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모든 것은 파괴되며 변화한다

by 마나스타나스

서양에는 모노폴리가 있고 한국에는 부루마불이 있다. 게임규칙은 단순하다.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숫자만큼 이동시킨 말이 멈춘 네모난 칸(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통행료를 받는다. 비싼 땅일수록 높은 통행료를 받을 수 있어서 상대방을 더 빨리 파산시킬 수 있다- 그러면 이긴다. 어렸을 때 형제들과 재밌게 했다. 동생은 자주 파산해서 게임판을 뒤집기도 했고 매번 울고 불고 했던 기억이다.


모노폴리, 부루마블은 그런 게임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부숴버리는 게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산업화 덕에 새로운 자본 구조의 기틀을 가지게 된 서구는 돈을 더 쓰기 위해, 돈을 더 벌기 위해 아시아로 아프리카로 식민지 개발에 나선다.

여긴 너의 것, 저긴 나의 것 - 1884년과 1885년에 걸쳐 이뤄진 베를린 회담에서 서구 열강들은 실효 지배를 조건으로 아프리카를 나눠가진다. 주사위보다 더 간단한 가위바위보 수준의 나눠 먹기. 여긴 니 땅, 저긴 내 땅.


유럽 열강,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프리카에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던 시절, 나이지리아 가상의 마을, 우무오피아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배경이다.


오콩코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개인적인 슬픔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부서지고 산산이 조각나는 부족의 처지를 한탄했고, 우무오피아의 도전적인 남자들이 여자처럼 그렇게 영문을 알 수 없이 유약해져 버린 것을 애도했다.

자수성가하다시피 일가를 이룬 오콩코는 한 번의 실수로 7년의 유배를 가고, 다시 돌아온 고향은 어딘가 변했다. 변해간다. 변할 것이다.


사실 부서진 것은 오콩코의 삶이 아니다. 7년의 유배를 가기 전부터 오콩코 그 자신이 부서지고 있었다. 그가 그로 존재하기 위해 소년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을 때, 그리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을 때, 그 순간부터 그의 내부는 금이 가고 부서지고 있었다.


나이지리아의 이보족 출신 작가는 서구화된 나이지리아의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나중에는 하버드 대학의 명예교수가 되었다. 그는 영어로 소설을 썼다. 그중 하나가 산산이 부서지다이며, 제목은 예이츠의 재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싶은 짧은 문장들 안에 재미라 말하기도, 감동이라 말하기도 뭣한 어떤 것이 아프리카 깊은 곳, 끝도 없는 흙색 평원에 드문드문 선명한 초록색처럼 굵고 강한 흔적을 남긴다.


계몽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던 20세기 초 우무오피아의 오콩코와 그 가족의 일상의 변화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한 것은 서구의 침략으로 인해 지켜왔던 것을 희생해야만 했던 아프리카인의 슬픔이나 절망이 아니다.


그 지름을 알 수 없는 하나의 길고 투명한 터널에 누군가의 삶을 비유하자면, 예상치 못한 터널 밖의 압력에 의해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터널의 내부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날숨이 누적되어 있다. 그리고 어느 한 시점, 누적된 날숨에 불이 붙고 터널은 폭발하여 그 삶의 주인은 산산이 부서져버린, 어느 한 사람의 깨어져버린 꿈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이 소설이다.


날이 새자마자, 에제우두 집에서 나온 많은 남자들이 전쟁 복장을 하고 오콩코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오콩코의 집에 불을 지르고, 담을 허물고, 가축을 죽이고, 곳간을 부쉈다. 그것이 대지의 여신의 정의였으며, 자신들은 단지 여신의 전령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은 오콩코에 대해 어떤 적대감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콩코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오비에리카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오콩코가 부족의 피로 오염시킨 땅을 단지 정화하는 것이었다.

오비에리카는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여신의 뜻이 이루어진 다음, 그는 자신의 오비에 앉아 친구의 불행을 슬퍼했다. 왜 본의 아니게 저지른 잘못으로 이렇게 심한 고생을 해야 하는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은 없었다. 생각이 더욱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는 내다 버린 자신의 쌍둥이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대지의 여신이 쌍둥이는 대지에 대한 모독이므로 없어져야 한다고 명했었다. 그리고 만약 자신들이 위대한 여신을 거역하는 것에 대해 엄정한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여신의 저주가 명을 어긴 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온 땅에 퍼져 나간다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은 손가락 하나에 기름이 묻으면 네 손가락으로 번진다고 말하곤 했다.

서구식으로 계몽되고 문명화된 우리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질적인 아프리카 일부 부족의 문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소수 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 기독교식 문화를 배우고 영어로 소설을 써서 그의 조국을 세상에 알린 저자는 그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프리카를 알리기 위해 스스로 서구식 계몽을 택하면서도 여전히 그의 부족의 문화와 전통은 지켜내야만 한다, 아니면 오래된 것은 산산이 부서트리고 새로움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 아프리카 일부 부족의 문화에서는 쌍둥이는 불길한 존재였으므로 태어나자마자 묻어야만 했다.


우리말조차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알겠나. 그런데도 백인은 우리 관습이 나쁘다고 말하네. 게다가 백인의 종교를 받아들인 우리 형제들마저 우리의 관습이 나쁘다고 말한다네. 우리 형제들이 우리에게 등을 돌렸는데 어떻게 우리가 싸울 수 있겠는가? 백인은 대단히 영리하네. 종교를 가지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들어왔네. 우리는 그의 바보짓을 즐기면서 여기에 머물도록 했네. 이제 그가 우리 형제들을 손에 넣었고, 우리 부족은 더 이상 하나로 뭉쳐 행동하지 않네. 그가 우리를 함께 묶어 두었던 것들에 칼을 꽂으니 우리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네.

우리를 함께 묶어놓았던 집단의 문화와 신념이 칼 한 번에 산산이 부서진다면, 그 문화와 신념의 근원은 지켜내야만 했던 것이 맞을까.


결국 집단이 아닌 개인에 대한 이야기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개인의 의지와 신념은 변한다. 모든 것은 파괴되고 부서지며 새로 태어나고 앞으로 나아간다.


+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밤하늘과 건조하지만 삭막하지 않은 평지대에서 지속된, 그 자체로 순진하고 순수해서 서구의 계몽된 문명의 눈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아프리카의 문화는 여전히 이질적이지만 사람 사이의 이야기는 다를 바가 없다.


+ 진짜 아프리카 사람이 쓴 소설은 처음인데 굉장히 재밌게 봤다.


+ 저자가 제목으로 빌려온 예이츠의 재림 중 일부

Turning and turning in the widening gyre
The falcon cannot hear the falconer;
Things fall apart; the centre cannot hold;
Mere anarchy is loosed upon the world,
The blood-dimmed tide is loosed, and everywhere
The ceremony of innocence is drowned;
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


퍼져가는 나선 안에서 돌고 돌기만 하는 매는

매 부리는 이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중심은 힘을 잃고

한낱 무질서만이 세상에 풀려난다.

피로 흐려진 조수는 모든 곳으로 풀려나고

순수한 의식은 물에 잠긴다.

가장 선한 이들은 신념을 잃었고

가장 악한 이들은 열정적인 강렬함으로 가득하다.


+ 우리 모두는 블레이드 러너다. 알 수 없는 경계 위를 계속해서 달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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