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 여행의 종착
2024년 12월 중순, 비행기표와 호텔만 잡고 아무 계획도 없이 도쿄에 갔다.
계획이 없으니 실망할 일도, 화가 날 일도 없다.
그저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예쁘고 신기한 것들, 기대 이상으로 맛있던 음식들, 그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
무계획 여행의 마지막은 종교 건축물 방문이었다. 성당과 절.
계획 없이 걷고 걷다 보면, 종종 예상하지 못한 생각이 떠오른다.
기가 막히게 좋은 생각.
출국 전날 아침, 성 이냐시오 성당을 찾았다. 개방 시간이 이르길래 일찍 움직였다.
구글에 성당 이름을 검색하면 서강대학교가 함께 나온다. 성이냐시오는 예수회 소속이며, 서강대는 예수회가 세운 학교다.
종교는 많은 부작용을 낳았고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도 많지만, 인류를 한 단계 진화시키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에서 천주교를 전파하고 확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예수회는 단지 종교뿐 아니라 문화를 전했다. 그들의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수도사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수십 년을 함께 살았다.
종교란 무엇일까-
성 이냐시오 성당은 한국의 성당들과 외형은 다르지만 신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 그리고 신의 아들을 기리는 장소라는 공통점 덕에 공간이 지닌 엄숙함과 고유한 평화로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당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기록하지 못해서 아쉽다는 생각보다는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오히려 더 가치가 있었다.
다음으로 즈이쇼지를 갔다. 현대 일본 건축에 큰 영향을 미친 쿠마 겐고가 설계한 불교 사찰이다. 건축을 잘 알지 못하고 일본 건축은 더더욱 모르지만 이 절 안에 머무는 동안에는 ‘일본적인 평화로움’이라는 막연한 감정이 생겼다. 젠이 이런 것인가.
정원을 구성할 때 주변 환경과 풍경을 빌려오는 ‘차경(借景)’이라는 방식이 있다고 한다. 쿠마 겐고는 도쿄 시내의 건물과 주택가의 일부 풍경을 절 안으로 끌어들여 단순해 보이지만 치밀하게 계산된 공간을 만들었다. 그것이 종교 건축의 형식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차경이라 하는 일본식 정원을 꾸밀 때 쓰는 방식이 있다고 한다. 주변의 환경과 풍경을 빌리는 것으로 쿠마 겐고는 2024년의 동경 시내 어느 일부의 건물과 주택가의 풍경을 빌려 단순한 듯 철저하게 계산된 공간을 종교 건축으로 구현했다.
결국 이런 설명은 다 부차적인 것 같다. 맑은 아침의 절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는 세키구치 성 마리아 성당이었다. 원래는 칸다 성당에도 들를 생각이었지만 체력이 모자랐다. 가는 길엔 골목이 많았고, 골목마다 정갈하게 배치된 집들과 차들을 보며 이 동네는 부유한 동네라서 치안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편의점 하나 없어서 불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언덕길들.
세키구치 성당은 도쿄 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간단히 말하면, 해당 지역의 사제 대장이 머무는 성당.
서울의 경우 명동성당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성당은 한국과 달리 종탑을 따로 세운 전통 양식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점이 인상 깊었다.
성당 내부는 조명을 꺼놓은 데다가 오후 3시면 이미 해가 기우는 도쿄의 겨울 탓에 성당 내부의 공간은 어둑했다. 외부는 극단적으로 간결하고 현대적이었지만, 내부는 오히려 원초적인 종교의 기원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길고 좁은 나무 판자들을 여러 개 이어 붙여 만든 천장은 꼭대기 어딘가의 한 지점을 향해 모이는 구조였고 그 형태는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하는 묘함이 있다.
천장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 2층에 놓인 파이프 오르간과 스테인드글라스는 그 원초적 공간성에 이질적이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곳 역시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기도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언가에 압도된 듯 머릿속은 비어 있었고, 그저 오늘 이곳에 왔다는 사실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찾아보니 이 성당은 원래 1899년 목조 건축물로 지어졌지만 1945년 공습으로 파괴, 1960년부터 64년까지 건축가 단게 겐조가 현대 양식으로 재건했다고 한다. 60년대에 이미 이런 형태의 현대 건축이 가능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비교하거나 평가하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세키구치 성당을 보는 순간이 그랬다. 비교가 어렵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비참하거나 패배감을 느낀 건 아니다.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선과 면으로 구현한 압도적인 공간은 결국 더 많은 사람을 불러들인다. 화려한 장식으로 신 앞에서 부를 드러내던 과거의 종교 건축이 특정 계층을 위한 것이었다면 사건과 사고, 우연과 필연을 거쳐 남은 종교는 그 단순함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전하려 한다.
종교가 추구하는 보편적 구원의 서사는 이제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구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르면서 쓰는 것도 어찌 보면 이상하지만 느낀 바가 그러했다.
+ 세키구치 성당 근처에는 그 유명한 고단샤 본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