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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Nov 15. 2023

스페인 땅끝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피니스테레(Finisterre)는 이베리아 반도의 서북단 곶(串, cape) 이름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동서남북으로 세상을 정복해 가던 중 이곳에 도착해서는 대륙의 서쪽 땅끝이라 생각하여 ‘최후(Finis)의 땅(terre)’이란 지명을 붙였다. 포르투갈의 호카곶이 조금 더 서쪽임은 훨씬 나중에 밝혀졌지만 말이다. 

 

29일 동안의 산티아고 순례 여정을 마친 다음 날 오후, 두 시간 버스를 타고 피니스테레로 왔다. 여느 바닷가와 다름없는 해안 언덕이었지만 지명이 풍기는 분위기와 순례길 시작점을 알리는 0.00KM 거리 표지석 그리고 드넓고 잔잔한 북대서양의 일몰 장관이 사람의 기분을 묘한 비장감에 빠져들게 했다. 

 

실물 크기의 불탄 등산화 조형물이 있고, 그 주변으로 거멓게 그을린 흔적들이 바위 위 여기저기에 보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종주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이곳에 와서는 그간 신었던 해진 등산화나 입었던 옷가지 등을 불태운 흔적들이다. 한 달 동안 걸으며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이전의 자신과 결별하여 새롭게 태어난다는, 이곳만의 전통의식이다. 

 


피스테라마을 숙소에 배낭을 두고 올라온 나는 뭔가를 태우는 대신, 부질없는 생각들을 대서양 너머 노을 진 하늘로 날려 보냈다. 퇴직하고 지난 1년여 내가 속으로 미워하고 원망했던 사람들에게 내색을 안 하는 게 힘들었는데 인제 돌아가면 그들을 비로소 밝고 환한 얼굴로 대할 수 있을 듯싶었다. 

 

2010년 영화 ‘The Way’는 죽은 아들을 대신해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선 아버지의 이야기다. 순례 첫날 피레네 산맥에서 사고를 당한 아들의 유해를 껴안고 먼 길을 대신 걸은 것이다. 이혼한 남자와 혼자 자란 아들, 행복하지 않았던 부자의 비극과 치유에 관한 이야기가 담담하게 그려진다. 스페인 서북부의 해안마을 묵시아(Muxia)는 이 영화로 많이 유명해졌다. 주인공 탐이 한 달 동안 함께했던 아들의 유해를 이곳 해안으로 와서 뿌려주는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영화 속 현장을 확인해 보고 싶어 묵시아로 왔다. 피니스테레에서는 북쪽으로 40km 떨어진 곳이다. 직통이 없어서 내륙마을 씨(Cee)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묵시아 바닷가 모습은 영화에서 봤던 그대로였다. 주인공이 서 있던 자리 옆으로 야고보와 성모 마리아의 인연을 기리는 비르셰교회(Santuarioda Virxeda Barca) 건물이 서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하얀 등대 그리고 언덕 위에는 2002년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와 관련한 거대한 조형물이 우뚝 솟아 있다. 

 

영화 ‘The Way’의 주인공 탐은 안과의사였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보다 넓게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삶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좁은 세계에 갇혀 살았음을, 아들의 죽음을 통해, 아들이 인도해 준 순례길 여행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영화는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그가 다시 여행길에 나선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모로코 어딘가를 걷는 그의 표정은 이전과는 다르게 밝고 여유로워 보인다. 나 또한 이 여행에서 돌아가면 그처럼 이전보다 좀 더 여유로운 모습일 것이다. 

 

묵시아 마을에서 하룻밤 쉬고 다음 날 오후 스페인을 떠나 포르투갈로 내려왔다. 국경을 넘는 버스 속에서 내내 영화 속 주인공 탐의 마지막 표정이 떠올랐다. 그가 시작할 새로운 인생과 나의 인생 2막이 서로 교차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갔다.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는 2박 3일 머물며 구도심 위주로 여유롭게 둘러봤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포르투 역사지구(Historic Centre of Oporto)가 나의 주 관심 대상이었다. 

