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남기자니 어렵고 안 남기자니 아쉽고 2

요즘 읽은 책들 감상기

by 마나스타나스

이것저것 많이 읽었다. 글자만 따라가다가 내용이 머리에 안 들어오기도 했다. 벌어진 일들과 벌려놓은 일들은 수습이 되지도 않고, 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 이런 상태로 읽은 책들에 대한 나름의 기록이다. 이 모든 게 추억이지? 뭐.


디자인의 디자인 - 하라 켄야

6월을 시작하며 오랜만에 교보문고에 다녀왔다. 읽을 책을 사러 간 건 아니었고, 다른 물건을 사러 간 길이었다. 그러다 문득, 하라 켄야의 『저공비행』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SNS에서 자주 눈에 띄었던 터라 무심코 집어 들고,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니 『디자인의 디자인』이 나왔다. 서가에서 그 책을 꺼냈고, 그 옆에 나란히 놓여 있던 『넨도 디자인 이야기』도 같이 집었다.


『디자인의 디자인』은 하라 켄야 본인이 직접 참여한 프로젝트들을 중심으로, 디자인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하는지를 사유하는, 일종의 디자인 철학서에 가깝다. 그래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하라 켄야가 이 책을 쓴 건 벌써 22년 전, 2003년이다.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편리함이 공존하던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본격적으로 극복해 나가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즈음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방향성도 분명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디자인에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디자인’이나 ‘디자이너’라고 하면 대부분 패션 디자인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인식되는 범위는 꽤 제한적이었다.


디자인의 제한성이라는 면에서 같은 맥락일지 모르겠지만, 하라 켄야는 이 책에서 2003년 당시 일본 디자이너들이 지향해야 할 바를 진지하게 탐색한다. 국가적 방향성과 맞물려 있는 일본의 디자인은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가—이 질문을 중심에 놓고 있다.

'디자인'은 일본 사회 속에서는 왠지 표층적인 서비스로 그치기 쉽기 때문에 항상 그에 상응하는 기능과 위상을 주장해나가지 않으면 그 힘을 발휘할 곳을 얻지 못한 채 제대로 기능을 못하게 된다. 또 사회에서 디자인의 역할이나 위상을 그대로 방치해 두면 기능의 반복으로 일정한 장소에 뿌리를 내려 꼼짝달싹 못 하게 된다. 디자인은 지능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는 감성과 통찰력이다. 따라서 디자이너의 의식은 사회에 대해서 항상 민감하게 각성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시대의 변화와 함께 디자인의 영역을 뒤흔들어 디자인을 세상의 적정한 장소에 재배치해나갈 필요가 있다.


하라 켄야는 이 책에서 무인양품에 대해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나 역시 무인양품을 좋아하는지라, 저자가 지향했던 무인양품의 목표와 성취,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낸 이야기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생략'이 아닌 '궁극의 디자인', 즉 사물의 본질만을 구현하려면 오히려 높은 수준의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담겨 있다. 그것이 무인양품이 나아가는 방향이라는 점을 하라 켄야는 지적한다.


이후 『저공비행』과 『넨도 디자인 이야기』도 함께 읽었다. 하루 공들여 읽기 좋은 분량의 책들이라,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아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지금,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브랜드화가 극단적으로 이뤄진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 역시 시대의 가치를 좇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 그 자체는 이해할 수 있지만, 안타까운 점은 그로 인해 디자이너의 주관이 사라지고, 디자인의 개성이 흐려진다는 것이다. 이어서 읽은 두 권의 책은 그런 인상을 남겼다.


넨도의 사토 오키는 대단한 사람이다. 뛰어난 디자이너임에 틀림없다. 디자인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산업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룬 성과들은 ‘이룩했다’고 표현할 만하다. 하지만 그것을 활자로 풀어내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디자인 철학을 활자화하는 과정은 세심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느끼함이 남고, 그저 그런 디자인 관련 책으로 머릿속에서 빠르게 잊히게 된다. 『넨도 디자인 이야기』는 그런 느낌이었다.


『저공비행』도 비슷한 인상을 주었다. 『디자인의 디자인』에서 느낀 감흥이 너무 강했던 점도 있다.『저공비행』 속 하라 켄야의 주장이 오히려 희미해진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일본적인 것, 공간으로서의 일본성, 세계 속 일본 디자인의 방향성—그가 말하고자 한 바는 뚜렷했지만, 그 뚜렷함에 무게가 실리지 않아 인상이 흐릿해졌다.


