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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의 개들 The dogs of war

죽더라도 간지나게

by 마나스타나스

2024년 6월에 작성. 프레데릭 포사이스, 존 르 카레,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 왠지 모르게 이 세 분의 작가는 한 묶음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들 모두를 존경하지만 나의 선호는 영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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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의 개들 The dogs of war 프레데릭 포사이스


읽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배워본 적은 없지만, 모스 부호를 배운다면 이런 느낌인가 싶게 세로로 쓰인 옛날 책을 읽는 것은 엄청난 리듬감을 요하는 일이었고 그만큼 지난했다.


400쪽이 넘는 잔잔한 세로글 속에서 이게 사업이야기인지, 페이퍼컴퍼니 만드는 과정에 대한 얘기인지, 전쟁에 대한 것인지, 무기 암거래에 대한 것인지, 쿠데타에 대한 것인지, 아프리카의 독재에 대한 것인지…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게 풀어놓은 내용들은 각각 매우 정교하고 상세하며 흥미진진한데, 막판의 반전을 생각하면 흩어진 내용 그 각각이 왜 그토록 정교해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옛날 영화처럼 정지된 화면 속에서 에필로그 올라가듯이 마무리된다. 변명도, 군더더기도 없이 깔끔하게 멋있다.


이 책 이후, 용병들을 일컬을 때 the dogs of war 가 쓰이기 시작했다 한다. 기자 출신인 작가의 엄청난 조사와 상상이 더해져 논픽션에만 머무를 수도 있었던 생소한 영역이 픽션화에 성공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70년대와 80년대의 첩보스릴러가 생각나는데, 그 영화들의 원작이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책들이기 때문이다. 1973년작 자칼의 날과 1987년작 네 번째 의정서.


전쟁터의 개들은 네 번째 의정서와 더 비슷한 느낌인데 아마도 젊디 젊은 피어스 브로스넌의 냉혹한 이미지가 이 책의 주인공인 캐트를 떠올리게 해서 인 것 같다.

그래서 네 번째 의정서 -국내 번역 제목은 제4의 핵- 도 읽었다. 책은 책대로 재미있었지만 영화가 조금 더 긴장감 있다. 관료들의 영역 싸움과 밥그릇 싸움은 어디 가나 마찬가지구나 + 냉전이 없었다면 20세기 소설가들은 어쨌을까 싶은 가소로운 생각을 해봤다.


* 프레데릭 포사이스는 서방국의 제일선에 있던 영국에서 1930년대 태어난 BBC 기자 출신으로, 생전에 그는 첩보소설들로 7천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며 세계적으로 성공했다. 제일 유명한 책은 자칼의 날이다.


*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페이지를 넘겨가며 20세기와 아프리카, 제국주의와 서방국, 겪어보지 않은 시대의 복잡함을 잠깐 떠올렸던 것 같다. 겪지 않은 일에 대해 함부로 생각하기도 얘기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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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현재, 전쟁터의 개들은 한국어 번역본이 없다. 다행히도 집에 70년대 세로판 책이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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