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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Dec 02. 2023

스티브 잡스의 1984와 2007


1984년의 세계는 인간 존엄이 완전 말살된 중세 암흑시대와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중세의 왕 같은 존재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첨단 미디어를 독점해 사회 전체를 손바닥 위에 놓고 통제한다는 것이다. 개인들은 철저히 감시받고 세뇌돼 자유는 물론 영혼까지 박탈된 노예나 다름없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동명의 영화에 그려진 가상 세계 오세아니아국(國)의 모습이 이러했다. 첨단 미디어가 독재체제에 악용되고 그로 인해 개인들의 삶이 철저하게 피폐해진 사회, 이 작품을 쓸 당시의 작가는 35년 후의 미래를 이렇게 암울하게 예견했다. 혹은 그런 상황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인류의 각성을 촉구했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현실 세계의 1984년이 밝았다. 다행스럽게도 작가가 우려했던 그런 징후는 아직은 보이지 않았다. 새해 벽두에 발표된 애플컴퓨터의 신제품 출시 광고 영상 한 편이 전 세계 대중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영상이 시작되면 기다란 행렬의 남자들이 지하 터널을 행진해 들어가 대강당 자리를 채워 앉는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 정연하다. 정면의 대형 스크린에선 전지전능한 빅 브라더가 모두를 향해 열변을 토해내고, 남자들은 모두 혼이 빠져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때 강렬한 인상의 여전사 한 명이 두 손에 기다란 쇠망치를 들고 강당 안으로 돌진한다. 무장 경찰들이 그녀를 체포하려 뒤쫓지만 한 발 늦다. 


수백 명 무기력한 남자들 사이 대강당 중앙에 멈춰 선 그녀, 들고 있던 쇠망치를 정면을 향해 힘껏 내던진다. 이어서 대형 스크린 모니터가 굉음과 함께 박살 나며 화면 속 빅 브라더의 모습도 암살되듯 사라지고 그 위로 자막 두 문장이 올라오며 영상은 끝난다. 


“On January 24th, Apple Computer will introduce Macintosh. And you'll see why 1984 won't be like ‘1984’. 1월 24일, 

애플컴퓨터가 매킨토시를 출시한다. 여러분은 1984년이 왜 소설 ‘1984’처럼 되지 않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 1984년 애플 맥 신제품 CF영상 


당시 스티브 잡스는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2인 공동 창업주의 일원으로 신제품 출시에 맞춰 내놓은 이 CF 영상은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애플컴퓨터의 위상을 높였다. 영상 속 빅 브라더는 당시 업계 일인자인 IBM을 암시하고, 무기력한 군중 속에서 홀로 대항하는 여전사는 애플컴퓨터, 그리고 그녀가 던진 쇠망치는 갓 출시된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를 의미한다. 작은 체구의 다윗이 돌팔매 한 발로 거인 골리앗을 쓰러트리는 형상을 비유한 것이다.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영상을 보면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영상 속 텔레스크린으로 대변되는 첨단 미디어가 조지 오웰의 우려처럼 지배층의 독점물로 악용돼 개인들을 감시, 통제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해석이다. 오늘날 우리는 각자 스마트폰이라는 소형 컴퓨터 하나씩을 들고 다닌다. 그리곤 세상 모든 일을 손바닥 위에서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며 일상을 살아간다. 첨단 기기가 독재자의 전유물이 아닌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인류의 삶의 질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조지 오웰이 암울하게 그렸던 ‘1984’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오늘날의 이런 사회 모습은 스티브 잡스가 구상하고 꿈꿨던 미래였고 이를 구현한 첫 작품이 바로 1984년 신제품 매킨토시였다.  ‘Apple Mac: 1984’란 제목으로 내놓은 이 CF 영상은 개인용 컴퓨터 시대의 출발선에서 쏘아 올린 첫 신호탄에 해당한다. 당시 ‘에이리언’과 ‘블레이드 러너’란 작품으로 성공을 거뒀고 지금은 세계적 명장의 반열에 올라 있는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이 1분짜리 이 영상을 연출했다. 영국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을 영화화한 알란 파커 감독의 ‘더 월(The Wall)’이 모티브가 된 듯하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2007년 1월 9일, 이번엔 CF 영상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 자신이 직접 무대에 올랐다.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에서 ‘아이폰(iPhone)’이라는 최초의 스마트폰을 발표하는 자리이다. MP3 플레이어, 휴대폰, 소형 포켓 컴퓨터는 이미 아이팟, 스마트폰, PDA라는 각각의 이름으로 시중에 유통되고 있었다. 잡스가 이들 세 제품의 기능을 하나로 묶었다며 직접 시연해 보인다. 


핸드폰에 고정 자판이 없어졌고 그 면적만큼 화면이 넓어졌다. 손가락 터치스크린 기능도 세상에 처음 선보였다. 구글지도를 불러오자 현장 주변 스타벅스 매장들이 떴고, 그중 한 곳에 전화를 걸어 즉석 주문도 해본다. 지금은 그저 우리 일상의 흔한 모습들이지만 당시 현장은 달랐다. 잡스의 말 한마디와 손가락 움직임 하나에 매 순간 놀라움으로 넘쳤고 환호가 터졌다. 


■ 2007년 아이폰 출시 발표 영상 


직립 보행을 시작한 선사시대의 인류는 도구의 사용과 불의 발견이라는 2대 혁신 과정을 거치며 비로소 다른 영장류와 차별화된 삶을 살기 시작했다. 문자의 발명으로 역사라는 걸 기록하기 시작했고 5~6000년 후인 18세기 들어서는 산업혁명을 통해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 놓았다. 그리고 300년도 안 된 2007년에 스마트폰이란 혁신 제품을 내놓았다. 


‘오늘은 휴대폰이 재발명된 날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꿔 놓으려 합니다. 여러분은 일상의 삶을 주머니에 넣고 손바닥에 들고 다닐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라는 한 천재의 머리에서 꿈꿨던 세상은 그대로 현실화됐고, 인류 개개인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태로 바뀌었다. 또 다른 혁신적인 뭔가가 등장하는 데는 30년도 안 걸릴 듯하다. 기후변화 위기를 맞고 있는 인류 앞에 지구 외에 우주 속 다른 세상과 조우하는 순간이 조만간 올지도 모른다. 2030년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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