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

리 언크리치, <코코Coco>, 2017

by 달리

* 스포일러 : 강함



영화 <코코>의 주인공은 소년 미겔이다. 미겔은 대를 이어 구두를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 집안에서 음악은 금기이다. 이유는 미겔의 고조할아버지가 음악을 하기 위해 가족을 떠났기 때문이다. 가족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가풍에 따라, 가족 대신 음악을 택한 고조할아버지는 그들 집안의 공식적 기억에서 의도적으로 소거되어 있다. 여러 대에 걸쳐 정성껏 꾸며진 가족 제단에서 고조할아버지의 사진만 잘려나간 것이 이들 집안의 상처를 잘 드러낸다.


코코는 그렇게 가족을 떠난 고조할아버지의 외동딸이자, 주인공 소년 미겔의 증조할머니다. 노쇠한 코코는 휠체어에 앉아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코코는 떠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붙잡고 그리워하지만, 그마저도 점점 흐릿해져 간다. 집안 전체가 아버지와 아버지의 음악을 미워하고 지우려 해도 코코만은 그럴 수 없다. 어릴 때 떠난 아버지는 그가 불러주던 노래와 함께 코코의 기억 속 가장 뿌리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미겔과 코코(출처 : 영화 <코코>)


공교롭게도 미겔은 음악가적 기질을 타고났다. 불운한 사고로 생을 마감한 최고의 음악가 델라크루즈의 제단을 따로 만들어놓고 남몰래 꿈을 키우던 미겔은, 어느 날 잘려나간 사진 속 고조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기타가 델라크루즈의 기타와 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 우상이었던 음악가가 바로 자신의 고조할아버지임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된 미겔은 가족들 앞에서 당당히 꿈을 밝히지만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미겔의 할머니 엘레나는 숨겨두었던 미겔의 기타를 부숴버리고 만다.


낙심하며 집을 나온 미겔은 델라크루즈의 묘를 찾아가 그 위에 놓인 기타를 들고 연주한다. 연주하는 순간 미겔은 저승세계와 연결되어 죽은 조상들을 만나게 되지만, 그곳에서조차 자신의 꿈을 부정당하고 만다. 아직 죽지 않은 채로 저승에 온 미겔은 망자의 축복을 받아야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조상들은 축복의 대가로 미겔에게 음악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죽은 조상들에게마저 인정받지 못한 꿈을 델라크루즈에게 인정받기 위해, 미겔은 생전에 델라크루즈의 친구였던 헥터를 만나 그 저승세계를 동행하기로 한다. 헥터는 미겔을 델라크루즈에게 데려다주는 조건으로, 자신의 사진을 이승의 제단에 올려달라고 미겔에게 부탁한다.


델라크루즈의 기타를 연주하는 순간 미겔은 신비한 힘에 의해 저승세계와 연결된다(출처 : 영화 <코코>)


이 시점 이후를 영화의 중반부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한데, 전개상 매우 중요한 설명이 여기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억과 망각에 대한 설명이다. 죽은 자들은 해마다 돌아오는 '망자의 날'에 가족을 만나러 이승으로 건너올 수 있다. 단, 이승으로 건너오려면 산 사람의 제단에 망자를 기리는 사진이 있어야 한다. 극 중 전개를 통해 드러나는 바, 망자는 사진(또는 생전의 모습)으로 추모되고 소환된다. 미겔의 고조할아버지는 의도적으로 잘려나간 사진 때문에 이승으로 건너오지 못한다.


이보다 중요한 설정이 한 가지 더 있다. 이승에서 떠나간 망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면 저승에서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승에서 미겔의 고조할아버지를 온전히 기억하는 사람은 코코뿐이다. 따라서 노쇠한 코코가 죽거나 치매로 아버지를 잊게 되면 그는 저승에서도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즉, 망자는 산 자의 기억(또는 이미지) 속에서 추억되고 재생된다. 코코는 어릴 때 자신을 침대에 앉혀놓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르던 아버지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하며 그리워한다.


