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할 수 없는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by 마나스타나스

전라도 남쪽 해안가, 배로 5분 거리. 그곳에 작은 사슴들의 섬, 소록도가 있다.

이 섬은 한때 수천 명의 삶이 고립되어 있던, 천국 아닌 천국이었다. 이청준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소가 있던 이 섬을 배경으로, 이상과 현실, 자유와 사랑, 권력의 보편적 의미를 조백헌과 이상욱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한다.


결국, 인간이 꿈꾸는 천국의 모습은 완전할 수 없다 — 이청준의 이야기다.


<당신들의 천국>의 배경은 한반도 남쪽,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속해 있는 소록도다.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이 섬은 조선말까지 작은 어촌 마을이었으나, 20세기에 들어서며 한센병 환자들이 자연스레 모여들어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한센병은 나병이라 불리기도 했고, 한때는 ‘문둥병’이라 불렸다. 살이 썩고 무너진다는 뜻의 순우리말 ‘문드러지다’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나균 감염으로 생기는 만성 전염병으로, 병변은 분홍빛 꽃처럼 시작되지만 곧 흉측해지고, 심해지면 피부와 조직이 떨어져 나간다. 말기에는 신음인지 절규인지 모를 동물적인 소리만이 남는다.


구약성경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된 병, 그만큼 차별과 편견의 역사도 오래됐다.


<당신들의 천국>의 또 다른 배경은 바로 ‘천국’이다.

– 고통과 죽음이 없는 완전한 평화의 세계
– 이상향
–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
– 낙원이며 낙토, 영원한 행복이 있는 장소


‘천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소설 속 조백헌 원장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듯 이곳에 모여든 이들을 위해 천국을 만들어주고자 했다. 세상에 버림받고, 세상을 등진 사람들을 위한 낙토.

조백헌 원장이 만들고자 한 천국, 그가 실제로 만들어낸 천국에서 "탈출"한 이들은 소록도와 조백헌에게 있어 배신자였다.


조백헌은 소록도를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다. 축구단을 조직해 환자들이 외부의 정상인 팀과 경기를 치르게 하며 사기를 북돋았고, 간척 사업을 통해 자급자족이 가능한 천국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마치 에베레스트를 끝없이 오르려는 사람처럼, 자연을 정복하려 했다.

그래서 저 깊은 바닷속에 돌을 던져 넣었다. 열 길 물속 끝이 보이지 않는 그곳에, 그는 계속해서 돌을 쏟아부었다. 태풍이 몰아쳤고, 사람들은 죽어갔다. 그럼에도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천국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 것이었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기 때문이다.

조백헌에게 자연과 문둥병은 다르지 않았다. 그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극복하고자 했던 것, 사랑으로 깃들여 이겨내보고자 한 것. 그러나 자유가 스미지 않은 일방적 사랑.


그는 선임 원장들처럼 기념비로 남고자 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천국에 남으려 했던 것도 아니다.


이청준이 그려낸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들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비난받아 마땅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사람은 그렇게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이청준은 단순하지 않은 인간의 본성을 그의 인물들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조백헌의 의지에 보건과장 이상욱은 끊임없이 반기를 든다. 그렇다고 폭력을 휘두르거나 거친 언어를 내뱉지는 않는다. 한센병 환자의 자녀이자 ‘정상인’으로 자라난 미감아 출신인 그는, 소록도를 탈출한 뒤 조백헌에게 두 차례 긴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들에는 왜 조백헌의 천국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에 대한 고백과 논리가 담겨 있다.


기념비로 남고자 하지 않았던 조백헌에게, 소록도의 낙원은 결국 ‘당신들의 천국’이었다는 사실을 이상욱은 알고 있었다. 조백헌이 우상이 되기를 거부하면 할수록, 이는 오히려 또 다른 속박이 되어, 사람들 마음속에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낼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소록도라는 낙원은, 한센병 환자들에게 천국이자 동시에 감옥으로 남을 것임을 이상욱은 알았다.


<당신들의 천국>은 기독교적 색채가 짙다. 이는 소록도라는 특수한 환경이 종교의 지원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천주교 신자였던 이청준의 종교적 배경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언급되는 ‘신’은 특정 종교의 교리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청준은 신의 존재 자체, 그리고 그 이중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록도 사람들과 조백헌—모두 신의 이름 아래 보호받기를 원하고,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기를 바란다. 사랑이 깃들지 않은 자유를 추구한 소록도 사람들과, 자유가 스미지 않은 사랑을 베풀려 한 조백헌에게, 신이 보장하는 사랑과 자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소록도 사람들의 주님은, 무리한 간척 공사를 밀어붙여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조백헌이, 자신의 목숨으로 그 죄를 갚아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조백헌의 신은, 사람이 죽어나가더라도 반드시 천국을 이루어야 한다 했다.


테렌스 맬릭의 <Thin Red Line>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의 의지는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상욱은 알고 있었다. 원장이 그처럼 감탄해 마지않는 섬의 조경은 실상 섬 자체의 경관이 아니었다. 조경에 관한 한 아름다운 것은 섬이 아니라, 섬 바깥쪽이었다. 섬에서는 그것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었다. 화가가 전해준 소녀의 이야기도 섬 안에 남아 있을 때는 아름다울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화가와 함께 섬을 떠나 섬 밖에서 비로소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고 있다. 좀 더 분명한 섬의 모습을 그에게 보게 해주고 싶었다. 사람들을 찾아 이야기를 듣는 거나, 부하 직원들로부터 사무적인 보고 따위를 듣고 앉아 있는 것보다 그 자신이 직접 섬을 돌아보고 그것을 느끼도록 해주고 싶었다.

소설 초반에 묘사된 이상욱의 시선은, <당신들의 천국> 전체를 아우른다. 천국을 느끼고 싶었던 사람, 그래서 천국을 만들어주고자 했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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