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국- 순교자
김은국의 <순교자>를 구매한 것은 2011년도이다. 그에 대해서는 여러 번 들었으나, 선뜻 그의 책을 시도해 보자니 부담스러웠다. 그러다가 덜컥 그의 책을 샀다. 마침 재번역판이 출간된 때였다(는 것은 이제 와서 다시 보니 알겠다).
대충 줄거리를 아는 상태로 사긴 했지만, 막상 책을 시작하자니 마음이 무겁고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13년이 지나 2024년 여름에서야 처음 책을 열게 되었다. 이 대위의 생각과 마음을 따라가자니 벅찼다. 때문에 두 번을 연달아 읽었다.
당시 책의 한 부분을 읽고 나서, 아주 짧은 메모를 달았었다- 아, 얼마나 부질없는가....라고.
그리고 2026년 1월, 다시 읽은 <순교자>는 깊은 상처를 주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책을 쉽게 열 수 없었던 이유는 상처받을까 봐였던 것 같다.
같은 나라에서 살아온 사람들끼리 서로를 죽이고 죽였던 한국 전쟁은 모두에게 상처였다. 아군과 적군, 일반 시민과 군인, 의사와 목사, 장교와 일반 병, 어린아이와 노인, 여자와 남자, 젊은 이와 젊지 않은 이, 미쳐 버린 사람들과 미치지 않은 사람들 - 우리를 구분하는 그 많은 정의는 전쟁이라는 비극적이며 비참한 상황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순교자>의 배경은 1950년 겨울의 평양이다. 국군은 평양을 탈환한 뒤 임시 본부를 설치하고 도시를 통제하고 있다. 임시 본부 앞에는 포탄에 맞아 무너진 교회가 하나 서 있는데, 건물은 폐허가 되었으나 종탑의 종만은 겨울바람 속에서 하염없이 울리고 있다.
이 소설은 그 교회의 종탑 아래에서, 마치 밀레의 만종처럼, 머리를 수그리고 기도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이 대위의 생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위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머리 안이 하얘진다 - 구어적 표현의 하얘진다는 게 아니라, 이 대위의 생각이 글로 나타나는 그 장면들이 하얀 배경 위에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천국처럼 한없이 하얀 3차원의 공간에서 인물들이 살아나며 말을 한다. 때문에 같기도 하며 다르기도 한 그들 각자가 좇는 진실의 실체가 더욱 선명하게, 그래서 더욱 괴롭게 다가온다.
국군이 평양을 탈환하기 전, 북한군은 평양에서 활동 중인 목사 열두 명을 체포한다. 그중 열 명은 총살당하고, 나머지 두 명만이 살아 돌아온다 - 20대의 한 목사는 미쳐서 돌아왔고, 50대의 신 목사는 그만이 목격한 그날의 진실에 입을 다문다.
국군에게는 순교자들이 필요했다. 종교 탄압에 맞서며 총앞에 숭고하게 죽은 순교자들- 장 대령의 말을 빌리자면 진실은 중요치 않다. 총살당한 목사들이 있고, 돌아온 두 명의 목사마저도 탄압에서 살아남은 영웅들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전쟁의 논리는 그런 것이다.
이 대위의 친구인 박 대위가 알고 싶은 진실은 약간 다르다. 총살당한 열 명의 목사들 중 한 명이었던, 그 누구보다 신실하며 강직했던 그의 아버지의 죽는 순간의 진실이 알고 싶다- 나의 아버지는, 죽는 그 순간에도 그의 신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었는가.
그러면 그날의 유일한 생존자나 마찬가지인, 신 목사만이 알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 열 명의 순교자들은 어떻게 죽었는가 - 여기서 말하는 '어떻게'는 죽는 방식에 대한게 아니다. 그들은 총앞에서 '어떻게' 죽었는가를, 그들은 총앞에서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였는가를 말한다.