극의 후반부에 밝혀지는 바, 미겔의 고조할아버지(코코의 아버지)는 델라크루즈가 아니라 헥터이다. 델라크루즈는 헥터의 음악적 재능과 그가 만든 곡들이 탐나 그를 독살한 살인자였다. 다소 과한 설정이지만, 이 또한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영화 <코코>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화려하게 각인된 델라크루즈보다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 안에 깊이 자리한 헥터의 담백한 삶에 가치를 둔다.


헥터와 미겔(출처 : 영화 <코코>)


한편 영화 속 인물 '코코'의 비중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코코가 등장하는 장면은 전체의 1할도 되지 않을 것이고, 대사는 그보다도 적다. 코코에 대해서는 처음 미겔이 가족을 소개할 때 치매를 앓는 노인으로 등장하는 장면과, 아버지가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침대에 앉아있는 어릴 적 모습, 그리고 미겔이 불러주는 노래를 듣고 생기를 찾는 모습 정도가 떠오른다. 신기한 것은 그것만으로 이 영화의 제목이 <코코>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코코가 극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기능 때문일 것이다. 코코는 아버지 헥터의 존재를 증손자 미겔과 이어주는 핵심적 기능을 수행한다. 저승에서 헥터는 코코가 기억하는 만큼만 존재한다. 이승에서 코코의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저승의 헥터도 힘을 잃는 설정은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것은 이른바, '한 사람은 그를 그리워하는 다른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유의미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를 그리워함에 있어 사진보다 중요한 것은 그와 함께 했던 추억과 회상이다.


고이 남겨두었던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은 금지한다고 해서 잊혀지지 않는다. '이제 그만두라'고 해서 사라지지도 않는다. 사진을 찢고 음악을 금지해도 끝내 잊을 수 없었던 코코의 마음속 아버지. 헥터가 어린 딸 코코에게 마음을 담아 들려주던 노래는 오랜 시간을 건너 코코의 증손자 미겔에 의해 다시 불린다. 꺼져가던 코코의 기억과 그리움은 그렇게 한순간에 선명히 되살아난다. 한 사람의 삶, 그 안에서 까마득한 시간 동안 금기시되었던 노래로.


우리도 그렇다. 옆에 없는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는 결국 떠난 존재를 그리워하는 데에 있지 않을까.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사람이 아련히 그리워 내내 진한 여운을 남기듯, 영화가 지나가고 한참 후에도 몇 가지 물음이 여운처럼 남는다.


한 사람이 정말로 사라지는 것은 그의 생물학적 호흡이 다했을 때가 아니라 마지막 남은 사람의 마음 안에서 잊혀졌을 때가 아닐까. 정말로 소중했던 사람을 담아둔 마음이 가끔씩 그리도 선명하면서 한편으로 아련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노래 「기억해줘」를 들으며 눈물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런 지워지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선명한 아련함 때문이 아닐까.




덧붙임 1

영화 속 인물 '코코'의 캐릭터 디자인이 너무나 훌륭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관객들이 코코의 캐릭터 이미지만으로 울컥했을 것이다. 깊게 파인 주름, 양갈래로 땋은 흰머리, 구부정한 자세, 맑은 눈망울과 온화한 목소리까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덧붙임 2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그대로영한 노래 「기억해줘」의 노랫말과 선율도 인상적이었다. 영화 후반부, 저승에서 돌아온 증손자 미겔이 울먹이며 코코와 함께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따라 울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노랫말을 옮겨 적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Remember me 기억해줘
Though I have to say goodbye 작별인사를 해야 하지만
Remember me 기억해줘
Don't let it make you cry 울지는 않았으면 해
For even if I'm far away 비록 멀리 있어도
I hold you in my heart 내 마음에 너를 품고
I sing a secret song to you 네게 비밀의 노래를 불러
Each night we are apart 우리가 떨어져 있는 매일 밤마다
Remember me 기억해줘
Though I have to travel far 비록 멀리 떠나야 하지만
Remember me 기억해줘
Each time you hear a sad guitar 슬픈 기타 소리를 들을 때마다
Know that I'm with you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걸 알아줘
The only way that I can be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Until you're in my arms again 널 다시 내 품에 안을 때까지
Remember me 기억해줘

영화 <코코>, 「Remembe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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