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퓰시, <12 솔져스(12 Strong)>, 2018
* 스포일러 : 중간
영화 <12 솔져스>는 21세기 들어 가장 끔찍했던 사건으로 꼽히는 9·11 테러 직후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잘 알려진 바대로 이 테러는 미국을 주요 표적으로 삼는 국제 테러조직 알 카에다가 여객기를 탈취해서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들이받아 3000여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사건이다.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던 미치 넬슨 대위(크리스 헴스워스Chris Hemsworth)는 테러 뉴스를 접하자마자 소속 부대 본부로 복귀한다. 해체될 예정이었던 넬슨 대위의 정예팀은 전례 없는 국가 위기 상황 속에서 전 대원의 자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급파된다.
영화 제목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넬슨 대위의 특수부대(595 분견대)는 총 12명으로 구성된 중대이다. 테러 조직의 본거지에 직접 투입되는 부대의 규모 치고는 매우 옹색하다. 적군은 탈레반과 알 카에다 조직을 합쳐 약 5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상황. 현지의 지상군 병력이 합류한다 해도 전면전을 벌이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이들 현지 군벌 세력들은 '북부동맹'으로 묶여있으나 실상은 세 무리로 나뉘어 별도의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중 넬슨의 특수부대가 합류하기로 예정된 세력은 도스툼 장군(네이비드 네가반Navid Negahban)의 지상군 병력인데, 대부분 소총 한 자루에 의존하는 민병대이고 수십 명의 기병이 이들을 이끌고 있다. 말을 타고 황무지를 누비는 이들의 모습은 기관총과 박격포, 로켓포와 탱크로 중무장한 적 탈레반과 대조되며 더욱 열악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이 대조가 실은 영화의 관람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작전 상의 열악한 여건을 가지고 '관람 포인트'라는 표현을 쓰기가 머뭇거려지지만, 그럼에도 <12 솔져스>를 영화적으로 가장 두드러져 보이게 만드는 요인은 다름 아닌 아군 기병대와 적군 기계화보병대의 대치와 혼전에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특히 말을 타고 작전을 수행하는 미 특수부대의 활약상은, 21세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영화는 이처럼 21세기 초를 그린 현대극에서 20세기 초의 서부극을 연상시키는 보기 드문 명장면을 연출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영화의 첫 번째 묘미이자 백미이다.
아프간 접경 지역에 도착한 넬슨 대위는 존 멀홀랜드 대령(윌리암 피츠너William Fichtner )과의 작전 회의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이내 선견대(선임 파견부대)의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이들의 임무는 미군의 정확한 공습을 위해 적의 시설과 전초기지의 위치 좌표를 파악하는 것이다. 목표는 겨울이 오기 전까지 3주 안에 탈레반 점령지인 마자르를 탈환하는 것. 지상군의 규모와 장비는 적에게 크게 뒤지지만 미 항공전력의 압도적인 우위를 살린 공습으로 넬슨이 이끄는 선견대는 도스툼 장군의 병력과 함께 탈레반 점령지를 차례로 탈환해 나간다.
아프간 현지의 군벌 실력자인 도스툼은 일면 무모하고 독선적인 지도자로 보인다. 처음 넬슨 대위를 만났을 때 무시하면서 거들먹거리는 태도라든지 작전 상 중요한 정보를 고의로 감추어 동맹군을 불필요한 위험에 빠뜨리는 모습 등은 그런 부정적인 면모를 부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이 지역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도스툼은 지도 없이도 적군의 근거지와 보급로를 훤히 꿰뚫는 것은 물론, 미군의 공습 지원을 전쟁의 필수 전제로 파악하는 냉철함(미군 1명보다 현지 병력 500명이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데서 이런 냉철한 판단력을 읽을 수 있다)과 위험한 전투에 앞장서 임하는 카리스마를 모두 갖춘 명장으로 그려진다.
넬슨 또한 자국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엘리트 군인이다. 그는 아내에게 꼭 살아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며 만약을 대비한 유서마저도 쓰지 않는 강인한 원칙주의자다. 넬슨은 도스툼의 판단이 객관적 정보보다 그 자신의 경험과 직관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점을 못마땅해하고, 도스툼은 실전 경험이 없는 넬슨의 경직된 판단력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못 미더워한다. 급기야 도스툼이 북부동맹 내부의 세력다툼으로 전선을 이탈하며 둘의 갈등은 극으로 치닫지만, 끝내는 합류하여 마자르 점령 작전에 성공하면서 극적으로 화해하게 된다. 영화의 두 번째 묘미는 이렇듯 스타일이 극명히 갈리는 두 지휘관이 시종 마찰을 빚으면서도 조금씩 호흡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에 있다.
한편 이 영화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진부한 스토리텔링을 그대로 답습한다. 영화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12명의 특수부대원들의 감정은 순간순간 고조되고 위기를 맞아 극대화되는 반면, 적군의 감정은 전적으로 무시된다. (심지어 아군인 현지 민병대의 감정까지도 그렇다.) 그들의 아픔과 죽음,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는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소거되어 있다. 때문에 그들이 다치고 죽는 장면은 마치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 게임 속 악당 유닛들이 쓰러지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미국 군인들의 위대한 업적을 묘사하는 영화에 적군과 동맹군의 인간미를 포함시킬 이유는 없었을 테니.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익숙한 만큼 우리는 중동과 여타 제3세계 지역의 분쟁사에 무지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중동 이슬람 근본주의의 논리와 역사를 알아보려 하기는 커녕, 손쉽게 그들을 절대악으로 상정한다. 이런 경향은 막대한 자본의 힘을 이용해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자기네 논리로 물들이는 미국의 전방위적 영향력에 힘입어 점점 가속화될 것이다.
적어도 이 분야에서, 우리는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는 데 익숙하다. 그런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조차 금기시된다. 누군가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무장테러조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면, 곧바로 무고하게 죽어간 수많은 테러 희생자들에 관한 자료를 앞세워 비방한다. 미국의 개입을 제국주의적 시도로 규정하고 단호히 거부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목소리는 그렇게 발화되지도 못한 채 힘을 잃는다. 반대로 미국의 위대한 목소리는 곳곳에 울려 퍼진다. 그들은 언제나 자유주의 진영의 맹주를 자처하고,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룰러ruler의 위상을 차지한다. 미국이 그들 자신의 업적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논리들은, 그들이 세계 각국에서 진행한 수많은 작전만큼이나 차고 넘친다. 그리고 <12 솔져스>는 그런 논리에 한 번 더 힘을 실어준다. 우리가 직접 영화관에 찾아가 그들의 주장이 담긴 영화를 돈 주고 봄으로써 그 사실을 입증하지 않는가. 이런 문법을 가진 영화를 그동안 수없이 보아왔음에도, 우리는 그 꾸준한 설득력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익숙한 말들의 메아리에 반가움마저 느낀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믿는 '질서'의 본질일 것이다. 다시 말해 질서란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거나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우리는 그렇다고 믿지만), 절대적 강자의 지배적 논리에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역설적으로 매우 평화로운) 상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