이 소설의 화자인 이 대위는 "진실은 밝혀져야만 한다"라고 했다. 그로 인한 그 모든 과果는, 그 모든 고통과 고뇌는 받아들이는 이들의 몫이며, 사람은 진실을 말해야만 한다고 했다.
"목사님의 신- 그는 자기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을 알고 있을까요?"
소설 초반, 이 대위가 신 목사에게 던진 한 줄의 질문은 소설의 작가인 김은국이 참호 속에서 되뇌며 찾던 진실이다.
김은국이 찾던 진실은 두 명의 목소리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다.
신 목사의 희망을 통해,
"하지만 목사님, 당신의 희망과 당신의 약속은요?"
"나의 희망? 될수록 많은 이들이 절망의 노예가 되지 않고, 될수록 많은 이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서 이 세상의 고난을 이겨내고, 될수록 많은 이들이 평화와 믿음과 축복의 환상 속에서 눈을 감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 그게 내 희망이오."
그리고 평양에서 철수하던 중에도 국군 임시 병원으로 돌아가 스무 명의 죽어가는 환자들과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한 민 소령을 통해,
"내 직업이 직업이라 사람 죽는거야 숱해 보았지. 의사로서 난 내 환자들이 왜 죽는가를 설명할 수 있소. 하지만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는 건 나로선 도저히 설명이 안 돼. 그 문제의 밑바닥에 도달하면 도저히 합리적 설명이 나오질 않아요. 아무 뜻도 의미도 없거든. 그러나 그 죽음이 무언가 뜻을 가지긴 가져야 하지 않겠소?"
"그래서 부인을 이해하게 된 거군요?"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에게 필요했던 것- 종교를 갖고 신을 가져야 하는 절실한 필요성을 이해하게 된 거지."
진실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상처가 될 진실과 희망이 될 진실 -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진실만은 살아남아 전해져야 한다는 '진실의 실체'에 대해서는 이 대위와 신 목사, 둘의 생각은 다르지 않다.
진실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은 김은국은 소설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남겼다.
'이상한 형태의 사랑'에 대한 그의 통찰이 나로 하여금 한국 전선의 참호와 벙커에서의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준 알베르 카뮈에게
소설을 열면서 나온 이 문장을 처음 봤을 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해설까지 전부 읽고 나면 그제야 '이상한 형태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 김은국은 <순교자>를 영어로 썼다. 1978년에 국역판을 새로 번역한 도정일은 김은국의 관점이 지나치게 서구적이어서 한국인들의 관점과 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 후, 33년이 지나 도정일은 그가 번역한 이 작품을 재번역하게 된다. 그리고, 1978년도 그의 생각에는 잘못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내가 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김은국의 이 소설이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어떤 특수한 사건을 인간의 보편적 운명에 관한 '세계문학적' 주제와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의 중요성이다."라고 해설에 적었다.
더불어 도정일은 <순교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 한국의 소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문제의식의 제기와 이를 풀어가는 그 구조를 이 소설이 성취한 가장 큰 업적이라 말한다.
나는 도정일의 의견에 동의한다.
+ 책을 읽다가 순간적으로 눈물을 흘린 부분이 있었다. 박 목사 죽음의 순간에 대한 진실을 찾던 박 대위의 고백으로부터다.
"난 그 사람들을 사랑해." 그는 조용히 말했다. "고 군목의 말대로야. 나도 그들 중의 하나니깐."
아버지 박 목사를 따르던 이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박 대위는 이후 전투에서 크게 다친 채 후방으로 이송되어 결국 의식을 찾지 못하고 죽는다.
그 자신이 고통의 근원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한 박 대위는 그가 부정하고, 미워했으며, 그래서 사랑했던 아버지 박 목사와 아주 많이 닮았다.
+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에서 사랑과 자유에 대한 상반된 진실을 얘기한다. 소록도 사람들이 추구한 사랑이 깃들지 않은 자유와 조백헌 원장이 고집한 자유가 스미지 않은 사랑.
그냥 생각이 나서 덧붙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