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의 끈이론 아님. 줄에 매달린 외로움의 이론임. 당신 상상의 그 줄
일반적인 책보다 약간 작고 얄팍한 초록색의 제본 안에 테니스를 빌어 고백한 작가의 외로움이 담겨 있다.
책의 제목인 끈이론 The String Theory는 이 책의 3번째 이야기인 « 선택, 자유, 제약, 기쁨, 기괴함, 인간적 완벽함에 대한 어떤 본보기로서 테니스 선수 마이클 조이스의 전문가적 기예 »의 원제목으로 해당 원고는 1996년 미국 에스콰이어에 실렸다.
이 책은 테니스와 테니스 선수, 테니스를 둘러싼 산업에 대한 저자의 불친절한 에세이 모음으로, 불친절한 이유는, 한국어로 옮긴 분도 마지막에 썼지만, 복잡한 묘사로 이루어진 한 문장이 엄청 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프루스트는 한 페이지 전체를 한 문장으로 구성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그와 비슷하다. 또한 영문학 교수라서 그런지 비유의 수준이 높다.
책은 저자가 각기 다른 곳에 기고했던 5개의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꽤 실력 있던 주니어 테니스 선수였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교수이자 작가가 되어 주니어 시절의 열정을 글로까지 이어왔다.
에세이 전부가 흥미롭고 재밌지만 그중에서도 이 책의 제목인 마이클 조이스에 대한 글과 요즘 신나게 여행 다니는 2006년 로저 페더러에 대한 글은 여전히 불친절하지만, 감히 평을 하자면,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고 멋진 글들이며, 테니스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충분히 상상을 해 볼 수 있게 아름답고 생생하며 솔직하고, 글을 읽은 것만으로 그들의 팬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길어서 그렇지. 그리고 특이하게도 각주에 본인의 생각을 담아 본문보다 더 길게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들이 또 재밌다.
오랜 시간 우울증과 자살충동을 겪었던 저자는 2008년, 45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이 책의 마지막 에세이인 페더러에 대한 글에서 몸과 화해한다는 것에 대해 그의 생각을, 마찬가지로, 각주에 길게 풀어놨는데, 그가 위트와 비유와 더 나아가 비꼬는 것으로 숨겨놓았던 우울함을 끝까지 숨길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안타깝다.
토네이도는, 센트럴일리노이의 우리 지역에서는 평행선이 만나 소용돌이치다 터지는 무차원의 점이었다. 말이 되지 않았다. 집들은 외파되지 않고 내파되었다. 사창가는 무사한데 옆 건물의 고아원이 직격탄을 맞았다. 소들이 죽었는데 5킬로미터 떨어진 녀석들의 건초 창고는 흠집 하나 없었다. 토네이도는 전능하며 어떤 법칙도 따르지 않는다. 법칙이 없는 힘은 아무런 형태도 없다. 경향과 지속만 있을 뿐. 어릴 적에는 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하면서도 알았던 것 같다.
사창가는 무사했지만 고아원은 부서졌고, 소들은 죽었지만 축사는 무사했다는 사실이 주는 의미를 알지 못하면서도 알았던 것 같다는 작가의 얘기. 과거의 기억에서 너무 빨리 깨달음을 얻으면 삶이 불행해진다. 천천히 깨달아도 괜찮음을 나도 이제야 이해해가고 있다.
천재는 재현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감은 전염되며 형태가 다양하다. 힘과 공격성이 아름다움 앞에서 맥을 못 추는 광경을 가까이서 보기만 해도 영감과 (찰나의 필멸자적인)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그냥 에세이스트 또는 그냥 영문학 교수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일면 삐딱함을 첨가한 긴 문장 속에 그는 일찍 깨달아버려 불행했던 철학의 비밀들을 겹겹이 숨겨놓았던 것 같다. 그가 살아있지 않기에 정말 그랬는지 물을 수가 없으니 증명할 수 없다.
* 테니스 선수들에 대한 저자의 호불호 - 안드레 애거시에 대한 일관된 평가는 솔직하며 웃기다. 그리고 그 외 두어 명의 테니스 스타들에 대한 묘사도. 샘프러스에 대해서 "민주주의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지친 모습"이라 묘사했다. 작가는 그런 사람이다.
* 테니스는 잘 모르지만(스포츠 영역을 잘 모르지만), 테니스 영화는 또 잘 챙겨봤다. 2017년에 빌리진 킹과 보리&매켄로가 개봉했다. 배우만 보고 영화의 내용을 함부로 예단하는 경향이 있어서 나는 당연히 두 영화 모두 코미디일 것이라 생각했다. 웃겨버려를 기대하고 영화관까지 갔는데 무거웠다. 너무 무거워서 길게 가져가고 싶지 않았던 여운이 오래 남았다. 데이빗 포스터 월리스가 묘사한 대로 테니스는 외로운 스포츠였다.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