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은 책들 감상기
무엇이든 읽고 보고 나면 글로 남겨 놔야만 할 것 같은데 남길 수 없을 때가 있다.
남길 수 없었던 것들을 모아서 남긴다.
사랑하는 습관 - 도리스 레싱
1950년대와 60년대를 배경으로 도리스 레싱이 쓴 단편 모음집이다.
그녀의 소설은 평범하다. 특별히 반짝이지도 않고, 대단한 기교가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옆 집 사람과 오며 가며 얘기하듯, 잘 가는 동네 커피집주인과 소소히 얘기하듯 하다. 기억과 추억 속, 일상의 단면들이 웃길락 하다가도 씁쓸하다. 평범하다는 것은 실은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전쟁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전쟁을 견뎌낼 뿐이었다. 서서히 로즈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단어와 표어를 입에 담게 되었다. 그래봤자 그냥 입으로만 떠드는 것에 불과하다는 슬픈 사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알고 있었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규모가 너무 크고 무시무시해서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만 있다면 아주 굉장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 계속 직장에 다니면서 최선을 다해 사는 편이 나았다. 무서워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계속 우체국에 돈을 저금해야 했다. (다른 여자)
로즈는 그냥 열심히 산 것 밖에 없다. 그런 로즈에게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나 무겁다.
그 무거운 일들이 전쟁 중에 누구에게나 벌어지는 일상이었다.
로즈는 그 무거운 일들을 그녀의 속도로 헤쳐나간다. 모두는 나름의 속도로 그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설정된 일상을 살아낸다.
활자잔혹극 - 루스 렌들
영국인들이란.....
사실, 읽기 전에는 애거서 크리스티스러움을 기대했다.
원제는 A judgement in stone이다. 한국어로 해석이 분분하다. 이 소설의 평을 남긴 장정일은 돌처럼 무정한 마음이라고 해석했다.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책을 보고 평을 남긴 많은 분들이 한 번씩은 언급하는, 소설의 시작. 첫 문장이 스포일러이며, 이 소설의 시작이요 끝이다.
돌처럼 차가운 사람, 유니스 파치먼은 사이코패스다.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그녀의 행적을 글로 따라가다 보면 놀랍도록 빠르게 돌아가는 뇌를 가진 그녀가 왜 문맹인지 놀랍도록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맹 때문에 누군가를 죽였다- 평범하고 진부한 이유들이 주섬거리며 떠오른다. 나도 그런 방식으로 스포일러인 첫 문장에서 그 이유를 상상해보려 했다- 하지만 유니스 파치먼은 평범하지 않고 진부하지 않은 이유로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그래서 나는 A judgement in stone은 단어 그대로 "돌에 대한 판단" 또는 "돌에 대한 심판"이라 해석한다. 유니스 파치먼이 살인을 해야만 했던 이유와 배경에 대해 작가가 독자들에게 맡긴 "판단", 그리고 살인을 함으로써 그녀에게 내려진 "심판".
+ 책 말미에 장정일의 서평이 있다. 아 이래서 장정일이구나!
피렌체 서점 이야기 - 로스 킹
기억에 남는 책이다. 원제는 The bookseller of Florence. 피렌체의 서적 판매상 이야기
"학문과 독서는 옛날 옛적에 가장 사치스러운 취미이자 생활이었다. 필사본을 만드는 과정을 읽으면 왜 그 시절에 책이 그토록 비쌌는지 알 수 있다. 때문에 인쇄술은 인류 지식의 역사를 평등케 한 어마어마한 혁명이었다.
한편으로는 단지 비싼 취미로만이 아니라 지식을 찾아내고 지켜내겠다는 (그리고 돈을 벌겠다는) 누군가들의 열정이 없었다면 그 모든 지혜와 지식은 오늘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많은 필사본이 전쟁 중에 불타버렸다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인류는 발전하기도 하지만 후퇴하기도 한다. 전쟁이 그 증거다.
피렌체 서적상의 이야기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고 이탈리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 피렌체는 글 안에마저도, 온통 피로 얼룩진 순간에도 아름다운 곳이구나 생각했다. " - 1월에 남긴 내용
+ 피렌체가 그 옛날부터 그토록 찬사를 받은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피렌체는 아름다운 도시다.
+ 피렌체의 프라 안젤리코와 그의 그림들을 좋아한다.
요즘 브랜드- 박찬용
저자의 글을 꽤 많이 봤다. 제일 좋았던 기사는 감자칩을 비교한 글이었다. 왜냐면 그 기사에서 첫 번째로 언급된 감자칩, Lays의 소금식초맛 감자칩을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 홀린 듯이 글을 읽었던 것 같다.
저자는 남들이 안 가는 길로 굳이 돌아들어가서 찾아내고야 만 어떤 것들을 한 꺼풀씩 벗겨내어 글로 만들어낸다. 그는 탁월하다.
요즘 브랜드는 2017년의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맥락과 의의가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다.
베트멍은 로고와 소매 길이로 장난을 치며 패션 시장의 소비자들에게 끝없이 질문한다. 이것도 하이패션인가? 당신은 이것까지 예뻐 보이나? 그래서 이것까지 살 것인가? 베트멍이 하는 일은 아름다움과 패션 비즈니스라는 개념에 대한 공학적 한계실험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혁명을 팝니다-라는 책이 있다. 이것도 거의 20년 전 책인데 매우 좋아하는 책이다. 저자들은 기본적으로 삐딱하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은 그들의 주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저자들이 전하고 싶었던 것이 위의 문장에도 보였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이걸 사겠다고?"
커트 코베인은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좋아해 줄수록 더 과감한 음악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더 파괴적인 음악으로 그를 몰아갔고 그 결말은 구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04년 혁명을 팝니다 The rebel sell은 2017년 The sum of small things 야망계급론으로 이어진다.
다시 요즘 브랜드로 돌아가면…
뎀나 즈바살리아의 룩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자본주의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1990년대까지 척박한 무채색의 동구권에 살다가 갑자기 벌에 쏘이듯 자본주의의 총천연색에 노출됐다. 그에게 자본주의란 <032c>와의 인터뷰에서 하나씩 언급한 환타, 코카콜라, <보그>였다. 동구권 소년의 눈에 비친 새로운 세계는 아주 채도가 높은 브랜드 컬러 아니었을까. 다국적 거대 기업이 운영하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눈에 확 띄는 그 색깔 말이다. 그렇게 치면 뎀나가 왜 UPS가 아닌 DHL을 골랐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눈에 띄니까.
이 책을 통틀어... 자본주의에 있어서 브랜드의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난 문장이라 생각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에필로그 형식의 글을 덧붙였는데 좋은 내용이다. 진짜.
혼자 알고 싶은 글들이지만 저자가 유명해지면 또 좋은 일이니까 읽고 남긴다.
+ 책의 중간중간 손으로 그린 그림이 나온다. 저자가 그린 그림이라 생각하는데......
유기농 감자칩은 왜 만드는 걸까. 감자칩의 본질은 몸에 나쁜 맛이다. 몸에 안 좋은 걸 알지만 그 중독적인 맛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몸에 나쁜 유기농- 마케팅 포인트로 정말 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