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치>는 딸 마고(미셸 라Michelle La)의 실종 후 온라인으로 딸의 흔적을 좇는 데이빗(존 조John Cho)의 분투를 그렸다. 데이빗은 담당 형사 빅(데브라 메싱Debra Messing)의 도움을 받으며 딸의 실종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 과정에서 사건은 학교 부적응, 불화, 가출, 납치, 삼촌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거쳐 살인 사건으로까지 접어들며 의심과 확신, 좌절과 희망의 경계를 넘나든다. 결국 경찰은 여러 정황 증거를 통해 마고가 살해당했다고 결론짓지만, 데이빗은 딸의 지난 SNS 기록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끄집어 올린다.
독특한 것은 이 영화의 연출이 모니터 화면으로만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은 PC, 모바일, CCTV 등의 모니터 화면으로만 메워진다. 자연스럽게 거의 모든 촬영이 영화 속 등장인물에 의해 웹캠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아마도 이것이 영화 <서치>의 인상을 차별화하는 가장 두드러진 요소로 기능했을 것이다. 딸의 SNS 기록과 개인방송영상을 통해 단서를 수집하는 아버지 데이빗의 모습은 시종 모니터 화면에 함께 배치되며 영화의 서스펜스를 더해준다.
단서를 찾는 아버지 데이빗의 모습은 시종 모니터에 함께 배치되며 극의 서스펜스를 높인다.(출처 : 영화 <서치>)
한편 이러한 연출과 구성이 장점만 갖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다채롭게 전개될 수 있는 이 영화의 소재는 경직된 스크린 속에서 역동성을 잃고 만다. 예컨대 이 영화의 장르적 스릴과 블랙 코미디의 쾌감을 더해주는 요소로 데이빗의 감정선과 리액션을 빼놓을 수 없는데, 영화의 특성상 이는 데이빗 본인의 셀피 영상으로만 연출 가능하다. 그 결과 실종된 딸이 남긴 기록을 추적하는 아버지가 모니터 한쪽에 본인의 셀피 영상을 띄우는, 다분히 억지스러운 장면이 탄생한다. 당연히 역동적인 카메라 무빙이나 앵글은 기대할 수도 없고, 거의 모든 웹캠 쇼트가 모니터 앞에 앉은 인물의 정면을 정적으로 담는다. 긴장과 불안감은 사라지고, 여유와 안정감이 스크린을 지배한다. 딸의 실종을 소재로 하는 영화의 뉘앙스로는 적절치 않다.
사건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딸의 실종 현장에 도착한 데이빗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빅 형사에게 페이스타임을 건다. 아무리 바빠도 음성 통화로 대체할 수 없는 이유는 영화의 연출이 강박적으로 모니터 화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데이빗이 사건을 추적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딸의 모습도 실은 별로 놀라울 것이 없다.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이,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아빠 몰래 그만두었다는 사실이 뭐가 그리 놀랍겠는가. 마고가 인스타그램, 텀블러, 유캐스트 등 SNS와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또래와 나눈 이야기들도 모두 충분히 예상 가능하며, 아빠가 이런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들 크게 이상할 것 없다. 한 아이의 실종 사건을 모티브로 재구성한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이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때로 진부하고 지루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이 모든 진부함을 실험적 연출 방식 하나로 무마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우스 커서의 쓰임이다.
고요한 가운데 느릿하게 움직이는 마우스 커서의 동선과 '딸깍'하는 클릭음은 영화의 스토리텔링 기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밖에 내용 측면에선 어떤 참신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데이빗이 사건의 단서를 캐치하는 장면의 클로즈업에서 보여주는 식상함과, 영상 속 딸이 성장통을 겪는 서사에서 느껴지는 클리셰는 관객들에게 피로감과 기시감을 동시에 안긴다. 결과적으로, 다분히 실험적인 시도에도 이 영화에 그리 마음이 기울지 않는 것은 극의 소재가 고정된 형식 안에 완전히 매여버렸다는 인상 때문이다.
2013년에 개봉한 영화 <디스커넥트>를 보고서는 한동안 공포심이 일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인터넷에 무심코 남긴 기록들이 어딘가에 지울 수 없는 형태로 남아 미래의 나를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디스커넥트>는 새로운 플랫폼이 갖는 파괴적 영향력, 달라져버린 시대의 음영을 한 편의 영화에 성공적으로 녹여냈다. 그에 비해 영화 <서치>는 연출 면에서 분명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으나, 다루는 소재에 대한 고민이나 새로운 플랫폼이 갖는 상징성을 반영하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몇 발 뒤로 물러선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