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철 Nov 26. 2023

대영박물관에서 (1/2)

파리 세느강 남단의 오르세 미술관은 미술에 문외한인 누구라도 쉽게 분위기에 동화되는 공간이다.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 줍는 여인들’ 등 대중적으로 익히 알려진 작품들이 워낙 많다. 고흐의 작품들 역시 누구나에게 정겹다. 그가 그린 아를(Arles) 밤하늘의 별들은 물감을 듬뿍듬뿍 붙여넣은 듯 부피감이 느껴진다. 손만 톡 대도 별빛 물감들이 뚝뚝 떨어져 나갈 것 같다.      


그런 중에 익숙지 않은 작품도 만난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L’Originedu Monde)’은 미술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에겐 다소 낯설다. 너무나 생생하여 괴이하기까지 하다. 예술작품에 속하는지 미심쩍기도 하다. 알렉상드르 카바넬의작품 ‘비너스의 탄생(La naissance de Vénus)’은 외설과의 구분이 모호하긴 하지만 경건한 분위기에 신비감까지 함께한다. 비너스가 왜 미의 여신으로 불리는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모두, 오르세미술관을 다녀온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들이다.    


  

그림 아닌 조각으로 만나는 비너스의 이미지도 각양각색이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밀로의 비너스’를 보면 ‘모나리자’처럼 몹시 눈에 익다. 두 팔 없는 이 팔등신 미녀는 어릴 적부터 교과서를 통해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멀게 느껴진다. 가까이 가기엔 너무 먼 여신의 이미지다. 키 2미터가 넘는 실물 앞에서 어떤 범접할 수 없는 기운에 압도된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또 다른 비너스를 만나면 다르다. 낯설긴 하지만 가깝고 친숙한 느낌이 든다. 이 박물관의 그리스로마관에 전시된 ‘렐리의비너스’는 여신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여인네의 모습이다. 목욕 중에 누군가 자기를 훔쳐본다는 것을 알고는 화들짝 놀라며, "뭐예욧!"소리치고 있다. 훔쳐보던 관객이 멈칫했다가 괜히 쑥스러워 혼자 배시시 웃고 만다.     


 

대영박물관은 입구부터 사람 키 두 배 만한 거대 석상 두 개가, 막 들어선 입장객들을 압도한다. 둘 모두 이집트가 가장 번성했던 시대의 파라오인 아메노피스Amenhotep 3세의 전신상이다.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해준 로제타스톤은 원래는 나폴레옹 군이 발견했으나,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서 이곳에 있게 되었다. 두터운 유리 상자 속에 큼직한 검은색 바위가 보물처럼 모셔져 있다. 바위 위에 새겨진 무수한 자국들이 2200년 전 사람들이 사용했던 세 가지 언어들이고, 오늘날의 인류는 저 자국 하나하나의 연결된 의미들을 다 해독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하다.      


대영박물관의 방대한 전시관들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북적대는 곳은 이집트 조각관이다. 그중에서도 로제타스톤이랑 인접해 있는 람세스 2세 흉상 주변이 관객 밀집도가 가장 높았다. 어찌 보면 대영박물관을 대표하는 작품이겠는데, 오른쪽 가슴에 총 맞은 것처럼 정교하게 구멍이 뚫렸다. 장거리 운반을 위해 불가피하게 뚫어 놓았겠지만 어쩐지 잔인해 보인다. 투탕카멘의 흉상도 머리와 어깨 부분이 많이 손상되어 있다.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이십 세를 못 넘기고 암살된 모양이다. 우리가 익히 보아 온, 화려한 황금마스크의 소년왕 사진에 비하면 흉상은 초라한 느낌이다.      


이집트 조각관에서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미라관이다. ‘클레오파트라’란 이름의 미라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시저와 사랑을 나누거나 독사에 물려 자살한 여왕이 아닌, 일반 귀족 여인의 미라다. 태케브케넴Takhebkhenem 미라도 그렇고 시체를 천으로 감싸고 밴드로 휘감은 생생한 모습에선, 수천 년 긴 세월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몇 년밖에 안 된 무덤을 파헤쳐 관에서 막 꺼냈음직한 으스스함이 느껴진다. 특히 태케브케넴 미라의 경우는 엑스레이로 찍은 사진까지 바로 옆에 진열되어 있다. 선사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골격이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망자의 시신을 온전하게 오래 보존해야 언젠간 다른 시공간에서 자신들이 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미라에 많은 공을 들인 이유들 중 하나겠다. 이집트의 건조한 기후 조건이 시신 보존에 유리한 영향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멀리 티베트에 사는 사람들은 비슷한 기후 조건임에도 생각들은 정반대다. 이집트 사막처럼 티베트 고원 역시 건조한 환경 때문에 시신이 잘 부패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교의 윤회사상을 믿는 티베트인들은 시신이 그대로 보존되면 다음 생에서 다른 육신으로 환생할 수 없다고 믿는다. 때문에 그들은 죽은 자의 시신을 독수리들에게 먹이감으로 바친다. 새들의 입을 통해 육신과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다음 생에선 더 나은 조건으로 환생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늘 또는 새들에게 장례 지낸다 하여 천장(天葬) 또는 조장(鳥葬)이라 불린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의 장례문화가 극과 극의 대조를 보인다.      



게벨레인 남자Gebelein Man의 미라는 대영박물관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하다. 죽은 후 뜨거운 사막 기후에서 급속 건조되면서 자연스럽게 미라로 보존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상이집트의 게벨리온 사막에 묻혀 있다가 발견된 이 남자는 BC 3,500년 경 사람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구부려 엎드린 불편한 자세인 것으로 보아, 주변 사람 없이 홀로 외로운 죽음을 맞았나 보다.      


무려 5,500년 전에 살았던 인간의 모습과 살갗을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대영박물관의 힘이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다. 사람의 두개골과 팔다리뼈가 널브러진 나무관이, 뚜껑 활짝 열린 채 만인에게 보여지는 것이다. 미라를 포함한 이런 유골들은 냉정한 시각으로는 무덤을 도굴한 범죄행위의 산물로도 보인다.



이전 09화 히말라야의 기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