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략과 함축, 그 사이에 존재했던 한 사람의 뚜렷한 자취
한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단 한 권의 책으로 압축했다. 이 밤과 서쪽으로는 그런 책이다. 멋있는 사람이 쓴 멋있는 책이다. 멋진 책 말고 멋있는 책.
나는 베릴 마크햄이 여성 해방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조차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더할 나위 없이 여성스러운 그녀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열일곱 살이었던 1919년, 자기가 가진 전부를 안장 가방 두 개에 챙겨 넣고 홀로 길을 떠났다. 자기가 할 줄 아는 유일한 방법으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녀에게는 돌아갈 집도 가족도 없었다.
《이 밤과 서쪽으로》는 용감한 삶이 당연한 것이었던 한 인물의 기록이다. 감동적일 정도로 용감한 이 열일곱 살 소녀는 다가올 미래를 위해 몸소 솔선수범했던 것이다.
미국의 종군기자 출신 마사 겔혼이 이 책, 이 밤과 서쪽으로의 서문에 남긴 내용 중 일부이다. 베릴 마크햄의 글만큼이나 멋있는 마사 겔혼의 서문에는 베릴 마크햄이란 인물의 일생이 뚜렷하게 함축되어 살아있다. 멋있는 사람이 멋있는 사람에 대해 남긴 글은 감동적이다.
마사 겔혼은 베릴 마크햄의 이야기 봉우리 사이사이 감춰진 계곡에 깊은 그림자가 고여 있다고 했으며, 옮긴이는 “이 책 전체가 함축적인 암시로 이뤄져 있다”라고 했다.
그들이 무엇을 얘기한 것인지는 책을 읽으면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스스로의 일생을 단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한 베릴 마크햄은 그녀 일생의 많은 부분을 “생략"하여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변명하지 않는다. 그 일들이 그의 선택이었든 선택이 아니었든, 그건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선택 또한 일어난 일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후회가 되었는지 -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일어난 일을 그냥 일어난 일일 뿐 변명도 후회도 남기지 않았다.
나무위키가 얘기하는 “생략”의 정의는 맥락상 굳이 필요 없는 내용의 서술을 건너뛰는 것
저자에게도 가족이 있다. 그의 글에서 흔적을 찾기 어려운 엄마와 형제와 남편과 아이. 베릴 마크햄이 한 권의 책에 담은 그녀의 일생이 함축이 아닌 생략이라 생각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버지와 친구들과 동물들 - 그녀의 이야기는 아프리카에서의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책에서 생략된 어떤 이유로 세 살의 베릴 마크햄만 데리고 아프리카로 떠나온다. 케냐의 은조로 농장에서 아버지와 원주민들과 함께 살던 그녀는 열일곱 살에 농장과 아버지를 떠나, 그리고 그녀의 개 불러를 마음에 묻고 그가 택한 삶으로 걸어간다.
몰로로 가는 길은 북쪽으로 뻗어 있었다. 밤이면 별까지 곧장 이어지는 길인 듯했다. 마우 단애 측면으로 난 길이 3,000미터가량 이어지다 고원에서 쉬어 가면, 고원 가장자리 저 너머에서 별들이 타는 듯 빛났다. 아침이면 태양은 고원 아래 떠 있었다. 태양조차도 몰로로 가는 길을 기어올라야 했다. 나는 가진 것 전부를 지니고 그 길을 올라갔다.
내게는 안장 가방 두 개와 페가수스가 있었다. 안장 가방에는 말 덮개와 솔, 대장장이용 칼, 잘게 부순 귀리 3킬로그램, 아프리카말병*에 대비한 온도계 하나가 들어 있었다. 내 물건으로는 파자마, 바지, 셔츠 한 벌, 칫솔, 그리고 빗이 들어 있었다. 이보다 적게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이상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았다.
베릴 마크햄은 대서양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한 최초의 여성 조종사이다. 조종사가 된 계기에 대해서 그녀는 수수하게 썼다. 수수란 단어 또한 많은 부분을 생략하는 단어이다. 이것을 덜고, 저것을 덜고, 그마저도 덜고 나면 남는 한 가지를 수수라고 부를 수 있다. 베릴 마크햄은 그런 사람이다.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자문할 수도 있었다. “왜 위험한 짓을 사서 하지?” 하지만 이렇게 답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타고난 걸 어떻게 해.” 선원으로 타고난 사람은 항해를 해야 하고, 조종사로 태어난 사람은 비행해야만 한다. 나는 그때까지 40만 킬로미터 가량을 비행했다. 하지만 내게 비행기가 있고 하늘이 저기 있는 한 더 많은 거리를 비행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딱히 특별할 것은 없다. 나는 조종법을 배웠고, 학습에 매진했다. 내 손은 비행기 조종간을 쥐는 법을 배웠다. 여러 번 반복하면서 저절로 알게 됐다. 인간이 하는 어떤 행위도 그것이 일이라 불리게 되기 전까지는 위엄을 지니지 못하는 법. 자신이 다루는 도구를 통해 신체적인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게 돼야만 비로소 다른 것이 보이게 된다. 한낱 실험, 부적절한 소명의식, 내내 붙들려 있던 허영심 등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다.
