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깨지기 쉬운 것들의 결합

도미닉 쿡, <체실 비치에서On Chesil Beach>, 2018

by 달리

* 스포일러 : 약함



영화 <체실 비치에서>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첫 관계를 맺고, 비슷한 듯 다른 이유로 충격에 빠지고, 헤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서툴기 그지없다. 둘은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는커녕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보인다. 영화의 시놉시스를 알든 모르든, 관객들은 이 관계의 결말이 그리 좋지 않으리라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에드워드(빌리 하울Billy Howle)와 플로렌스(시얼샤 로넌Saoirse Ronan)는 우연히 만났다. 엉뚱한 첫 만남에도 둘은 관계를 이어가며 다분히 관념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키워갔다. 사랑이 관념적이었다는 말은, 그들이 각자 사랑에 대해 품은 이미지가 현실로 고스란히 반영되지는 않았음을 의미한다. 둘이 나눈 사랑의 대화는 깊고 따뜻했으나, 결정적으로 두 사람의 몸이 배제되었다. 이미지 형태로 교류된 두 사람의 사랑이 결혼이란 현실의 벽 앞에서 위태로워지는 것은 일면 타당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드는 의문이 있다면. 예컨대 이런 것이다. 둘은 꼭 결혼한 날 이별해야만 했을까. 하루라도 헤어짐을 앞당기거나, 미룰 수는 없었을까. 그럴 수 없었다면 이유는 뭐였을까.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관객들로 하여금 정답 없는 질문에 잠기게 만든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의 실체는 뭘까. 평생을 함께 하겠다 약속한 바로 그 날에, 성스러운 서약을 어기게 만드는 사랑. 그런 게 있기는 한 걸까.


사랑은, 그 모든 낭만적 예찬에도 한 가지 지독한 모순을 안고 있다. 이미지로 존재하는 사랑은 언제나 고귀하고 빈틈없는 결합을 추구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번번이 깨지고 만다는 것이다. 현실의 사랑은 때때로 한 사람의 지극히 내밀하고 적나라한 치부를 공유하도록 은밀히 압력을 불어넣는다. 구질구질하고 비루한 변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처음 겪는 에드워드와 플로렌스는 혼란스러우면서도 관념 속에 존재하던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짐짓 괜찮은 척을 하고 과장된 톤으로 사랑을 연기한다.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게다가 사랑은 노골적 폭력으로 그 위력을 무람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그럴 때 사랑은 폭력을 감싸는 훌륭한 도구이자 명분이 된다. 서툰 사랑이 마음대로 안 될 때마다 성마른 감정을 있는 대로 드러내는 에드워드와 그럼에도 그를 절박하게 사랑한다 말하는 플로렌스처럼. 이것이 정말 사랑일 수 있을까. 아니면 사랑이란 것이 원래 그렇게, 깨지기 쉬운 것들로만 위태롭게 결합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영화의 뉘앙스는 깨지고 상처받기 쉬운 두 어린 남녀에 의해 시종 위태롭게 흘러간다. 서사의 전개도 오로지 둘에 의해서만 힘겹게 이어진다.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만 같은 여리고 섬세한 두 사람에게 매료된 관객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깨지'라는 말은 많은 나라에서 중의적 쓰임새를 갖는다. 첫째로 물건이 부서져 조각남을 뜻하고 둘째로 관계의 틀어짐, 곧 이별을 뜻한다. 거센 파도에 조각난 모래로 가득한 체실 비치에서, 둘은 거칠게 이별하고 담담히 돌아선다. 관념의 형태로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이 현실 속 찰나에 불과한 시간 동안 산산이 깨지는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각난 모래로 가득한 체실 비치에서, 둘은 거칠게 이별하고 담담히 돌아선다.(출처 : 영화 <체실 비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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