오를 수 없는 곳도 아니었음을 그들은 입증한 것이다. 태고 이래 인간의 발길을 허용치 않았던 몽블랑 속살이 두 사람에 의해 베일을 벗었다.



설산을 오르는 ‘등산’이란 용어의 기원은 알프스에서 비롯됐다. 240여 년 전 세 사람의 영웅이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을 세상에 알리고 정복하면서 인류의 등반 역사가 시작된다. ‘알프스 등반’을 의미하는 ‘알피니즘(Alpinism)’이란 용어는 그때부터 ‘고산 등반’을 뜻하는 일반명사로 그 의미가 넓어졌다. 그 이전까지 인류는 알랙산드로스나 한니발이 아니고서야 신이나 악마가 살지 모르는 고봉 설산에 일부러 오를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이후 세상의 설산들은 더 이상 신비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도전과 탐험의 영역으로 바뀌게 되고 알피니즘은 유럽을 중심으로 큰 붐을 일으킨다. 산악도시 샤모니 도심 광장에서 동상으로 만나는 세 사람, 소쉬르와 발마와 파카르가 있었기에 이후 인류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비롯하여 지구상 모든 고봉 설산들을 빠짐없이 정복해 내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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