그녀는 조종법을 배웠고,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날았다. 그 이상의 의미도, 그 이하의 의미도 불필요하다는 그녀의 말. 이 말은 책상에 앉아서 21세기 문명의 도구를 이용하여 가상의 공간에 무언가를 입력하고 있는 나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고 있다며, 나 스스로에게 특별한 의미(사실은 변명)를 계속 부여하는 나의 한계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약간 냉소주의자 기질이 있었던 사람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그저 살아갈 뿐,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배운 것들이 있다.
나는 살고 사랑했으며 모든 지난날을 깊숙이 묻어둔 곳을 반드시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 최대한 미적거리지 말고 가능한 빨리 떠나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절대로 돌아보지 말고 기억에 남은 시간들이 더 행복했다고 생각하지 말 것. 그 시간은 이미 죽었으니까. 지나간 세월은 이미 정복돼 안전하게 보인다. 반면 미래는 만만찮게 보이는 구름 속에 살아있다. 미래로 걸어 들어가면 구름은 걷힌다. 나는 이 사실을 배웠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뒤늦게야 배우게 됐다.
인간은 망각이란 좋은 도구가 있는 것 자체를 망각하여 이미 지나와서 돌이킬 수 없는 뒤를 돌아보고 후회하고 그리워하며, 눈앞에 있는 것이 분명한 더 나은 날을 포기한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모두가 잊어버리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두가 베릴 마크햄처럼 살 수는 없다.
갈보집주인은 헤식은 어깨를 벽에 대고 서서 모이를 쪼는 새처럼 고개를 까닥거렸다. 여자는 자주색 넝마를 걸치고 있었고, 그 모양새는 그녀가 무엇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지를 낱낱이 드러내줬다. 하지만 쉽게 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에게 앞치마를 입히고 얼굴에서 가면 같은 페인트를 걷어내면 고역에 처해진 모든 여인네의 외로움과 비참과 절망을 그려내려는 어떤 화가에게 적당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재봉사나 농장 일꾼의 아내, 청소부, 순결함과는 거리가 먼 술집 여급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 그녀는 다른 무엇이든 될 수 있었을 텐데 하고많은 일 중에서 하필이면 왜 이 일을 하게 됐을까?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라고 생각되는 이유로 갈보집에 팔려올 수밖에 없었던 어린 소녀는 그 삶에 익숙해져 버렸다. 한 발 앞만 디디면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선택지를 박탈당한 어린 소녀 - 갈보집의 주인 여자를 보며 저자는 생각은 남겼지만 감정은 생략했다. 그 생략된 감정 안에서 희미해진 어린 소녀의 잔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주 많이 마음이 아팠다.
텐트 앞에서 모닥불이 타오르는 밤이면 신께 많은 걸 바랄 수 있다. 진홍색 베일 너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신이 태초에 만든 세상의 그림자가 보이고 신이 그곳에 놓아둔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시간처럼 오래된 세계이지만 창조가 끝난 직후처럼 새롭다.
어떤 의미에서 이 세상은 형체가 없다. 낮게 걸린 별들이 빛나고 달이 은빛 안개를 휘감았을 때, 이 세상은 물이 모두 사라지고 다섯 번째 날의 밤이 여전히 제 존재가 신기하기만 해 당혹스러운 피조물들 위로 내렸을 때의 모습이 분명한 창공처럼 된다. 아무도 텅 빈 지평선에 자기 꾀의 덧없는 상징을 구체화하거나, 도로를 만들려고 땅을 파헤치거나, 집을 지으려고 나무를 쌓기 전의 텅 빈 세계인 것이다. 하지만 불모의 세계는 아니었다. 생명의 기원을 품고 기대에 부풀어 하늘 아래 누워 있는 세상이었다.
그럴 때는 자리에 앉아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혼자라는 기분이 든다. 한편 다른 이들도 혼자다. 어디에 있든, 밤이 내리고 이리저리 불어오는 바람에 불길이 제멋대로 타오르고 있다면 언제나 그렇다. 내가 하는 말은 내 귀에만 들리고, 내 생각은 나 자신에게만 닿는다. 세상은 저기에, 당신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양극만이 유일한 실재다.
텅 빈 듯 꽉 차 있으며, 수수하면서도 화려하고, 그래서 모든 것을 품은 것 같은 아름다운 글. 내 길은 북쪽으로의 챕터는 그 문장하나하나와 그 모든 내용이 훌륭하며 너무 좋다.
+ 이 책을 읽을 동안 내 한계를 명확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책들, 용감이란 단어로 그 일생을 표현하기에 부족한 어떤 인물들의 삶에 대한 내용에 더욱 홀린다.
+ 그녀가 살아있어서 직접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그녀가 생략한 삶의 부분들을 상상하고 추정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글로 남긴 흔적이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생략과 함축 안에서 더욱 생생히 드러나는 어떤 일생의 의미. 특별히 숨길 것도 특별히 드러낼 것도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