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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Nov 22. 2023

히말라야의 기원


우주 공간을 떠돌던 조그만 천체(天體)들이 뭉쳐서 지구가 탄생했다. 반경 10km 이내의 미행성(微行星)들이었다. 정처 없이 떠돌다 가까워진 것들은 각자의 중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며 하나둘씩 충돌하기 시작했다. 충돌 횟수가 늘어날수록 몸집도 커지면서 자체 중력 또한 커졌다. 주변을 맴돌던 작은 덩어리들은 속절없이 끌려와 섞였다. 지금으로부터 46억 년 전에 이르니 대략 천억 개 정도의 작은 천체들이 하나로 합체돼 있었다. 갓난아기 모습의 지구가 태어난 것이다.      


울퉁불퉁하고 뜨겁던 핏덩이 지구는 멈추지 않는 자전과 공전으로 점점 둥그스름해지며 식어갔고, 그런 과정에서 단단한 물질들은 내부로, 가스나 액체 등 가벼운 것들은 지표 외곽 쪽으로 쏠려가 자리매김했다. 어느덧 지표면 전체가 얕은 바다로 뒤덮인 원시지구, 둥근 행성의 모습으로 다듬어졌다.      


다시 아득한 시간이 흐르자 내부 깊숙이 눌려 있던 물질들이 고온 고압의 마그마가 되어 스멀스멀 지표 쪽으로 흘러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시원한 바다와 바깥공기를 만나 급속 냉각되고 누적되면서 해수면 일정 부분을 뒤덮어갔고 어느덧 드넓은 육지가 만들어졌다. 지구상 최초의 대륙인 발바라(Vaalbara)는 31억 년 전 이런 과정을 거쳐 생성된다. 그러나 이 거대한 대륙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균열이 생기며 여러 개로 쪼개진다. 또 다른 육지들이 고슴도치처럼 해수면 위로 솟아 나와 바다 일정 면적을 뒤덮기도 했다.      


오늘날 ‘판(plate)’으로 명명한 이들 크고 작은 암석 덩어리들은 서서히 움직이며 하나로 뭉쳤다가 결국은 다시 여러 개로 분리되기를 수억 년 주기로 반복하다가 3억 년 전쯤, 지구상에 나무가 등장해 삼림을 이루던 고생대 말기에 이르자 모든 대륙판들은 하나로 꼬옥 뭉치게 되었다. 현재까지는 마지막 초대륙(超大陸)인 판게아(Pangaea)가 탄생한 것이다.      


오늘날의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대륙판들이 각자의 형태를 유지한 채 모두 이 초대륙에 묶여 있었다. 북쪽으로는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 남쪽으로는 남아메리카 판, 아프리카판, 인도판, 호주판, 남극판이 서로 접착제로 붙인 듯 하나의 덩어리로 합체된 형상이었다.      


그러나 1억 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가자 초대륙 곳곳에도 이미 균열이 일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영속 불변인 건 없다. 세월 앞에 세상만사는 변한다. 판게아를 이루던 일곱 개 대륙판들은 서서히 분리되며 서로를 밀어내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각자 등 돌리고 헤어진다.      


초대륙은 먼저 로라시아(Laurasia)와 곤드와나(Gondwana)라는 두 개의 큰 덩어리로 분리되며 적도를 사이에 두고 북과 남으로 헤어졌다. 다시 수천만 년이 지나면서 이들은 조금씩 오늘날의 5대양 7 대륙 틀을 닮아가기 시작한다.      


적도 북쪽에선 로라시아가 아직은 하나지만 곧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 두 개 덩어리로 쪼개질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적도 남쪽에선 각 대륙판들이 이미 각자 홀몸으로 분리가 되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몸집 작은 막내 격 인도판은 그 움직임이 남달랐다. 아프리카, 호주, 남극, 3개 판에 꽉 끼어 꼼짝달싹 못 하다가 셋 사이가 벌어지는 틈을 타 간신히 벗어난 직후였다. 형뻘 되는 다른 판들이 육중한 덩치 때문에 느릿느릿 둔한 움직임이었지만, 가벼운 인도판은 분리될 때의 관성 때문인지 넓은 바다를 유유히 떠가고 있었다. 흡사 바람 따라 순항하는 돛단배 같았다.      


남극에 붙어 있던 위치에서 시작된 이동은 수천만 년 후 적도를 넘어서고, 다시 수천만 년이 지나자 북쪽에 자리 잡은 거대 유라시아 대륙판에 점점 다가서기 시작한다. 드넓은 바다 테티스해(Tethys Sea)를 남에서 북으로 종단한 것이다. 단순 계산으로 보면 1년에 최소 1cm씩 북상하여 총 거리 1만 km 바다를 약 1억 년 동안 건너온 셈이 된다.      


광활한 바다에선 안정되고 평화로워 보였던 인도판은 육지에 점점 가까워지자 마치 제동장치 고장 난 거대 함정이 조용한 항구를 향해 돌진하는 형국으로 변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인도판은 유라시아판과 쿵~하고 부딪히게 된다. 46억 년 전 태어난 지구가 중생대를 지나 신생대로 들어선 당시의 대충돌로 두 대륙판은 하나가 되었다. 가만히 있던 유라시아판으로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지만, 외로운 떠돌이 인도판은 부자 동네 큰집에 비집고 들어가 눌러앉아버린 셈이 되었다.      


이 사건은 주변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두 대륙의 충돌 부분이 우지끈 부서지며 수직으로 솟아올라 하늘 가까운 히말라야 산맥을 만들었고, 유라시아판의 충돌 후방 지역도 덩달아 들어 올려지며 해발 4천 미터의 티베트고원이 되었다. 물론 하루아침에 일어난 변화는 아니다. 양측 충돌면이 1년에 최소 1cm씩 융기되었다면 지금의 히말라야 높이까지 솟아오르는 데에는 1백만 년 세월은 걸렸을 것이다.      


우주 만물엔 관성이란 게 있어서 그 정도로 충돌 여파가 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그로부터 5천만 년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그 여파는 진행 중이다. 지금도 여전히 매년 수 cm씩 융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해발 8,000m를 넘긴 히말라야 고봉 설산은 에베레스트, K2, 칸첸중가, 로체, 마칼루 등 모두 열네 개뿐이다. 인류는 이들을 히말라야 14좌란 이름으로 부르며 특별히 대우해 준다. 여기에 오른 이들 또한 영웅으로 불리며 특별 대접을 받는다.      


이들 고봉들의 수는 몇만 년에 한두 개씩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인 10만 년쯤 뒤에는 지금의 14좌가 20좌로 증가해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때쯤에는 해발 1만 m까지 높아진 에베레스트가 새침한 모습으로 인류를 내려다보며, 제2의 새로운 에드몬드 힐러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히말라야가 움직이는 장구한 역사의 지구 위에 고작 50년이나 100년, 찰나의 순간을 머물다가는 우리의 모습이 신 또는 창조주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산길에 앉아 쉬는 내 발밑에서 바지런히 기어가는 개미 떼를 내려다보는 나의 느낌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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