물론, 이건 나만의 감상이다. 두 권 모두 디자인을 전공하는 사람, 디자인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 혹은 관심이 없는 이들조차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누군가가 이뤄낸 것에 대해, 그 당사자의 목소리로 듣는 것만큼 귀중한 경험도 드물기 때문이다.


해저 2만 리 - 쥘 베른

정말 재밌다. 길게 쓸 필요도 없이 정말 재밌다는 말로도 충분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이 책으로 독후감을 써서 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다. 분명 이 책을 재밌게 읽은 건 사실이었지만 독후감을 쓰는 건 다른 일이었다. 원고지 서너 장에 휘리릭 적어놓은 독후감을 보고 기가 막히게 감동하셨던 아빠는 저녁에 잠이 든 나를 깨워 독후감을 다시 쓰게 했다.

잠은 오는데 아빠는 계속해서 독후감의 내용을 불러줬고, 정말 쓰기 싫었던 나는 울면서 원고지 열 장이 넘는 대하 서사 독후감을 완성해 제출할 수 있었다. 그런 독후감의 추억이 깃든 해저 2만 리를 한참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니 늘어난 원고지 장수만큼이나 재미와 감동도 몇 배가 되었다.


이 소설은 네모 선장의 복수극이기도 하지만, 생태학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을 토대로 한 해양 소설이다. 노틸러스호만큼이나 조개 이름에 어울릴 법한 이름의 아로낙스 박사는 그의 하인 콩세유와 함께 해저 생태계를 누비며 바다를 탐구한다.


열 살 때나 지금이나 해저 2만 리에서 바다 생물을 가지고 만든 음식들을 먹어보고 싶단 생각을 한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만큼 쥘 베른은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의 세계를 마치 진짜의 세상처럼 창조해 냈다. 프랑스의 지성들이 쥘 베른에 대해서 한 번쯤 언급하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


과학의 이야기이자 모험의 이야기 - 때문에 이 소설은 어린이들에게도 인기가 많고 어린이 소설로 분류되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밝혀지지 않은 심해의 진실만큼이나 복잡한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첫 집 연대기 - 박찬용

최근에 대/중/소로 규모를 달리하여 여러 가지 일을 벌여놓았다. 걔 중 가장 큰 일은 이 책과 관련된 일이다. 그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회사 업무에도 영향을 줄 즈음, 이 책이 생각났다


지금 내가 괴로워하는 지점, 그 부분부터 다시 읽었다. 저자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적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감정이 불편하고 불안정했으며 괴로웠다. 당분간 계속 이럴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이제는 그냥 그 길로 가는 수밖에.


책 내용으로 돌아가서 -

이 책은 30여 년 간 부모님과 함께 살던 저자가 왜 독립을 결심하게 되었고, 어떤 곳에서, 어떤 집에서 살기로 결정했으며, 그 결정을 한 이유와 과정, 그 과정 속에서 겪은 소소하지만 삶의 기준을 바꿔놓을 만한 깨달음들, 이를 통해서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각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프롤로그의 제목, 뱁새의 집. 그래서 에필로그도 뱁새의 사정과 사연으로 마무리된다. 프롤로그를 지나 책은 1부 나가기 - 2부 고치기 - 3부 채우기로 구성되며 각 장에는 인상적인 소제목의 챕터들이 이어진다. “전기 협객과의 만남”이라든가, “이케아 비율”처럼 허구와 실재가 섞인 듯한 제목들. 쉽지 않았을 독립의 과정을 유쾌한 비유로 풀어낸다. 사실 독립은 가장 쉬운 단계다. 어른으로 산다는 건, 어른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건 대단히 버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저자를 좋아해서 여러 글을 읽었다.

다른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또한 절제와 유머와 메타인지- 저자의 특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을 발견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읽은 마크 로스코에 대한 책을 쓴 크리스토퍼 로스코는 유머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유머는 자기 비하를 곁들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비하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첫 집 연대기의 저자는 유머를 잘 활용한다. 그게 단순한 비하로 끝나지는 않는다. 그 점이 또 다른 미덕이다.


좀처럼 보기 드문, 한결같은 글을 쓰는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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