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대학생이 되었을 때, 대학생다운 교양을 쌓겠다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을 목표로 삼았다. 몇 편의 단편 소설들로 구성된 두껍지 않은 책으로 시작했는데, 그 첫 번째가 “깊이에의 강요”라는 단편이었다.
한 젊은 화가가 자기 작품에 대해 “깊이가 없다”라고 평한 평론가의 글을 보고 나한텐 깊이가 없어 깊이가 없어하다가 자살한다는 내용의 짧은 단편이다.
교양 있는 대학생활의 시작을 꿈꿨던 대학 신입생은 그 단편을 마지막으로 책을 덮었고, 아직까지도 쥐스킨트의 소설은 보지 못하고 있는데 아마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 같다. 향수도 대여섯 번 빌렸다가 매번 표지 한 번 넘기지 못하고 반납했었다.
한결같은 교양에 대한 집착으로 여기저기서 예술 관련 포스팅을 즐겨 본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도 자주 피드로 올라온다. 며칠 전에는 짙은 주황색 면과 짙은 파란색 면으로 구성된 그의 그림이 피드로 올라왔다.
그 그림을 보다가 깊이에의 강요가 생각났다. 나에겐 깊이가 없어- Untilted라는 ”제목”을 걸고 몇 가지 테마의 색으로 우울과 슬픔과 탄식의 관념을 형상화한 화가는 1970년 자살했다.
- 나는 예술 작품을 보며 공감하는 능력이 한참 모자라다. 그럼에도 마크 로스코의 그림에는… 원치 않아도 우울과 슬픔과 탄식을 느낄 수 있다. 그게 그가 말하고자 한 예술이라면-
+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내 외모를 알 길이 없겠지만) 인간미 없는 외모와 달리 같이 얘기하면 굉장히 웃기는 사람인데 글에는 그 부분이 드러나지 않아서……노력이 필요하다.
+ 나에겐 무엇이 있나. 나에겐 산만함이 있다.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산만함
Mark Rothko, No14 - source: Mark Rothko 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