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릭 리머스와 해리 피어스, 모순의 시대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은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다시 읽으며 ‘직업으로서의 스파이’와 우리가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회색지대를 떠올린다.
나는 냉전의 삭막한 논리로부터 첩보전의 문제를 완전히 제거하려고 했다. 대신 독자들의 눈을 도덕적 관점으로 유도하여, 서방이 공산주의 방식으로 첩보전을 치러야 하는 대가에 고정시키려 했다. …… 나는 이런 질문을 제기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하면서도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 내가 이미 묘사한 바와 같이, 첩보전을 치르면서 서방은 개인을 희생시켜 왔다. 집단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미명 아래 그렇게 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 서방의 위선이다. 나는 그것을 철저히 비난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평가하는 데 점점 더 공산주의적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존 르 카레가 한 인터뷰에서 남긴 얘기다.
Spooks.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시즌 동안 BBC에서 방영된 영국 방첩부 MI-5 요원들의 이야기.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직업으로서의 작가, 직업으로서의 직장인, 직업으로서의 알바, 직업으로서의 배우, 직업으로서의 의사, 직업으로서의 공무원……직업으로서의 공무원 스파이.
비싼 옷과 시계, 남의 나라 기물을 부수며 영국 세금을 축내는 007과는 다르다. MI-5 소속 스파이들은 공무원 월급으로 명품 사기도, 연애하기도 어렵다. 집세도 빠듯하다.
그들은 몇 개 국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고, 명석한 머리로 신분을 위장하며 국내 테러를 막는다. 그들의 일상은 보통의 직장인과 다르지 않다. 단, 목숨의 보장이 없을 뿐이다.
해리 피어스는 방첩부 수장으로 10시즌 동안 혼자 살아남는다. 그의 부하들은 “명예롭게” 죽거나, 정부에 쫓기거나 수배된다. 공무원 스파이는 극한 직업이다. 그 또한 사랑을 잃는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다시 읽는 동안, 해리 피어스가 떠올랐다.
1960년대 동독과 영국.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존 르 카레에게 성공을 안겨준 세 번째 소설이다.
직업 스파이 앨릭 리머스는 베를린에서 요원을 잃고, 더 큰 스파이 게임에 뛰어들었다가 결국 제목 그대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다’. 그게 뭘 의미하든.
해리 피어스와 리머스의 차이는 하나다.
해리 피어스는 그 ‘추운 나라’에 계속 머문다. 생계를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 기간 계속 스파이로 일한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모순의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유대인을 증오하는 나치주의자는, 전쟁이 끝난 후 서방을 위해 정보를 판다. 공산국가인 동독의 그는 돈이면 무엇이든 한다. 서방의 친구이며, 조국의 배신자다. 그가 겪은 그 모든 전쟁이 그를 변하게 했다.
한편, 동독의 정보부에는 유대인 요원이 있다. 그는 당을 위해, 인민을 위해, 평화를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
증인과 정보를 모으고, 위험을 무릅쓴다. 그는 “착하고 진실된” 사람이다.
인종차별주의자와 착한 유대인.
서방이 이기게 해주는 자가 곧 정의로운 자가 된다- 모순이다.
모순의 세상사는 필요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신이 악해야만 우리가 정의롭다고 느낄 수 있고 떠들 수 있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그런 이야기다.
+ 존 르 카레의 책들은 영화와 TV쇼로 만들어졌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영화),
나이트 매니저 (TV쇼),
리틀 드러머 걸(TV쇼) 등
+ 냉전은 끝났지만, 잔재는 남았다. Spooks가 제작되고 방영된 2000년대에도 그 흔적은 서방 세계에 생각 이상으로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
+ 전직 내무부 또는 외무부 직원이셨던 작가께서는 2020년 89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가 떠난 지 5년이 되었다. 여전히 영상매체에는 첩보물이 넘쳐난다.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세상사는 모순과 필요악으로 굴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