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연출로 빚어낸 전장의 스펙터클

김광식, <안시성>, 2018

by 달리

* 스포일러 : 중간



영화 <안시성>은 서기 645년의 안시성 전투를 모티브로 하였지만, 역사적 맥락의 전개보다는 스펙터클의 연출에 주력했다.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은 직접 20만의 당군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쳐들어와 여러 성을 함락했으나 결정적으로 안시성을 넘지 못했다. 변방의 작은 성에 불과했던 안시성이 어떻게 산전수전 다 겪은 당나라 대군의 총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을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으나, 영화는 안시성주 양만춘(조인성)의 역량과 그를 구심점으로 삼아 똘똘 뭉친 성 주민들의 초인적인 정신력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여기에 '당군 20만 대 고구려군 5천'이라는 병력의 차이를 대조하며 극적 효과를 보태지만, 일설에는 안시성의 병력이 10만 정도로 무시 못할 수준이었다고도 하니 이때의 전투에 대한 기록 자체가 풍부하게 남아있다고는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전쟁의 결과나 의의에 대한 해석은 국내에서 크게 갈리지 않는 듯하다. 안시성의 승리는 당시의 객관적 전황으로 미루어보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료에 대한 학계의 해석이 큰 틀에서 일치한다는 건, 바꾸어 말하면 이 영화가 모종의 영화적 장치들을 통해 미화할 수 있는 역사적 범위의 한계도 뚜렷하다는 뜻이 된다. 그만큼 먼 과거의 사건을 소재로 하는 영화가 현대의 정치·사회적 성향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가까운 과거를 다룬 영화들은 역사의 어느 한 측면이나 관점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거나, 은유적 방법으로 우회함으로써 정치적 의도를 시사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개봉한 <1987>, <택시운전사>, <군함도> 등이 결은 다르지만 모두 그런 영화다. 이 작품들이 저마다 크고 작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에는, 영화 제작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이 특정 집단의 정치적 색채를 대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일부 대중들의 따가운 시선이 한 몫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안시성>은 실제 전투의 현장감을 생생하게 담아내거나 전쟁의 스케일을 압도적으로 구현하는 데에 주력했을 뿐, 딱히 논쟁적인 스탠스를 취하지는 않는다. 사건 자체가 시간적으로 워낙 멀어서 정치적으로 다툴 만한 요소를 드물게 지닌 탓이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정치적 논쟁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매우 강력한 장점 하나를 갖는다. <안시성>은 스토리라인 구성에서 어느 한쪽의 정치적 입장을 한껏 강조하거나, 양쪽의 입장을 균형적으로 배치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결국 전쟁의 스펙터클 연출에 모든 역량을 과감하게 집중할 수 있고, 실제로 이 영화는 그렇게 탄생한 작품으로 보인다.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전장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한 소재로 '안시성 싸움'은 상당히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전쟁의 스펙터클을 연출하기 위한 소재로 안시성은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출처 : 영화 <안시성>)


한편 <안시성>은 객관적 열세를 마치 관문을 통과하듯 차례대로 극복해나가는 전투 시퀀스가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영화 <300>을 떠오르게 하지만, 개별 전투 신의 촬영에서 선보이는 화려한 쾌감은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에 더 잘 포개어진다. <안시성>의 액션은 묵직함보다는 화려함을, 파워보다는 스킬을 추구한다. 이런 성격의 전투를 담아내려면 카메라 무빙도 자연히 역동적이고 현란해질 수밖에 없다. 당군과 성벽 위에서 백병전을 벌이는 장수들의 액션은 몇 번의 슬로 모션에 힘입어 더욱 화려해지고, 적 공성구를 무력화하는 안시성 군사들의 전략과 팀워크도 빈틈없이 완벽하다. 백미는 적의 공성구 위에 던진 기름 주머니를 양만춘이 화살로 쏘아 맞혀 불을 붙이는 장면이다. 야간 기습 상황에서 불타오르는 적의 거대한 공성구는 시각적으로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전장의 판세를 역전시키는 지휘관의 역량 또한 극적으로 강조되면서 영화는 마지막 전투를 향해 내달린다.