 

포르투 시청 앞 광장을 출발하여 아줄레주 타일로 유명한 알마스 성당,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랭이 애용했다는 카페 마제스틱과 렐루서점을 거쳐 클레리구스 성당 종탑에 올랐다. 구시가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현대의 화려함과는 동떨어진 채 퇴락한 도시의 모습이지만 옛 시절의 영화를 은근히 과시하는 자태였다. 

 

이어서 남쪽으로 리베르다드 광장과 메트로 상 벤투역 그리고 구시가의 중심인 포르투 대성당을 거쳐 도우루강변 리베이라 거리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닐었다. 강변 여행자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는 동 루이스 1세 다리가 이 도시의 랜드마크임을 실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른 오전 시청 앞에서 시작한 역사지구 하루 여정은 도우루강 남쪽의 모루언덕에서 일몰을 바라보며 끝을 맺었다. 이동 거리는 10km도 안 됐지만 구도심 명소와 역사 유적들 20여 군데를 만나보는 넉넉한 하루였다. 

 

포르투갈이란 국명이 바로 이곳 포르투(Porto)에서 비롯됐고, 영어의 ‘항구(port)’ 역시 고대 로마인들이 이곳에 붙인 지명 ‘포르투스(portus)’에서 파생됐을 정도로 이베리아 반도의 해상 무역 거점이었다. 지금은 그 옛날 찬란했던 시절의 영화를 찾아볼 수 없지만 퇴락한 항구 도시의 이미지가 오히려 여행자들에겐 매력 포인트가 되고 있다. 

 

포르투 3일째 되는 날 오전에 기차 3시간 거리인 리스본으로 왔다. 이베리아 반도가 이슬람 지배하에서 벗어난 13세기 이후 지금까지 줄곧 포르투갈의 수도이면서, 1755년 대지진으로 완전 폐허가 된 자리에서 재건설된 도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닿기 70년 전부터 일찌감치 바다로 눈을 돌려 북대서양과 아프리카로 진출했던 포르투갈, 그러나 해양 선점자의 지위는 누리지 못했다. 발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추진력으로 콜럼버스와 마젤란 등을 후원한 스페인으로 더 많은 경제적 부가 집중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시절, 세계 여러 대륙의 식민지 땅들을 스페인과 함께 양분했던 해양 강국이었다. 

 

이런 포르투갈 영광의 시절을 주도해 온 도시 리스본은 스페인 내륙에서 발원한 테주강이 1,000km를 달려온 후 북대서양과 만나는 하류에 자리 잡고 있다. 일곱 개의 높고 낮은 언덕으로 이뤄진, 기복이 심한 강변 도시다. 

 

도시의 중심인 바이샤지구를 사이에 두고, 동쪽의 알파마지구, 서쪽의 바이루알투와 치아도지구, 그리고 북서쪽으로 곧게 뻗은 리베르다 거리 일대와 좀 멀리 떨어진 서남단의 벨렘지구로 이뤄져 있지만 2박 3일 여행자인 나는 이들 6개 지구 중 리베르다드, 바이샤, 알파마지구 순으로 둘러보았다. 

 

로시우광장과 코메르시우광장을 잇는 바이샤거리, 바다처럼 드넓은 테주강, 그 강을 가로지르는 멋진 현수교 4월 25일 다리(Ponte 25 de Abril), 울퉁불퉁 비탈진 옛 도심 알파마지구의 언덕길, 굴곡진 도로를 따라 한가로이 오가는 노란 전차 28번 트램,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와 강변의 야경 등이 잠시 머물렀던 리스본을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산티아고에서 스페인 땅끝마을까지의 여행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들이었다면, 포르투갈 리스본까지의 일주일은 낯선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만나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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