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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그릇

마츠모토 세이초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by 마나스타나스

"가메다는 지금도 여전하지요?"


마츠모토 세이초의 『모래그릇』은 1960년대 도쿄의 허름한 선술집에서 흘러나온 이 짧은 대화 한 마디로 시작된다.


이 소설의 구성은 단순하다.


우연히 포착된 기억과, 그 안에 스민 단서를 한 형사가 집요하게 쫓는다. 심리 묘사는 거의 없고, 이야기는 오직 인물들의 행동, 자취, 증거만으로 이뤄진다. 철저히 ‘사실’에 기반한 서사 방식이다.


배경은 패전 후 15년이 지난 일본.

전쟁 중 대공습으로 파괴되었다가 재건 중인 지방 도시들, 여전히 후줄근하고 답답한 오지들, 그리고 서구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부유한 젊은이들이 이끄는 세련된 문화의 도쿄가 교차한다. 이마니시 형사는 이 공간들을 오가며, 종종 끊어지기 일쑤인 증거의 흐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단서를 추적한다.


디지털 이전의 시대가 배경인 까닭에 모든 단서의 추적은 사람의 역량으로 이루어진다. GPS도,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인스타그램도 없다. 대신 형사는 발품을 판다. 사람의 기억, 감, 눈치, 끈기—모든 수사는 사람의 역량으로만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것은, 과거를 지우고 새롭게 역사를 창조하려 한 누군가의 이야기다. 뜻밖의 장소에 남겨진 미세한 흔적이 과거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것이 결국 현재를 붙든다. 새로움은 결코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 소설의 초반부는 밋밋하다. 사실에 대한 묘사와 인물들 사이의 일상적이고 사무적인 대화만으로 이어지는 이 소설의 서사 방식은 서양의 추리소설에 익숙해져 있는, 특히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 길들여져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낯설었으나 훌륭한 책은 독자를 가리지 않는다.


- 이 책을 집어든 건 우연이었다. 한 달 전쯤, 영국의 한 편집자가 “이 책 너무 재밌는데 영화는 대체 언제?”라고 인스타에 올린 것을 봤다. 역시, 우연이 만들어낸 기억.


- 책을 읽으며 국과수와 CSI를 떠올렸다. 최첨단 장비들과 인력들. 그래서 범죄는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는가? 살인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가? 경찰은 수사를 더 잘할 수 있게 됐는가? 뭐 그런 생각들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수사란 뭘까 싶다.


-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쓸데없는 여운을 남기지 않는다 = 불필요한 해석 확장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 무심결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생각났다. 영화 개봉 당시 한 선배가 “야 너 이 영화가 얼마나 대단한 줄 알아? 음악이 없잖아!! 음악을 배경을 깔지도 않고 이야기로만 이끌어간 거라고!!” 라며 흥분하며 얘기했었다.

대단한 줄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난 그 영화를 꽤 재밌게 봤다. 어쩌면 주인공의 “집념”이란 점에서 공통점을 찾아서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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