영화 속 안시성에서는 크게 세 번의 전투가 벌어진다. 첫 번째 전투에서는 자신만만한 당군이 안시성에 도착하자마자 공격에 나서고, 안시성 군사들은 이에 맞서 간신히 성을 지켜낸다. 두 번째 공성전에서는 당군이 야간 기습을 감행하나 성주 양만춘의 재빠른 판단과 기민한 대처로 또다시 방어에 성공한다. 마지막 전투는 당군이 60여 일에 걸쳐 쌓았다는 토산에서 벌어진다. 두 차례의 공성전에서 모두 패한 당군은 성 앞에 토산을 쌓아 다리를 놓고 건너가려 하지만, 가교 직전에 토산이 무너져 내리면서 반대로 고구려에 점령당하고 만다. 이 날부터 3일 동안 당군은 토산을 되찾으려 총력전을 벌인다. 영화는 이 세 번의 전투를 각기 다른 관점으로 묘사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첫 전투는 영화의 기본 콘셉트를 소개한다. 안시성의 성주와 주민들이 어떤 마음으로 싸움에 임하는지를 볼 수 있고, 영화가 이를 어떤 뉘앙스로 표현하고자 하는지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 전투는 지덕체를 두루 갖춘 성주 양만춘의 면모를 집중적으로 부각한다. 적의 기습에 당황하면서도 냉철한 판단을 유지하는 그의 모습은 유능한 지휘관에게 결정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 무엇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마지막 전투는 양측의 총력전으로 묘사되며 고구려가 안시성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던 원인을 극적으로 조망한다. 물론 이를 역사적 정설로 채택할 수는 없겠으나,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떻게 불가능해 보이는 전투가 서서히 승리로 기울었는지 막연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떻게 불가능해 보이는 전투가 서서히 승리로 기울었는지 막연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출처 : 영화 <안시성>)


다만 영화 초반 사물(남주혁)과 소벌도리(장광)의 문답으로 안시성주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하는 시퀀스는 불필요했다는 인상이다. 사물은 안시성주가 어떤 인물이냐 물었고, 소벌도리는 그를 안시성 그 자체라 답하며 소박한 미사여구를 몇 가지 덧붙인다. 배경에는 황홀한 음악이 깔리고, 때맞춰 양만춘에게 후광이 비친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존재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런 진부한 연출은 오히려 관객의 몰입을 깨는 요인으로 기능한다. 납득할 만큼 보여주면서 굳이 말로 부연 설명을 할 필요는 없다.


그밖에 당나라 인물들의 중국어는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참 어설프고 심심했는데, 중국어 자체가 원래 그렇게 흉내내기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고어의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하도록 주문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전쟁의 신이라 불렸다는 당 태종 이세민의 역에 박성웅이란 배우가 잘 들어맞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배우 조인성의 캐스팅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는 한다. 영화의 콘셉트에 따르면, 안시성주는 평시에는 서민적이고 소탈한 모습이었다가 전시에는 날카로운 판단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지휘관으로 돌변해야 한다. 지휘관의 카리스마만을 강조하고자 한다면 조인성보다 나은 옵션이 많은 것이 사실이나, 때로 멍하고 때로 어수룩한 인간 양만춘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할 때 그는 분명 나쁜 선택은 아니다. 다만 최소한의 리얼리즘 확보 차원에서, 그처럼 가벼운 톤과 매너를 지닌 인물이 불가능에 가까운 승리를 견인했다는 설정은 역시 아쉽다. 영화 <아마겟돈>의 설정을 빼다 박은 듯한 파소(엄태구)와 백하(설현)의 첫 등장 신에서 나타나는 양만춘의 캐릭터는 (물론 인물의 입체감과 영화적 유머를 동시에 살리려는 의도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누가 봐도 위엄 있는 지휘관의 모습은 아니다.


안시성주 양만춘 역을 맡은 배우 조인성(출처 : 영화 <안시성>)


이렇듯 몇 가지 아쉬운 점에도 이 영화의 전체적 만듦새에 대한 평가는 무리 없이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전쟁을 메인 테마로 다룬 작품 중 이 정도 규모의 스펙터클을 연출해낸 작품은 그다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앞으로도 이런 색다른 느낌으로 스크린을 채워줄 수 있는 영화가 더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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